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피카소(Picasso Manqué) 신드롬
한국에서 다수의 음악 평론들을 보면, 방탄소년단이 이루고 있는 업적들은 팝의 '서브컬처 케이팝'으로 여전히 인지되고 있다. 이는 한국에서 더 강력한 자기 검열적인 해석 방식이 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미국 문화의 영향을 받아 케이팝이 탄생하였으며 그 속에서 대중들의 문화 수용은 미국의 문화를 선망하는 문화종속적인 관계로 보고 있다. 만약 그러하다면 20년 전의 아이돌이 한국에서 나올 때의 문화적 자산은 방탄소년단이 데뷔하는 것에 토대는 되었겠지만, 방탄소년단의 음악이 전 세계적인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는, 과거 케이팝과의 연속성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미술사학자 파르타 미터(Partha Mitter)는 인도의 근대 미술가 가가넨드라나트 타고르(Gaganendranath Tagore)의 큐비즘적인 회화가 서구권에서 '부족한 피카소'로 제한되어 해석되는 것에 주목했다. 피카소가 아프리카 부족들의 가면들과 같은 소재를 활용하여 '아비뇽의 처녀' 등 그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이룩한 것으로 평가받는 것에 비해서, 타고르의 작품은 서구에서 창안한 큐비즘이라는 소재를 이용하였으나 인도의 미술답지 못하고 모방에 그쳤다고 혹평받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창의적이지 않게 서구의 소재를 사용하여 작품의 질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에서 서구 근대 미술의 역사를 보았을 때, 서구의 미술은 과연 얼마나 가치 있는가라는 딜레마에 빠진다. 피카소와 동 시기에 활동한 입체파 화가들인 조르주 브라크, 파리의 로베르 들로네 등은 피카소의 아류작들로 큰 의미가 없는 작품들인가? 그리고 피카소는 입체파 미술의 토대가 되는 아프리카 가면들을 제작한 장인들에게 공을 돌리고 있는가? 한편 칸딘스키, 몬드리안을 비롯해 수많은 예술가들은 당대 유행하던 동양철학과 동양철학으로 형성된 신지학(Theosophy)을 바탕으로 작품을 제작하였다. 힌두교, 불교 등에서 볼 수 있는 윤회나 우주적 합일 등에 영감을 받아 작업한 것이다. 그들의 미술이 동양의 사상을 표현하였다면, 그들 작품들의 주제인 동양철학이 더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즉, 영향 관계를 따지면서 미술을 계보적으로 보고자 했을 때 서구 근대 미술은 서구 바깥에서 근원을 찾아야 하거나, 철학 텍스트의 의미 없는 재현이 될 뿐이다.
우리는 위와 같이 미술작품 간의 위계/권력관계에서 벗어났을 때, 미술가들이 소통과 선택을 통해서 시각적인 문법을 익히고 받아들인다는 것을 비로소 인식할 수 있다. 미술이란 결국 (1)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를 (2) 어떠한 시각적 방식으로 표현할지 '선택'하는 것이다. 따라서 같은 큐비즘 작품이더라도 피카소는 인물의 삼차원적인 재현을 표현하기 위함이라면, 로베르 들로네는 프랑스 파리의 역동적인 장면을 담아내고자 했다. 가가넨드라나트 타고르는 색채를 강조하면서 작품 내적으로 시각적 의미를 부여하고자 그것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큐비즘이라는 시각 언어를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같은 지점에서 우리는 방탄소년단과 케이팝 음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BTS의 음악적 성취는 그들이 이뤄놓은 성공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가되고 있지 않다. 우리는 (1) BTS가 가사와 음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청춘들의 고뇌와 꿈'이라면서 분석하고 있지만 (2) 그들이 표현하는 음악적 방식이 제대로 논의된 적이 없다. 기본적으로 빠르게 내뱉는 랩이 포함된 아이돌 음악을 들을 때 중요한 것은 가사의 내용보다는 음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특히나 한국어권 바깥의 대중들은 한국어 가사보다 음을 중심을 노래를 듣고, 번역된 형태로 이해할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음악 프로듀싱의 완성도가 BTS의 성공에 결정적 요인으로 분석되어야 한다.
