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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몬 Mar 09. 2020

에세이와 시14

냥이 '루비'와 존엄사

자태가 꽃보다 아름다운 냥이 루비. 창밖 세상을 동경하는 것일까?

루비가 가족이 된 지도 어느덧 4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크리스마스 이브 때 들여왔다. 새끼묘 때부터 온갖 정성과 사랑으로 키웠던지라 애착이 강하다.


성묘가 되자 그 자태가 아름답기까지하다. 루비는 특별한 고양이는 아니다. 철학을 일깨워 주는 장 그리니에의 뮬러도 아니고, 양자역학을 이해시키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도 아니다. 대신 나에게 생명체의 소중함을 새삼 일깨워 준 고양이다. 아니 헌법 개정 시에 인권 괄호 열고 동물권 괄호 닫고를 병기하자는 데 기꺼이 동의권을 행사하도록 나의 사고를 전환시킨 철학묘였다.

루비와의 첫 만남


지방의 집에 도착해 잠시 쉬고 있었을 때였다. 당시 중학교에 곧 입학할 큰아이와 세살 터울의 작은아이를 데리고 인근의 오피스로 걸어 갔다. 학용품을 사주기 위해서였다.

오피스 입구에 도착하자, 작은아이가 자꾸만 두 블럭 옆의 애완동물센터로 팔을 이끈다. 봐 둔 동물이 있는데 너무도 귀엽다는 것. 못 이기는 척하고 따라 나섰다.

중성화 수술 후의 냥이 루비 모습.

애완동물센터의 문을 들어서자, 유리관 속엔 귀여운 동물들이 마치 주인을 애닳게 기다리는 듯 새끼묘들이 온갖 귀염성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중 한 칸에 비쩍 마른 새끼묘가 몸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루비와의 첫 만남!.품종은 러시안블루. 보기에도 안쓰러워 보였다.


두 애들이 갑자기 이 새끼묘를 낙점한 듯이 갖고 싶다고 떼를 쓴다. 애들이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냥이를 사달라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 달라는 것이다. 아이들의 온갖 애교와 앙탈에 결국에 난 무너졌다.


그 뒤 집안을 휘젓고 다니는 루비의 재롱에 즐거움과 재미로 가득 찼다. 이름을 짓는 과정에서 '나비'는 너무 흔해, 귀하다는 뜻으로 '루비'라 이름을 지어 주었다.

영원한 집사


루비는 점차 자라면서 작은 맹수로서, 러시안블루의 품종답게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면서 애들과 날 집사로 거느렸다. 난 주말마다 집에 와서는 온갖 환심을 다 사려했으나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

이땐 나의 마음은 애간장이 탈 지경이었다. 그 귀여운 머리에 기자의 피라미드처럼 봉긋 솟은 두 귀는 정말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스킨십을 충동질하였다. 손을 뻗으면 앞발 날리기로 잽을 뻗었다.


반려묘를 키우는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새끼묘의 모습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을 안겨 준다. 그런 가운데 루비는 중성화 수술을 거쳐 어느덧 아름답고도 성숙한, 아니 완전무결한 러시안블루로 재탄생하였다.

집에 도착하면 루비와의 정서적 거리를 좁히려는 나의 노력은 4년간 지속되었다. 그러나 그 모든 노력은 허사였고, 집사로서의 대우는 한결 같았다.

루비의 사고


그러던 중  어느 날 루비가 집을 나갔다는 소식을 받았다. 인근 아파트동에서 목격되었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토요일이면 아이들과 인근의 동을 샅샅이 뒤졌지만, 보이지 않아 걱정이 앞섰다.

마침내 어느 일요일 아침. 차량을 운행 중이었다. 루비를 찾았다는 전화가 지인으로부터 왔다. 핸들을 급히 꺾어서 차량의 가속페달을 밟았다. 인근 아파트 동의 염화칼슘 저장고에 웅크린 루비의 모습을 발견하고, 급히 달려가 이동식 가방에 넣어 애완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와 함께 처참한 몰골의 루비. 낙상으로 추정되는 하반신 마비였다. 수의사에 따르면, 척수신경손상으로 인한 영구장애라는 최종 선고였다. 아~ 애들과 동시에 한숨과 탄식의 소리가 터졌다.

곱게 씻겨서 털을 손질했지만, 하반신을 끌고다니는 모습에 마음이 애잔하다. 동물도 저러할 진대, 사람의 경우엔 얼마나 아플까 경험해 보지 않고선 상상이 안 갈 것만 같았다.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 아닐까 싶다.

루비는 거동이 어려워 하루하루가 힘들어 보였다. 그 고통에 겨워 하는 모습을 보자, 마음은 참담하다 못해 고개를 돌려버리곤 했다. 그러나 날 집사로 대하는 건 여전해 애처로움마저 유발시키는 루비.

루비의 존엄사


건강 상태가 점차 나빠지고 고통스러움에 힘들어 하며, 대소변마저 가리지 못하는 루비를 본 뒤 가족회의가 열렸다. 결론은 '존엄사'였다. 나 또한 존엄사에 동의하는 사람이자, 사랑의 장기기증자 회원인 탓에 결론을 뒤집을 수는 없는 상황.

그날이 다가와서 그런지 루비를 집에서 볼 때마다 사료와 물을 넉넉히 챙겨주고, 빗질이며, 목욕이며, 스킨십을 평소보다 두 배로 해주었다.

루비도 자신이 죽을지 아는지, 촉수엄금의 자세를 해제하고, 되려 나의 몸에 스킨십을 한다. 아, 이것이 마지막 허락이었던 셈이다.

큰아이의 품에 안긴 애완묘 루비의 마지막 모습

부디 새로 태어나 자유로운 영혼으로 거듭나길...

 ...mundus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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