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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닢channip Jul 18. 2020

라다비노드 팔의 이상한 판결

일본의 패망 이후 도쿄재판

 1946년 4월 29일부터 1948년 12월까지 일본 제국주의 전범들을 처리하기 위한 도쿄의 극동국제군사재판소(International Military Tribunal for the Far East, 이하 도쿄재판)가 소집되었다. 재판소가 세워진 목적은 명백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나치 전범들을 심판한 뉘른베르크 재판(Nuremberg Trials)과 마찬가지로, 추축국의 일원으로서 진주만을 타격하여 전쟁을 일으키고, 아시아 등지에서 난징대학살과 같은 반인륜적인 전쟁범죄를 행한 일본의 A급 전범들을 재판에 회부하여 징벌하고자 한 것이다.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의 총사령관이던 맥아더(Douglas McArthur)가 일본의 항복문서에 조인한 아홉 나라에서 열한 명의 판사들을 불러모았고, 전범들을 기소하기 위해 미국 트루먼 대통령이 지명한 키넌(Joseph B. Keenan)을 중심으로 다국적 검사단이 꾸려졌다.

 벵골 출신의 캘커타 고등법원 판사였던 라다비노드 팔(Radhabinod Pal)은 영연방의 일원으로서 군사재판소의 판사 자격으로 파견된다. 그러나 연합국의 입장에서 무난하게 전범들을 처벌하기보다 그는 처음 도쿄에 도착했을 때부터 판결을 내리기까지 일본 전범들의 전원 무죄를 주장하며 다른 판사들과는 상이한 길을 걷는다. 최종 판결을 통해서 A급 전범들의 거취가 정해질 때에도, 재판에 동의하지 않는 소수 의견서를 제출하여 일관된 주장을 피력한다. 일본 전범들에게 적용되는 죄목과 형량은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며, 따라서 국제군사재판은 무효라는 것이다.

판사 라다비노드 팔. 동인도 벵골 지방 출신이다

 팔이 일본 전범들을 판결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 이유는 법리상 옳지 않기 때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기소된 죄목이 모두 사후에 소급된 것(ex post facto)이라는 것이다. 일본 전범들이 기소된 항목은 ‘평화에 반한 죄’, 즉 전쟁을 계획하고 일으킨 침략의 배후로서 평화에 해악을 끼쳤다는 대목이었다. ‘평화에 반한 죄’ 항목은 실은 도쿄재판 바로 이전에 나치 전범들을 처리하기 위한 뉘른베르크 재판에서도 적용되었다. 그러나 이 당시에도 문제가 된 것은 무엇이 국제적으로 합의된 기준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뉘른베르크에서 반평화 침략 범죄는 죄형법정주의, 즉 법이 있어야 죄가 있다는 원칙에 예외를 두면서 재판부는 인류 보편성에 비추어 볼 때 침략을 단죄하지 않는 것은 정의 구현에 옳지 않다고 보았다. 또한 국제법이 국제 입법기관이 없다는 점에서 관습법을 인정해야 하며, 시대에 맞게 대처해야 한다는 점에서 뉘른베르크 재판부는 판결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었다

 팔은 연합국 측에서 패전국들을 재판소에 올리는 과정에서 명확한 기준이 설정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문을 제시했다. 그에게 도쿄재판은 평화와 침략이라는 승전국이 구성한 ‘임의적’ 근거들이 ‘합리적’ 판결을 통해 결과를 도출해내는 과정에 불과했다고 보인다. 이러한 점은 일본 전범의 변호인들이 법적 근거의 부재를 토대로 주장한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그러나 전범들의 변론은 연합국의 기준에서 묵살되었다. 팔에게, 뉘른베르크와 도쿄재판은 인류 보편적 가치를 근거로 삼았지만, 그것은 허울일 뿐 실상은 승리한 ‘서구 유럽’의 판결을 위한 것이었다. 인류사를 통틀어 보았을 때 서구 제국주의가 식민화 과정에서 일으킨 학살과 비 인륜적인 행위는 국제법이 없어서 재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정해진 국제법 없이 이루어진 일련의 재판들은 그들을 법정에 세울 법이 없기 때문에 또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팔이 경험한 도쿄재판은 패전국에 대한 승전국의 보복행위를 ‘합리적’ 구조로 도출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넷플릭스 시리즈 '도쿄재판' 중. 판사들이 회의하는 모습.

