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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핵보컬 Dec 14. 2023

TGI, 베니건스, 아웃백 그리고 크리드

Creed - Weathered

어릴 적에 나는 패밀리 레스토랑을 정말 좋아했다. TGIF, 베니건스, 아웃백, VIPS, 토니로마스, 루비투스데이 등 한국에 오픈했던 모든 곳들을 즐겼는데 이 중에는 현재까지 살아남은 곳도 있고 지금은 자취를 찾을 수 없는 것들도 있다. 그 시절 배우 김승우가 나왔던 광고에서는 베니건스 가는 날이 마치 소풍처럼 설렌다는 것이 해당 CF의 컨셉이었는데 실제로도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거짓말이 아니라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는 날에는 그 자체만으로도 하루의 큰 즐거움이 되었던 것 같다. 게다가 당시에는 패밀리 레스토랑이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고급스러운 곳으로 이미지가 박혀있었는데, 과장이 아니라 청소년기에는 대중적으로 레스토랑의 티어를 나누자면 가장 위에 호텔 레스토랑이 있었고 거의 그 바로 아래 위치했던 것이 패밀리 레스토랑 정도였다. 당시에는 파인다이닝이라는 개념이 대중에게 잡혀있지도 않았고, 구색을 갖춘 코스요리를 제공하는 레스토랑도 있기는 했으나 대중적인 접근성은 지금보다 많이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당시에 나왔던 영화 '리베라 메'에서는 한 소방관의 가족이 큰 마음먹고 베니건스에 들어갔다가 메뉴판 가격을 보고 조용히 다시 문을 나서는 장면도 있었으니 패밀리 레스토랑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너무 비싸다...다음에 사줄게...

청소년에서 슬슬 성인이 되어갈 무렵의 어느 날 TV에서 모 배우가 고급 레스토랑에 데이트를 갔는데 상대 남성이 할인카드를 쓰면 좀 쪼잔해 보인다는 류의 발언을 해서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다. 사실 그냥 조심스러운 말투로 곁다리로 얘기한 것이기에 당시에 그 배우가 그렇게까지 욕을 먹을 일이었던가 싶은 부분이 있었는데, 여기에서 또 다른 문제는 사람들이 배우의 발언을 문제 삼는 것을 넘어서 "그런데 할인카드를 받는 레스토랑은 패밀리 레스토랑밖에 없는데? 그럼 제대로 된 고급 레스토랑도 아니잖아?"라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는 데에 있다. 신기하게도 내 기억이 맞다면 이 발언을 기점으로 미묘하게 '패밀리 레스토랑은 고급이 아닌 가짜다'라는 인식이 퍼지게 되었고, 이 이후로 다양한 종류의 '한 우물만 파는' 레스토랑들이 청담동을 비롯해서 도심의 여기저기에 오픈하고 대중성을 확보하면서 다양한 나라의 요리를 이것저것 선보이던 종합 선물세트 같았던 패밀리 레스토랑은 '비싼 척하는 싸구려', '이도저도 아닌 것'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지면서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 가게 되었던 것 같다.


한 때 팝을 좀 듣거나 그린데이나 블링크182 같은 팝펑크로 록에 입문한 이들, 미국 느낌이 나는 얼터너티브 음악에 조금씩 흥미를 보이는 친구들에게 크리드는 굉장히 양질의 음악을 하는 밴드라는 이미지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신이 즐기던 말랑말랑하거나 발랄한 록 음악에 비해 보다 더 헤비한 톤의 디스토션 기타 사운드를 선보이고 보컬의 육중하면서도 풍부한 톤, 거기에다 하드한 사운드에 비해 굉장히 건전한 가사로 "록은 사탄의 음악이다."라는 어르신들의 선입견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었으니, 크리드는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접근성 좋은 고급 메탈 음악처럼 느껴졌다고 생각한다. 스크림3의 인상 깊은 초반부 장면에 등장했던 'What If', 발라드와 업비트 록넘버 사이의 절묘한 밸런스를 유지하는 'Higher', 뭔가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한 브릿지 부분이 매력적인 발라드 'With Arms Open' 등의 히트곡으로 꽉 채워져 있던 2집 앨범 'Human Clay'의 성공과 함께 크리드는 대중적으로도, 록 팬들 사이에서도 좋은 밴드로 자리매김하면서 그 지위를 확고히 했던 것 같다.

예아~~~!!!

