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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래 Mar 20. 2020

덧칠과 닦아내기

그냥 남겨두고픈 기록.


사랑하는 우리 사이가 그려진 액자위에,

내가 좋아하는 향을 고민하며 골랐을 향초 위에 먼지가 쌓여있을 때마다 뜨끔 하는 것은

소중한 추억들에게 내가 무심해졌다는 생각이 들 때 다.

그래서 나에게 닦아내기란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동안의 무심함도 너무 빨리 지나가는 일상도 무뎌진 마음도 천천히 닦아내는 일이다.


오늘

얼룩진 거울을 닦고 얼굴을 들여다보는데 눈썹이 너무 길어서 질서 없이 무성히 자란 잡초 같았다.

눈썹을 날렵히 잘 그리고 다니는 친구에게 눈썹 어떻게 정리하냐고 물어봤다.

친구는 자신이 눈썹 다듬는걸 동영상으로 찍어 내게 보내주었다.

친구 눈썹은 반토막 밖에 없고 숱도 적은 눈썹이라 눈썹 털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웃기고 고마웠다.

아무튼 그렇게 그 영상을 보며 눈썹 다듬기를 연습했다.

눈썹을 반토막 날린 적이 여러 번이라 과감히 정리하기가 망설여졌다.

야금야금 털을 잘라내다가 손을 멈췄다. 앞으로 천천히 연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뭐든지 다 연습이구만, 이라고 친구에게 짧은 말을 한 후 아는 언니의 화실로 향했다.


미술 전공인 언니에게 수채화 기초에 대한 조언을 얻고 싶었다.

혼자 종종 수채화를 그리는데 명암 표현을 더 배우고 싶어 져서!


오늘 언니에게 명암과 명도 채색을 배우며 들었던 말과 느낀 걸 기록한다.


물과 물감을 붓으로 담아내 농도를 조절하면 하나의 색에서도 여러 색이 나올 수 있다.

붓으로 터치를 할때도 천천히, 물기가 마른 후 천천히 물감의 농도를 높여 가며

덧칠을 해 준다.  물의 농도가 많은 터치위에 또 덧칠하면 종이가 울어버린다.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구나.


조화를 이루는 것


하나의 색깔의 채도를 높일 땐 세 가지 이상의 색을 섞으면 색이 탁해져서 안 좋다고 언니가 말했다.


검은색에는 붉은빛이 나는 검은색도 있고, 파란빛이 나는 검은색도 있다.


제일 밝은 것과 제일 어두운 것이 있는 것이 그림의 완성이다.


모든 사물에는 밝음과 어두움 그리고 반사광과 그림자, 다시 밝음 이 모든 게 어우러져 있다.


선은 그냥 그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두께감을 그리는 일이라 했다.


 그림 속에서 나만의 표현을 찾고싶다고 하자 언니는 말했다.

연습하면 된다고,

자기가 좋아하는 화가의 그림을 따라 그려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도 있다고,

기본을 이해하는것도 중요해,  그러다 나만의 화풍을 찾을 수 있다고


그림 그리는 동안 느낀 것들과

언니에게 들은 말들이 , 삶도 그렇다는 말로 치환될 수 있음을 느꼈다,


기본을 해야 한다는 말, 정말 당연한 얘기지만 어릴 땐 기본기 하길 너무 게을리했다.

그 모든 기본의 과정은, 나만의 표현과 방식을 찾아낼 때까지의 꾸준한 반복이 필요하다는 것,

그건 정말 중요한 사실이었다.


오랫동안 내 삶에 덧칠해온 것들에 무심해지지 않기를

마르기를 기다리며 꾸준히 덧입혀 나가기를

너무 많은 색을 뒤섞어버리지 않길,

내가 담아내는 색이 고유의 색을 내며 다른 색들과 조화를 이뤄가기를


바라며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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