 나아가서 팔의 판결문 속에서 나타난 도덕적 문제제기는 일본 전범들과 서구 제국주의의 폭력성을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가였다. 그는 난징대학살로 대표되는 일본의 전쟁 범죄의 참상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한 사람의 책임으로 기소를 할 수 없다고 보았다. 사회적인 질서의 혼란이 개인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즉, 그에게 있어 재판을 해야 한다면 비도덕적인 사회가 기소되어야 하며, 전범으로 평가되는 개인들은 무죄였다. 그리고 그러한 비도덕적인 사회는 서구 제국주의, 혹은 그 이전부터 자행되어 왔던 전쟁과 학살이 자연스러운 약육강식의 사회 모습까지 기원할 것이다. 관습적인 법으로서 일본 전범들이 법의 소급적용을 받게 된다면 연합국을 포함한 서구 사회 전체가 법정에 서야 할 것이며, 관습적인 법 또한 인류 역사에서 자행되어 온 소위 전쟁범죄를 고려해볼 때 일본의 전쟁 행위는 범죄로서 인정될 수 없었다.

 도쿄 재판소가 설치된 것은 팔의 논리에 의하면 역설적인 상황이었다. 재판에 참여하는 판사와 검사는 일본의 전범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입장이기 때문에 그들의 죄를 물을 수도, 판결할 수 없었다. 재판의 행위는 권위와 합리적 절차에 따라 진행되는 ‘보복 행위’에 불과했다. 그리고 도쿄뿐만 아니라 뉘른베르크 재판도 그에게는 같은 맥락에서 파악하였다. 이러한 전후 재판들은 그들만의 합법적인 기준을 세워 2차 대전 사건들에 대해서는 스스로에게는 면죄부를 부여하는 시스템이었다. 서구는 이 과정에서 그들이 제국주의 침략 과정에서 무너졌던 도덕성을 손쉽게 회복하였다. 그들의 정체성은 반인륜적인 전쟁을 일으키는 추축국, 즉  타자를 설정하면서 서구 합리주의를 정당화하였다. 일본과 나치라는 비도덕적 타자를 설정하여 그와 반대되는 연합국의 이미지를 설정할 수 있었다.

넷플릭스 시리즈 '도쿄재판' 중 라다비노드 팔로 분한 이르판 칸

 역사가 말해주듯이, 팔의 주장은 소수의견으로 참작되었고 현 일본 총리 아베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를 포함한 일본의 전범들은 A, B, C 등급 별로 형량이 결정되었다. 또한 그렇게 치열한 재판 과정으로 나온 결론이 국제적인 관계에 따라 감형되기도 하였다. 팔은 재판 이후 시간이 꽤 흐른 뒤 일본으로 가서, 전범들의 가족들에게 가서 그들은 죄인이 아니라고 위로해주었다고 한다. 심지어 현재에는 야스쿠니 신사 앞에 일본 편을 들어주었던 그의 공적을 기리며 참배 비석도 세워져 있어 우익들의 방문지가 되고 있다. 그리고 인도와 일본 관계에 있어서도 우호 증진 인물로서(마치 한국에서 인도와 친밀한 연결고리를 만들어주려고 가야의 허황후가 인도에서 온 인물이라고 식상하게 말하는 것처럼) 지속적으로 언급이 되는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팔을 온전히 비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가 죄형 법정주의를 내세우며 무죄를 주장한 것은 틀린 것도 아니었으며 관습법을 국제 재판소에서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다른 해석이라는 점에서 다른 판사들도 명쾌한 반박을 하지는 못하였다. 또한,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영국이라는 적의 적인 일본의 편을 들었다는 점도, 일본이 줄을 잘못서지 않았다면(서구로부터 아시아 해방이라는 명분을 가진 일본이 과연 그랬을 리 없겠지만) 정반대의 결론에 다 달았을 수도 있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안중근이 동양평화론의 허구성을 폭로하며 의거를 행하였지만, 일본과 아시아인으로서 정체성은 인도에서 영국의 제국주의의 부당함과 서구의 모순성을 인지하게 했다. 

 인도의 학자 아쉬스 난디는 그를 평가하면서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의 인물들의 일화를 통해서 그가 왜 그러한 판결을 내렸는지 빗대고 있다. 악인으로 치부되는 두르요다나와 그와 대립하는 비마가 결투를 할 때, 두르요다나는 크샤트리아 전사로서의 의무를 다하면서 영예롭게 죽는 반면, 비마는 크리슈나 신의 속임수로 도움을 받아 비겁한 승리를 하게 된다. 절대선과 절대악이 없이 인간은 복합적인 것처럼 팔에게는 판결을 내리는 입장과 피고인의 구분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위의 인물들은 싸움 중에, 혹은 싸움에서 승리한 후에는 신 크리슈나도 소멸을 피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멸족하지 않고 살아 숨쉬는 오늘날 세계에서, 정말 소외되고 있는 피해자의 소리는 어디에서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지 생각해본다.


 이 이야기와 관련된 내용은 넷플릭스 시리즈 '도쿄재판'을 통해서 드라마화되었다. 얼마 전에 작고한, 인도 배우 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이르판 칸'이 라다비노드 팔의 역할을 맡아 연기한다.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담담하게 본인의 이야기를 하며 질문을 던지던 파이가 판사로서 논리를 펼치는 모습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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