그런데 승승장구하던 이들도 3집 'Weathered'부터 묘하게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3집도 2집 'Human Clay'에 비해 크게 모자람이 없는 앨범이라고 생각하는데, 분명 비슷한 퀄리티의 결과물을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전까지 이들을 전반적으로 좋게 보던 평론가들과 대중 사이에서 크게 호불호가 갈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이들을 좋아하는 팬들, 호평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본격적으로 불호의 의견을 표하는 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내 주변에서도 록을 좋아하던 많은 친구들이 아예 더 헤비한 사운드의 메탈이나 몽환적인 브리티시 록 쪽으로 취향을 더 확고히 하면서 "에이, 크리드는 재미없지. 근데 슬립낫 2집은 진짜 끝내주더라." "이번 라디오헤드 앨범 들어봤어? 크리드랑은 비교가 안 되지"라는 식으로 크리드를 폄하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전까지 이들의 장점이었던 부분들이 모두 단점으로 둔갑하여 이들은 이도 저도 아닌 밴드, 지루하고 뻔한 음악을 하는 한물 간 뮤지션, 오글거리는 가사를 읊는 재수 없는 크리스천 록 밴드로 여겨지게 되었다. 게다가 보컬 스콧 스탭의 문란한 사생활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이들에게는 '위선적인 음악을 하는 가짜'라는 낙인까지 찍히게 되었고, 결국 이들은 이후에 꾸준히 잠정해체와 짧은 재결성, 또 그 뒤를 잇는 무기한 휴지기를 수 차례 반복하며 역사의 뒤편으로 저물어가게 되었다.

돌아왔드아!!

그렇게 영영 잊히는가 싶었으나, 코로나가 끝나고 한 해가 지나가며 신기하게도 다시 이들을 그리워하는 여론이 조금씩 형성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틱톡에 크리드의 음악을 사용하는 이들이 괄목할 만하게 늘어났고, 크리드의 음악은 현재의 30~40대들이 '아, 그 시절 참 좋았는데'라는 류의 이야기를 할 때 흔히 함께 언급되는 '좋은 추억의 BGM'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메이킹하고 있다. 결국 몇 개월 전에 크리드는 재결성과 대규모 투어를 발표했고, 이들이 예전처럼 승승장구할 수 있을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일이다. 나는 여전히 패밀리 레스토랑도 좋아하고, 크리드도 좋아한다. 물론 '패밀리 레스토랑의 음식이 파인 다이닝의 그것만큼 우수하다고 할 수 있는가?', '크리드의 음악이 특정 장르의 장인들만큼 집중도가 높고 만듦새가 뛰어난가?'라는 질문에는 나 역시 '아니오.'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분야에는 각각의 영역이라는 것이 있고, 꼭 모든 이들이 그 영역의 정중앙에서 한 우물만 파야 할 필요는 없다. 두 가지 이상의 영역에 적절히 발을 걸치고 있다고 해서 이를 꼭 '이도 저도 아니다'라고 폄하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이러한 이들만이 대중에게 줄 수 있는 즐거움 또한 무시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서 얘기했지만 나는 Creed의 3집 'Weathered'를 좋은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면에서는 2집 'Human Clay'보다도 3집을 더 좋아한다. 앨범 초반부의 'Bullets'나 'Freedom Fighter'에서는 보다 헤비하고 공격적인 음악을 하고 싶은 이들의 야심이 드러나며, 성공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Who's Got My Back Now?'는 이들 역시 실험적인 시도를 하고 싶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 트랙이다. 싱글컷된 'My Sacrifice', 'One Last Breath', 'Hide', 'Don't Stop Dancing'은 모두 이들의 캐치한 멜로디가 돋보이는 대중적 매력을 갖춘 곡들이며, 타이틀 트랙인 'Weathered'는 이들이 1집 'My Own Prison' 시절의 초심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진중한 곡이다. 현재 많은 메탈 팬들이 크리드는 싫어해도 밴드의 기타리스트인 마크 트레몬티의 실력은 대부분 인정하는 만큼 그의 뛰어난 기타 리프 감각은 크리드의 3집에서도 빛을 발한다. 게다가 거칠면서도 어딘가 푸근한 매력이 있는 보컬 스콧 스탭의 톤은 이후 크리드의 연주 멤버들이 결성한 밴드 Alter Bridge와는 다른 차원의 캐치한 어필을 보여주기에, 음악적으로는 Alter Bridge가 상대적으로 더 높은 평가를 받았어도 왜 Creed가 보다 큰 대중적 히트를 기록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고 생각한다.

근데 다시 봐도 앨범 표지는 좀 구린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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