케이팝의 음악 프로듀싱은 여러 문화권의 음악이 집약된 '혼종성(hybridity)'을 띤다. 케이팝은 장르적 카테고리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재즈', '클래식'과 같은 하나의 장르이다. '흑인 힙합 스타일의 케이팝'은 힙합 장르가 섞인 케이팝이며, 펑크, 아메리칸 팝 스타일의 케이팝도 모두 케이팝 장르 구분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한국의 음악 산업은 하나의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발전하였다기보다 혼종적 스타일 자체가 케이팝이 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노래 하나에 여러 가지 장르가 삽입된 소녀시대의 "I GOT A BOY"는 이미 10년 전부터 아이돌 중심의 케이팝 스타일이 완성되었음을 보여주는 예시이다. 미국 팝 음악의 영향을 바탕으로 케이팝이 성장하였다는 것은 그러한 점에서 어폐가 있다. 케이팝이란 어느 한 문화권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장르가 아니라 모든 장르를 섭렵해나가는 음악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아이돌 시스템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케이팝이라는 혼종적 장르가 아이돌 기반의 산업을 '선택'한 것일 뿐이다. 여기에 팝 문화가 케이팝 형성에 기초가 되었다는 문화적인 권력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룹 가수로서 팬덤을 가장 잘 끌어올 수 있는 이미지 메이킹 방식을 사용하면서 무대와 시각장치를 음악적으로도 잘 녹여낼 수 있는 방식인 아이돌 시스템을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취사선택하였다. 마치 피카소 이외의 작가들이 큐비즘을 선택하여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내던 것처럼 말이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는 연습생 생활로 완벽히 만들어지는 가수, 시각적인 뮤직비디오와 무대 연출을 발전시켜 '세계관'이라고 하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낸 음악 산업은 지구 상 한국만이 유일하며 그것이 한국 사회가 아이돌 시스템을 선택하였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케이팝의 산업 구조는 혼종적 음악성과 아이돌 시스템을 바탕으로 전 세계적인 음악 규범에 알맞게 변화할 수 있게 되었다. 음악의 혼종적인 프로듀싱 방식은 미국 팝의 최신 경향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타 장르를 수용할 수 있어야 했다. 즉 누구나 들어도 이해 가능할만한 음악으로 변모할 필요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팝 음악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하나의 음악적 언어로서 사용되었기에고 케이팝은 그것을 본인들에게 맞추어 사용했다. 팝의 음악 언어를 사용하면서 케이팝은 아이돌을 내세우면서 무대를 중심으로, 시각적으로 화려한 효과와 음악을 완성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아이돌이 돋보일 수 있는 음악, 무대 등이 고려된 케이팝이란 세계적 대중음악 속에서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사례로 성장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케이팝이 보편적 음악 작곡의 궤를 같이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수의 작곡가들이 케이팝 음악에 참여할 수 있었다. 주로 북미, 북유럽 등지의 프로듀서들도 자신들이 작곡하는 방식에 케이팝 아이돌적 요소들을 집어넣으면서 활발히 활동할 수 있었다. 이들과 같이 작업을 하고 들을 수 있는 국내의 작곡가들 역시 음악적 소통이 가능하였다. 더군다나 스마트폰과 유튜브 등의 발달로 음악적 샘플을 공유할 수 있는, 일종의 음악 프로듀서들의 '가상적 음악의 소통 공간'이 촉진될 수 있었다. 물론 한국의 경우, 산업시스템과 맞물려서 프로듀서들 간 실제적이고 국제적인 접촉이 가능하였기에 이러한 발전이 더욱 빠르게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케이팝은 음악의 보편 언어를 인식하면서 그것을 활용하여, 산업적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아이돌 시스템을 구축하였기에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인기를 얻어올 수 있었다. BTS 또한 케이팝 산업의 특징에 발맞추어 본인들의 음악을 풍부하게 했다. 랩몬스터라는 이름에서 보이듯 랩을 잘하고 힙합 음악을 섞으면서도 전자음악 사운드를 넣으면서 춤을 추고, 한국적 멜로디도 삽입하는 케이팝의 혼종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그리고 과거의 방탄소년단 음악과는 조금 다르게 2021년 빌보드를 오르내린 'Dynamite', 'Butter', 'Permission to Dance'와 같은 곡은, 기존의 케이팝 장르에서 영어 가사를 기반으로 하는 아메리칸 팝 사운드에 가깝게 되었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코로나 시기에 세계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스타일로 프로듀싱이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BTS는 다른 남자 아이돌들을 제치고 빌보드에 쉽게 오르내릴 수 있는 케이팝 스타가 되었는가? 