낮 열두 시 반경에 비행기 출발이라 아침을 먹지 않고 바로 공항 안에서 끼니를 해결하려 했다. 이것이 나의 불찰이 될 줄이야. 수속 절차를 받고 들어가기 전에 아무거라도 먹었어야 했는데 괜스레 비행기를 놓칠 수 있다는 생각에 게이트까지 들어가서 해결하기로 했다. 내부엔 편의점뿐만 아니라 음식점들은 모두 닫혀있고 엔제리너스 커피 가게만 있었다. 자 그럼 자연스럽게 샌드위치 같은 빵 종류를 먹으면 되겠다 싶었지만 이미 모두 다 팔려서 음료만 주문 가능했다. 여행 시작도 전에 1차 위기다.
해외여행이 최근에서야 풀리다 보니 아직 까지 닫은 가게들이 많았다. 배가 고팠다.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정보 안내해주시는 아주머니께 '식사'해결 방법을 여쭤보니 면세점에서 파는 컵라면, 볶음 김치 등을 소개해주셔서 나름 비싼 값으로 사서 위층에 모두 이용 가능한 라운지 같은 곳에서 뜨거운 물을 받고 식사를 했다. 보통 여기 공항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컵라면, 김밥이나 도시락으로 해결하는 곳이었고 직원부터 여행객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앉아 쉬었다.
일본을 떠나기 전, 우여곡절 사연이 담긴 한 끼 식사였다.
2시간가량 비행 끝에 일본 도쿄의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다.
도착하고 나서 정확히 2시간 10분 뒤에 국내선으로 삿포로행 비행기를 다시 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코로나 증명도 그렇고 입국 절차 시간이 오래 걸릴까 비행기에서 나오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바깥을 향했다. '비짓재팬 웹'이라는 코로나 백신 3차 접종 증명을 한국에서 미리 받아뒀지만 누구나 준비하는 것이므로 여권 챙겨가는 것과 같은 당연한 준비였다.
다음 비행기를 놓치면 여행의 모든 것이 다 차질이 생기므로 비행기도 맨 앞에서 두 번째 자리로 추가 금액을 더 내고 좌석을 미리 예약하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실행했다.
결국 지나서 보니 그렇게 걱정할 만큼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항상 예기치 못한 일들을 겪어봤기에 잘 한 듯하다. '굳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그마한 일들이 여행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도움을 준 것이 아닐까 싶다. 빠르게 움직였기에 도쿄 나리타 공항에서 늦은 점심을 여유롭게 먹고 제트스타 비행기에 탑승해 홋카이도의 신치토세 공항에 잘 도착할 수 있었다.
나리타 공항에서의 식사(고기 덮밥)
공항에서 오타루 역을 향하는 JR 기차를 타고 1시간 20분 정도 가서야 비로소 오후 8시 30분에 오타루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삿포로역을 지나서 더 올라가야 한다). 오타루 역에서 짐을 이끌고 나오고 나니 비로소 일본 여행을 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공기를 느낄 수 있게 된다. 11월 중순이었지만 한국 초겨울 느낌의 차가운 공기가 제법 맑게 시원했다. 비가 왔는지 비 온 뒤 거리는 차분하고 더욱더 운치 있는 느낌을 만들어줬다.
드디어 여행 시작이구나.
숙소를 오타루 역에서 걸어서 1분 거리, 바로 앞에 잡아둬서 시간을 그나마 아낄 수 있었다. 늦은 시간에 체크인을 하고 짐을 푼 뒤, 그대로 하루를 끝낼 순 없으니 주위에 이자카야 같은 술집을 찾아 나섰다. 늦은 시간이라 제일 중요한 것은 영업 종료 시간이었고 11시 넘어서 끝날 가게를 찾아 들어갔다.
오타루역과 근처 거리
한국 번화가에도 일본 선술집 같은 가게들이 많다. 그래서 그렇게 특별하게 일본스러움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일본이라 달랐다. 어쩌면 다르다는 것을 스스로 세뇌시켰을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의 일상을 모두 놓고 나 스스로 잠시 로그아웃하고 다른 나라 여행 온 것 자체가 큰 행복이었기에 모든 것이 좋았다. 특별했다.
현지인들이 오며 가며 지인들과 한잔씩 걸치고 가는 듯한 오타루의 어느 선술집.
말 그대로 로컬 느낌이 강했다. 일본인 사장님이 반겨주었고 한국식 커튼 같은 발로 구역 구분이 된 끝 자리에 앉았다. 일본에 오면 자리를 안내해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잠시 기다리니 안내해줬다. 자리에 앉아 음식을 시키려 하니 '아이패드'를 건네서 주문하게 해 주었다. 그런데 그림은 거의 없고 메뉴 이름은 일본어로 된 글씨만 적혀있어 난감했다.
일본어를 1도 모르다 보니 파파고를 이용해 사진 찍어서 해석하며 확인하고 시키려 하다, 갑자기 옆에 친구분과 한잔하고 있던 빵모자를 쓴 여성분께서 잠시 '안녕하세요'라고 하며 도와준다고 하였다. 말을 못 하고 주문이 제대로 안 되는 것을 보니 딱했나 보다. 구세주였다.
옷차림도 그렇고 외모도 한국 사람 같았다. 지나서야 이해했는데 한국을 좋아하는 일본분이셨고 한국말을 잘하지만 완벽한 느낌은 아니었다. 그래서 한국말로의 대화에 조금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원하는 것들을 말하고 주문까지 도와주어 정말 편하게 즐길 수 있었다. 먼저 일어나서 가게를 나설 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했다.
이런 요소들이 여행의 매력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어묵탕 같은 국물 요리를 주문하고 싶었으나 없어서 주먹밥이 담긴 국물요리와 기린 생맥주를 시켰다. 오차즈케라고 하는 것 같은데 생소해서 이 용어가 맞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주먹밥을 으깨서 국물과 함께 한입 하니 여태껏 못 먹어봤던 맛이었다. '이 집 잘하네' 감탄만 하다가 치킨 가라아게와 오차즈케도 한번 더 시켜먹었다. 물론 기린 생맥주도 두어 잔 더 시켰다. 기린 생맥주는 부드럽고 시원해서 아직도 잊지 못할 만큼 강렬했다. 그렇게 여행 1일 차 마무리를 했다.
이동하는 데에만 하루의 반 이상을 썼지만 무사히 왔음에, 밤이지만 일본을 느낄 수 있음에 다행이라 여기며 다음날 있을 여행을 위해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