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서울불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찬닢channip Jun 27. 2020

내가 아이폰을 사는 이유

더 이상 호구는 싫어!

 약 한 달 전쯤에, 핸드폰을 새로 샀다. 원래 쓰던 아이폰 8로 전화를 할 때면 가끔 잘 안 들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기도 하고, 어느 날은 전화를 해도 전화가 오지 않았다는 말도 들었다. 어느 것은 핸드폰의 문제이기도 하고, 어느 것은 통신 상태의 문제였겠지만, 어찌 되었든 새로 핸드폰을 사기 위한 명분으로는 충분했다. 그리고 원래 시험 기간이거나 스트레스받을 때 비싼 물건을 통 크게 사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없잖아 있는 것 같다. 원래 계획은 올해 말에 출시될 아이폰 12를 사는 것이었지만, 가격도 기존 아이폰이나 갤럭시 폰보다 저렴하기도 해서, 2년 반 동안 쓰던 핸드폰을 결국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그날 저녁 9시쯤에 쿠팡으로 주문을 했더니 한 나절도 채 안 된 새벽 1시 반쯤에 배송을 받았다. 이렇게까지 빨리 올 줄은 몰랐는데. 2017년 12월에 핸드폰을 살 때의 사회와는 달라져있음을 체감하는 때였다.

새로 산 아이폰 SE2 레드 내부에 있는 사용설명서와 기타 등등. 레드 아이폰은 일부 수익금을 에이즈 퇴치에 기부하고는 하는데 이번에는 코로나 바이러스 퇴치에 쓰인다고 한다.

 나는 애플이라는 회사에 엄청난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니다. 처음으로 쓴 애플 제품은 아이폰 5S 였는데, 이것도 내가 산 것이 아니라, 원래 내가 쓰던 갤럭시 팝이라는 무료 폰의 액정이 깨지고 누나가 다른 핸드폰으로 바꾸면서 물려받은 것이었다. 시기적으로 군대를 가게 되어서(그때는 핸드폰을 못 썼으니까) 새로 핸드폰을 사기도 애매하였다. 여기에 아이패드도 물려받고, 새로 노트북을 바꿀 시기가 되어 두 기기와 연동이 되는 맥북으로 바꾸다 보니 어쩌다가 애플 제품으로 가득 찬 인생을 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당시 핸드폰을 바꾸는 것도 고민하지 않고 아이폰으로 갈아탔다. 그리고 우선, 갤럭시나 엘지 폰으로 사려면 고민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 많았다. 군대에서 복무하고 있을 당시에, 나와는 다른 전자제품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어떻게 거래를 해야 하는지 듣고 커뮤니티에서 찾을 수 있었다. 서울에서는 신도림이나 강변 전자상가로 가서 현금 납부, 기기 변경, 요금제와 부가서비스를 추가하는 지의 여부, 결제를 위한 새 카드 발급 등 여러 가지 옵션을 고려한다면 기존 정가의 반, 혹은 그 이상으로 핸드폰을 살 수 있었다.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니 길에 있는 일반 통신사 대리점에서 콩알만 한 할인을 받고 큰돈 내고 사는 것이 얼마나 비싸게 사는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아이폰은 사실 할인의 폭이 크지 않다. 통신사 대리점 사람들이 아이폰을 사면 아무것도 안 남는다는 말을 하는데, 강변과 신도림을 가든, 일반 대리점을 가든 차이가 크지 않은 것을 보면 사실인 듯싶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폰 8을 대리점에서 구매할 때에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가 아이폰 8을 사고 싶다고 하는데도 핸드폰을 파는 사람이 계속 아이폰은 너무 불편하다, 왜 쓰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갤럭시를 사거나, 아니면 더 비싼 모델인 아이폰 X을 사는 것이 어떠냐고 들어야 했다. 그럼에도 꿋꿋이 내가 사고 싶은 것을 사기는 했다. 튼튼하지 않은 이 애플 폰의 수명이 죽어가는 것이 느껴짐에도 몇 개월 동안 핸드폰을 사러 가지 않은 이유와, 갤럭시 폴더블 폰들이 정말 매력적으로 느껴졌음에도 이번에 아이폰을 살 때만큼 결단력 있게 실행하지 못한 것은, 아이폰 이외의 핸드폰들을 사기에는 고려할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 까닭이 크다.