사실 이것을 정확히 대답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나, 나의 대답은 '2015년 경 이후 스마트폰과 플랫폼 매체가 본격적으로 활발해진 시기와 맞물렸을 때 세계적으로 보편적이면서 특색 있는 음악을 내놓은 케이팝 그룹'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당시에 K-Pop 남자 아이돌로 엑소(EXO)도 활발히 활동하고는 있었으나 방탄소년단이 내놓은 중독적인 EDM 사운드가 세계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화양연화> 시리즈인 'I Need U', '쩔어', '불타오르네(Fire)', 'Run'과 같은 곡들은 그러한 경향에 잘 맞는 곡이었다고 생각한다. 화양연화 시리즈부터 빌보드에 오르긴 하였으나 2016년 '피, 땀, 눈물'이 나오면서 국제적인 트렌드를 이은 정점이라고 생각한다. BTS가 떠오르고 있던 2015~16년은 Avicii, The Chainsmokers, Alan Walker, Kygo 등 작곡가들이 주도하던 하우스 장르 음악이 대중적으로 많이 인지되던 시기였다. 나아가서, 위와 같이 이름 있는 하우스 음악 작곡가들이 북유럽 출신이라는 점은 지금까지도 케이팝의 많은 작곡가들이 북유럽 국적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느껴진다. 방탄소년단은 국제적 음악 시장의 최신 경향을 숙지하면서 그들이 표현하려는 내용을 통용되던 음악의 언어로 가장 잘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음악적 성취에 스마트폰 플랫폼의 발전이 한몫을 하였지만 여기에는 팬덤이 형성될 수 있었다는 점도 무시할 수는 없다. 방탄소년단은 2015년 서비스를 시작한 브이앱을 가장 잘 활용하던 아이돌 중 하나였다. 브이앱은 멤버들이 라이브 방송을 켜서 팬들과 직접 소통의 장을 만들어 팬들과의 거리를 좁히는 플랫폼으로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았고, 더불어서 유튜브에도 오르내리던 것은 덤이었다. 국내 팬들은 해외 팬덤을 위해서 자체 컨텐츠들을 번역하여 공유하였고, 케이팝이 익숙하지 않은 외국 팬들에게도 케이팝의 팬덤 문화를 이식할 수 있었다.
BTS를 비롯하여 블랙핑크와 여타 아이돌 그룹의 빌보드 진출은 단순히 일회적인 현상이 아니다. 이들의 발군은 한국 음악시장이 국제적 음악의 소통장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케이팝은 음악의 국제적 문법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지역의 음악이면서 장르 음악으로서 두각을 나타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케이팝을 단순히 매니악한 팬덤의 취향이라고 치부하지 말고 방탄소년단의 성공 시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비록 음악적 분석 능력이 빈약하여 직접적인 대조를 하기 어려웠으나, 앞으로 BTS의 성공 요인을 말하고자 한다면 음악성 자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계인들에게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이해시킨 방법은 그들의 음악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지금 다수의 대중문화 평론들은 그 이외의 지점에서 성공요인을 찾고자 하니 빌보드에서 오르내리는 그들의 성취가 평가절하되고 일시적인 인기로 보일 수밖에 없다.
BTS의 성공은 한국 케이팝 산업의 자산을 바탕으로 시기적으로 잘 맞아떨어지면서 그들의 성공시대를 개척할 수 있었다. 혼종적인 케이팝의 성격이 아이돌 시스템과 어우러져 나타난 BTS는 국제적인 음악 규격을 지키면서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그들이 빌보드에 오르내리면서도 '팝 가수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하지만 그저 인기가 많은' 가수로 평가되고 있는 현실은 안타까울 따름이다.
물론 BTS가 K-Pop의 발전에 얼마나 큰 발전에 기여했는가라고 묻는다면 그들이 불러온 사회현상을 제외했을 때 생각보다는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케이팝이 보여주는 종합 엔터테인먼트로서의 혼종성은 요컨대 보다 살아남기 힘든 걸그룹 위주로 실험적이면서 놀라운 형태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3세대, 4세대라고 불리는 주로 2015년 이후 등장한 그룹들은 케이팝의 영역을 더욱 넓고 두텁게 했다.
BTS의 성공은 케이팝이 하나의 음악으로서, 중심-주변으로 치환되는 권력 관계에서 벗어나서 국제적 음악 시장에 참여하는 가수로서 왜 성공할 수 있었는지 알려준다. 이는 음악의 분야에 국한된 내용이 아니다. BTS의 성공은 한 발 더 나아가서 K-드라마, 영화가 어떻게 세계적인 인기를 가능케 했는지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K-pop과 BTS의 성공은 그러한 점에서 세계 문화적인 흐름 속에서 우리가 참여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사례로서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