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받은 약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독했다. 진득하게 앉아서 무언갈 할 수 없을 만큼 눈꺼풀은 수시로 내려앉았고, 억지로 눈을 치켜뜨면 흰자가 눈을 가득 메우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5분 이상 모니터를 바라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참고 참다가 못 견딜 때쯤이면 잠을 깨우기 위해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사무실을 한 바퀴씩 돌곤 했다.
제대로 된 업무 수행이 어려워 회사를 그만두는 것을 상담하기도 했지만, 의사는 양해만 해준다면 루틴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버티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그래도 제법 잘 견디고 있다고 생각하며 안정을 되찾아 가던 어느 날. 친한 동료들이 당시 내 눈빛이 너무 불안했다며, 정확한 병명은 몰랐지만 나에게 생긴 이상을 직감했다고 전했다.
나의 흰자 가득한 눈빛과 들썩임에도 그저 함구함으로 위로를 전했던 것이다. 때로는 따뜻한 말 한마디보다 침묵이 더욱 강력한 위로가 된다는 것을 이번 일을 겪으며 다시 한번 배웠다.
약의 부작용으로 다시 돌아와서 이야기하면, 병이 낫기 위해 먹는 약인데 뭔 놈의 부작용이 이렇게도 많은지... 경련과 경직은 물론이고, 수전증에 탈모까지...그리고 참을 수 없는 식욕은 덤이었다. 이 식욕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태 마른 인간이었던 내가 한 달에 10kg 가까이 찌고 말았다.
생명이 위태로운 병에 비하면 배부른 소릴 수 있지만, 양극성 장애의 자살률이 15%인 점을 보면 절대 가벼운 병이라 생각할 수 없다. 물론 약의 부작용에서 모든 게 기인하지 않지만,
많은 환우가 부작용으로 단약을 하고, 그로 인해 병이 악화한다고 하니 무시할 이야기는 아니다.
다행히 나는 부작용도 많이 잦아들었고, 나에게 맞는 용량과 약도 찾아가고 있다. 초반에 무서운 기세로 덤벼든 부작용에 지지않았던 덕이다.
최근 박보영 배우가 청룡시리즈어워즈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전했던 소감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제가 누군가에게 공감과 위로를 주고 싶어서 했던 작품이었습니다. 혹시 너무 어둡고 긴 밤을 보내고 계신 분이 계신다면 지치지 말고 끝까지 잘 버티셔서 아침을 맞이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는 꼭 나에게 던지는 메시지 같았다. 그 누구도 몰라주는 긴 터널 같은 시간을 견디고 있는 나, 그리고 비슷한 시기를 견디는 모두가 자신을 알아주고 꼭 안아주는 날이 오길...
더디더라도 반드시 다시 일어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