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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핵보컬 Mar 22. 2024

블록버스터 음악의 아버지

John Williams in Vienna

어렸을 때 극장에 간다는 것은 참으로 특별한 경험이었다. 단순히 좋아하는 영화를 보러 간다라는 것 그 이상이었고 2시간 분량으로 놀이공원을 즐기고 오는 듯한 기분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극장에서 봤던 영화 중에 특별한 기억이 있는 영화는 '나 홀로 집에', '미녀와 야수', '고스트버스터즈 2', '후크' 정도가 떠오르는데, 그중 '후크'는 특히나 시청각적으로 더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피터팬이라는 식상할 정도로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를 새로운 시각으로 틀어 초호화 캐스팅과 엄청난 스케일로 스크린에서 구현한 이 작품은 이후에도 나에게 있어 '동심의 세계로의 회귀', '이세계 친구들과의 재회 및 이별'이라는 테마를 가진 작품들에 묘한 애정과 뭉클함을 갖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당시에 너무나도 재밌게 봤는데 이후에 이 영화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가 꽤나 호불호가 갈렸다는 걸 알게 되어 의외였다

이후에 초등학교 3학년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의 극장에서 처음 만났던 특별한 영화가 바로 '쥬라기 공원'이었다. 영화 제작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처음 관람했던 그때에도, 개봉 이후 30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대체 이런 걸 어떻게 만들었지?' 싶을 정도로 그 비주얼은 스크린에 옮겨진 환상의 세계 그 자체인듯하고, 경이와 즐거움과 공포를 한 데 녹여내어 어른과 아이 모두 즐길 수 있는 시대를 초월한 명작이다. 특히 영화 초중반부에 독특한 생김새의 늘씬하게 빠진 헬리콥터를 타고 주인공 일행이 섬으로 입장하는 장면은 공룡 한 마리 등장하지 않는데도 항상 전율과 설렘을 느끼게 만드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이후에 이 작품을 테마로 한 후룸라이드 놀이기구까지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등장했는데, 근래에도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에 새로운 놀이기구 'Flying Dinosaur'가 새로 오픈하여 인기를 끌 정도로 아직까지도 '쥬라기 공원'의 파급력은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말이 나온 김에, 나의 어릴 때의 가장 특별한 기억 중 하나 역시 미국에 있는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방문했을 때이다. 처음 캘리포니아에 있는 유니버설 스튜디오 할리우드에 방문했을 때, 어렸던 내게 그곳은 판타지의 세계나 다름없었다. 이름을 아는 작품이든 모르는 작품이든 단순한 놀이기구가 아니라 하나의 즐길 수 있는 테마를 주축으로 구성된 기승전결이 예술적으로 짜여있는 어트랙션 하나하나는 모두 그 자체가 짜릿한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고, 놀이기구를 타지 않고 그냥 놀이공원 안에 걸어 다니기만 해도 설레고 즐거운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기억한다. 이는 이후에 올란도에 있는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방문했을 때 절정에 이르렀는데, 할리우드 지점에서는 짧게 지나갔던 E.T.나 킹콩 등의 테마가 각각 따로 놀이기구로 구성되어 탄탄한 기승전결을 보여주었는데, 마치 즐거운 체험판 이후에 본 게임을 구매하여 즐기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나는 세 번이나 오사카에 있는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방문했는데, 그 당시에는 또 해리 포터 테마로 아예 하나의 마을과 호그와트 마법학교를 한 구역에 재현해 놓아 영화 속 세계로 들어간 듯한 신비로운 경험을 느낄 수가 있어 더 이상 어리지 않은 나이였는데도 매우 즐거웠다.


다소 두서없이 어릴 때 즐겼던 영화와 테마파크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이 맥락 없는 듯한 주제를 하나로 관통하는 사람 한 명, 그가 바로 영화음악가 John Williams다. '스타워즈', 'E.T.', '인디아나 존스', 앞서 말했던 '나 홀로 집에', '후크'와 '쥬라기 공원', 어릴 때 TV에서 즐겨보았던 단막극 시리즈 '어메이징 스토리', 그리고 '해리 포터' 프랜차이즈까지 모두 그의 손을 거쳐간 작품들이다. 신기하게도 어릴 때 장난감을 갖고 '쥬라기 공원' 놀이를 할 때 테마곡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 비디오나 TV로 더 자주 보았던 '후크'나 '어메이징 스토리'의 테마를 콧노래로 흥얼거리면서 놀았는데,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세 작품의 영화음악가가 같은 사람이었다는 걸 안 이후에 굉장히 놀라기도 했다. 세 작품 사이에 공통된 어떤 악곡 테마가 반복되거나 인용되는 것도 아닌데 그 공통된 정서를 어린 나이임에도 무의식적으로 캐치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KFC 할아버지 아닙니다...

유명한 영화음악가를 꼽으라고 하면 묘하게도 한국의 영화 매니아들은 한스 짐머나 히사이시 조, 엔니오 모리코네 등을 꼽는데, 이 뮤지션들도 모두 훌륭하지만 나의 1순위는 무조건 존 윌리암스다. 한스 짐머의 음악은 비장미와 사운드의 첨단 유행을 이끌어나가는 면모가 있고, 히사이시 조와 엔니오 모리코네는 특유의 감성을 끌어올리는 데에 굉장히 특화되어 있는데, 존 윌리암스의 음악에는 이들과는 차별화되는 독보적인 가치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어릴 때 우리가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거나 놀이공원에 갔을 때 느꼈던 그 설렘과 즐거움, 판타지의 세계에 발을 디뎠을 때의 기분이 이렇겠구나 싶은 경이로움을 청각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예술 영화나 현실적인 드라마, 역사물이나 느와르보다는 SF 블록버스터나 판타지를 다룬 블록버스터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었고 이를 계기로 영화라는 매체를 사랑하게 된 내게 그가 전달하는 청각적 가치는 다른 영화음악에 비해 압도적인 중요성을 지니는 것이다.


그의 음악을 사랑하지만 제대로 된 퀄리티로 즐기려면 각 영화의 스코어 OST를 개별구매하거나 이후 디지털 스트리밍으로 넘어온 근래에도 매번 다른 앨범을 검색해서 들어야 했기에 번거로움이 있었는데, 최근 그의 훌륭한 작품들을 한 음반에서 들을 수 있게 된 것이 비엔나에서의 실황을 녹음한 'John Williams in Vienna' 앨범의 발매 덕분이다. 물론 그의 디스코그래피가 실로 방대하기에 누락된 작품들도 꽤 있겠지만 무려 2CD에 걸쳐 알차게 많은 트랙들이 수록되어 있기에 그의 음악 혹은 그가 참여한 영화들을 사랑했던 나 같은 이에게는 훌륭한 선물과도 같은 음반이다. 일상의 스트레스에 짓눌려 잠깐의 탈출구가 필요할 때, 그의 음악을 들으며 잠시 시름을 잊어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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