 쿠팡에서 아이폰을 살 때 이러한 고민들 없이 주문해서 얼마나 마음이 편했는지 모른다. 쿠팡과 같은 사이트 구조가 같은 물건도 다른 곳에서 공급하고 가격도 달라서 내게는 머리 아픈 쇼핑몰이라는 느낌이 크지만, 아이폰은 쉽게 살 수 있었다. 실은 원래, 애플 제품은 보상 판매가 된다고 하여 코로나 시국에도 꿋꿋이 가로수길 애플스토어를 찾아 쓰던 핸드폰을 반납하고 구매하려고 했다. 그러나 내 아이폰에 스크래치가 있다는 이유로 거부당하여, 40만 원 남짓의 예상 지출 금액이 55만 원으로 변하기도 하였고 굳이 그럴 거면 사야 하나 싶어 사지 않았다. 그리고 외국계 기업 특유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려는 듯한 뉘앙스가 있어 기분이 좋지는 않은 것은 덤이었다. 물론 애플스토어 직원들은 언제나 친절하게 응대해주어 큰 불만은 없고, 지금은 덕분에 쿠팡에서 카드 할인을 받아서 더 싸게 샀으니 잘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아이폰을 사는 이유는 마음 편히 기분 좋은 쇼핑을 할 수 있어서이다. 이제는 일상생활과 떨어질 수 없는 핸드폰을 굳이 전통시장에서 흥정하는 것처럼 깎고 또 깎을 생각은 하기도 싫고, 누구한테 지적받으면서 물건을 사고 싶지도 않다. 아이폰의 UI나 깔끔한 디자인을 뒤로하고도, 큰 의심하지 않고 구매할 수 있는 아이폰이 참 감사하다. 굳이 우리나라에서는 왜 통신사 대리점 위주로 핸드폰을 판매하는지, 제조사와 통신사의 끈끈함은 오늘날에도 유효하게 작용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서울 어디를 가든지 어디에나 있는 대리점들을 보면서 핸드폰을 사는 것이 아니라 통신사와 관련한 문의들은 시큰둥한 반응들을 보이고, 실제로 통신사와 크게 관련이 있나 싶은 이 많은 가게들이 필요한가 생각이 든다. 오히려 유통단가만 높아져서 소비자들이 비싸게 핸드폰을 사야 하는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있어야 할 가게는 SK, KT, LG가 아니라 삼성, LG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말이다.

 이것은 핸드폰뿐만 아니라 여러 영역에도 포함되는 이야기다. 가끔 유튜브를 보면 중고차 시장은 심하고 심하기 그지없고, 과거에는 소위 '용팔이'라는 은어가 통용될 정도로 전자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쉽지 않았듯이 말이다. 아이폰을 쓰는 사람은 아이폰을 많이 쓰고, 갤럭시를 사는 사람은 갤럭시를 계속 쓴다고 하지만, 시장의 구조의 변화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러한 구조 속에서 누군가는 이익을 보고, 다른 누군가는 공짜폰처럼 필수 불가결한 핸드폰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도 있으니 분명 이점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쿠팡과 아이폰을 시작으로 다른 회사들의 핸드폰도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소비자 위주의 구조로 변해가기를 바라는 바이다.

 

덧. 그렇지 않아도 현재 쓰고 있는 맥북으로는 가끔 인터넷 결제가 막힐 때가 있어서 새로 50 만원 남짓의 예비 노트북을 살까 고민 중인데, 사이트마다 가격 다르고 옵션도 달라지니 이해는 되지만 생각만 해도 복잡해지는 요즘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포스트 포퓰리즘의 도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