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진짜 만만한가 싶기도 하고...
오랜 기간 쌓인 부정적 선입견과 낙인을 타파하기 위해 많은 록커들은 메인스트림 미디어에 노출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친근하고 소탈한 모습을 어필하고, 실제로 록 음악을 하면서 살아가는 데에 있어 직면하는 경제적 어려움과 대중의 외면에 의해 느끼는 자괴감 및 박탈감 등에 대해 진솔하게 털어놓고 때로는 눈물까지 보이면서 긍정적이면서도 접근하기 쉬운 이미지를 대중에게 심어주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는 어느 정도의 효과를 발휘하여 몇 밴드의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기도 하고 고연령층의 시청자들까지도 록에 대한 나쁜 선입견을 어느 정도 내려놓게 되기는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 효과에 만만치 않게 부정적인 부작용 역시 따라왔다는 것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전의 록은 나쁜 선입견을 갖고 등한시하는 이들도 많은 장르였으나 거기에는 일종의 금기로 인한 신비로움과 동경 역시 동반되었다. 그렇기에 싫어하는 이들은 쳐다도 보지 않지만 좋아하는 이들은 빠져들기 시작하면 미친 듯이 파고드는 매니아적인 어필이 있는 장르였다. 몇 십 년 전 록을 하거나 좋아하는 이들이 유행을 따라가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대로 밀고 나가는 뚝심 있는 멋쟁이들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다면, 이젠 그 진입장벽이 내려가고 신비감이 깨짐으로 인해 록은 더 이상 매니아들의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장르가 아니게 되었다. 심하게 말하자면 매니아적인 동경은커녕 이제는 일반 대중에게 동정을 받는 '돈과 관심이 고픈 불쌍한 음악'이라는 새로운 선입견이 생기게 되었다고 느낀다.
물론 내부적인 문제도 적지는 않다. 앞서 말했듯이 인디밴드의 멤버들 중 과반수 이상은 투잡을 뛰고 있거나, 학생의 신분으로 공부와 음악을 병행하는 이들도 꽤 존재한다. 음악 하나에 집중해도 잘 될 수 있을 확률이 높지 않은 마당에 현생과 음악에 함께 힘을 써야 하니 뮤지션의 집중도도 떨어지고, 결과물이 나오는 시간도 딜레이되고 퀄리티에도 계속 타협을 보는 경우들이 생긴다. 레이블이나 기획사에서 이미지를 메이킹해주고 철저한 관리를 동반하는 메인스트림 아티스트에 비해, 자체적으로 이미지 메이킹과 마케팅 및 코디까지 스스로 해야 하는 인디 록 뮤지션은 그 외모나 이미지에 있어서도 요즘 같은 사회에서는 상대적으로 어필이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일하다가 퇴근해서 온 아저씨들이나 갓 하교를 마친 어리숙한 학생들이 그 모습 그대로 악기만 겨우 챙겨서 무대에 올라가는 경우도 허다하기에 이제는 비주얼적으로 직장인밴드나 동아리와 인디 록밴드를 구분하기도 힘들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할 말이 없어진 록 뮤지션들이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가며 "그래도 우리가 하는 게 진짜 음악이고 열정이다!"라는 류의 발언을 슬로건으로 삼아 기를 쓰고 있지만 이미 록은 낙오된 음악이고 후진 장르라는 선입견이 박힌 상태에서는 그냥 패자의 구슬픈 단말마의 비명으로 느껴질 뿐이다. 궁극적인 문제는 현재 대중에게 있어서 록이라는 장르가 만만해졌다는 데에 있다. 내 친구도, 우리 삼촌도, 조카도 몇 달 동안 악기 연습 좀 하고 동호회 멤버들이랑 합주 몇 번 하면 바로 무대에 오를 수 있다는 류의 인식이 팽배해짐으로 인해, 정말로 이제는 록을 하는 것이 너무나도 쉬워졌다. 심지어 이따금 SNS에서 '한 달만 연습하면 당신도 록밴드 무대에 서게 해 드립니다.'라는 걸 홍보 포인트로 삼은 게시물들도 보이는 지경인데,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누가 록 뮤지션을 동경하고 존중할까 싶은 의구심이 든다.
솔직히 말해 이에 대한 뚜렷한 해결책은 없다. 당연히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에 있었다면 진작에 모두들 그렇게 했을 것이고 한국에서 록이라는 장르가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단, 소소한 변화의 움직임은 존재한다. 단순히 열정과 기행으로만 부딪히는 것이 록의 정신이라는 '시드 비셔스식의' 돌진형 록스피릿은 이 바닥에서 이젠 많이 희석되었고, 대다수의 밴드들이 연주와 작곡 및 편곡에 있어서 실력을 쌓고 보다 차별화되고 창의적인 음악을 만들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이 예전보다 많이 보인다. 그리고 대중매체에 출연하는 것과 별개로 개성적인 음악과 힙한 이미지를 자체적으로 형성하며 음지에서라도 록스타의 영역을 어느 정도 개척하는 밴드들도 예전보다 많아졌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기나긴 암흑기와 혼란기를 거쳐 적어도 바닥을 치고 다시 올라가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하는 희망을 가져볼 만하다고 느낀다.
당연히 내가 사랑했고 지금도 좋아하는 장르이고, 내 인생의 일부를 바치고 있는 필드이기에 나는 한국의 록이 잘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 글에서도 마찬가지고 실생활에서 역시 관심 없는 이들에게 '제발 우리 장르에 관심 좀 가져주시라. 우리는 사랑이 고프다.'라는 식으로 호소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시작부터 록이 만만해서 장르에 유입되고 음악 활동을 펼쳤던 것도 아니며, 앞으로도 록은 동정에 호소하는 불쌍한 음악이 아니라 다른 이들이 관심을 갖게 만들 수밖에 없는 멋진 장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내 인생의 남은 시간 동안 내가 대단한 록스타로 등극할 확률은 희박할 것이다. 그러나 높은 곳까지 오르긴 힘들어도 멋진 록커의 길을 지향하며 나아가기 위해 시작한 음악이고 마지막 날까지도 그 생각에 있어 지질한 타협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흐지부지 끝내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홍대에서 록을 시작하는 일은 조금 만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15년 넘게 지속하는 일, 그건 결코 만만하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