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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래 Feb 27. 2020

Home, sweet Home




바람과 비를 막아주는 든든한 집 안, 그 아늑하고 그늘진 거실에

찐 고구마와 찐 감자가 놓여있는 식탁이 있었다.

그냥 놓여 있는 음식의 감사를 모르던 어릴 때 

나는 그 식탁을 가벼이 지나쳐 찬장에서 라면을 꺼내 끓여 먹었다.


나프탈렌 냄새가 옷마다 자욱하게 배어있던 오래된 장롱 속에는

서랍마다 놓여있던 해 지난 신문지와 제습제가 있었다.

신문지며 나프탈렌이며 낡은 냄새가 옷에 배는 것이 촌스럽다 생각했다.

하지만 서랍을 열 때마다 신문지 위에 돌돌 말린 양말과 옷들은 변함없이 가지런하고 깨끗했다.


티비를 '테레비'라고 말하던 할머니가 어느 늦은 밤에 말했다.

'테레비가 고장이 났나벼'

리모컨 작동법을 몰라 혼자 있는 저녁 내내 티비를 음소거로 시청을 한 것이다.

mute버튼 한번 누르면 될 것을 몰라 50분내내 바보상자 속에서 말없이 움직이는 사람들만 바라보고 있었더란다.

할머니는 밥 짓고, 쓸고 닦고, 빨래하기 100번 보다

휴대폰 전화 거는 법, 리모컨 작동 1번 하는 것을 더 어려워했다.


시간은 아무 소리 없이 너무나 빨리 할머니를 지나가고 있었다.

무성영화처럼 흑백영화처럼 조용하게 

뚝 끊기며. 


고3 때 나는 집을 나와 '나의 집'을 찾고 싶었다.

그 무렵 할머니의 자식들은 할머니 모시기를 서로 미루며 할머니가 이 집 저 집 옮겨 다니셔야 했기에

나까지 엮여있는 것이 싫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할머니를 다시 만났다.

꿈쩍 꿈쩍 축 늘어지는 눈꺼풀도 감당하기 힘들어진 할머니를. 


할머니가 리모컨 걱정 없이 나와 지냈으면 했다. 함께 살 집을 꼭 마련하고 싶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몇 달 지난 7월, 스물여섯 살 때에,

몇 년간의 반지하생활을 마치고 햇빛이 드는 따듯한 집을 구하게 됐다.

페인트칠을 직접 하고, 그간 모은 돈으로 내 생의 첫 화장대를 사고, 차곡차곡 내 물건들로  집을 채워갈 때 

나는 이 집과 고양이와 침대와 화장대로 행복해질 수 있길 바랬다.

하지만 나는 뿌듯하지 않았다. 


계단 4층을 오르내릴 때, 할머니가 이 집에 나와 함께 살았다면

집 밖에 나가기까지 반나절은 걸렸겠다 생각하며 혼자 웃었다.

그러다가 

아무리 오래 걸려도 이제는 기다려줄 수 있는 인내심이 조금은 자란 나라고 치고,

할머니가 그 계단 끝에 있어주면 안 될까.

그런 생각을 한다.


늘 자리를 지켜주며 늘 조용히 잊혀졌던 사람,

나는 그 사람 속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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