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열인 May 29. 2024

천적의 효과

좋거나, 싫거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공부도 잘했고 더욱이 예뻐서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았던 소위 요즈음의 엄친아라고 불릴 만했던 유년시절의 친구로부터 긴 문장의 카톡이 왔다. 소식을 언제 주고받았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그 친구가 나를 ‘만나고 싶지 않다’는 마른하늘에 날 벼락같은 당황스러운 내용이다.  

    

며칠 전 그 친구와 교류가 있는 몇 명의 친구를 만나 기회가 되면 다른 친구들과도 함께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인사말을 나누며 헤어졌었다. 누군가 우리가 만났다는 말을 그 친구에게 전했나 보다. 하지만 유치하게 응수하는 자신에 대한 실망과 그 친구에 대한 실망이 동시에 스쳐간다. 이런 젠장 할 그 친구의 기억 속에 있는 내가 나 자신이라 말인가?

     

거의 30년 동안 시공간을 가까이하지 않았던 그 친구는 그 옛날 자신이 ‘나에 대한 허물을 말하고 다닌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도 내가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만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여전히 누가 나의 부족함에 대하여 이야기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것이 나의 오해라면 사과하고 미안한 마음을 전하면서 풀 수 있지만, 만나고 싶지 않다는 그 친구의 선언은 ‘감정’이라는 사실이다. 감정은 관계에 있어서 해소되어야만 하는 우리들의 명제이다.

     

나의 기억 속에 자신이 그렇게 머물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자신이 정확하게 알려지기를 바라는 그 친구의 노력이었을 것이다. 누구나 자기 자신을 좋게 느끼고 싶어 한다. 어떠한 방식이었든 간에 그 친구는 자신의 느낌을 기분을 알아달라는 소통의 시도였을지도 모른다.


 친구사이의 갈등 이전에 태어나서 제일 먼저 겪게 되는 것은 부모와 자식 사이의 갈등이다. 프로이트가 말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그 반대의 경우도 서로에 대한 기대와 실망은 미움으로 점철된다. 특히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형성이 쉽지 않음을 목격한다.

     

일찍 어머니를, 아버지를 여의고 육이오를 겪으며 자수성가한 우리 부모님들의 억하심정일까! 자식들이 장학금을 받아오지 못한다고 성장기의 여느 아버지처럼 타박하고, 제때 수업료를 챙겨주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란 남편은 당신처럼 살지 않겠다고 신부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입학했다고 한다.


몇 년 전 송강호와 유아인 주연의 영화로 조명된 영조와 사도세자의 경우가 부모 자식 간의 갈등으로 알려진 비극적 사례이다.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서로의 노력은 필요 불가결한 것이다. 그러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서먹서먹한 부자들의 관계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경험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지혜를 전달하려는 인간들의 양육방식이 갈등으로 두드러지기 시작하는 것은 성장기이다. 청소년기에는 감각적 만족에 휩쓸리고, 또래집단의 일원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강박적 욕구로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때로는 실수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스스로 몸으로 익히는 경험을 통하여 삶을 배워나가는 시기는 우리 모두의 과정이다.   

   

시골 국민학교 6학년, 소사 아저씨의 학교 자전거를 몰래 운동장으로 끌고 나와 그 친구와 함께 서로 흔들리지 않도록 서로 잡아주고 넘어지며 익혔던 그 기술은 아직도 내 근육의 기억 속에 깊이 뿌리 박혀있듯이 말이다.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방치되거나, 자식을 통하여 당신의 충족되지 않는 삶을 보상받으려는 부모들의 모습에 자식들은 부모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성장과정에서 상처 입은 사람들은 어른이 된 후에도 비슷한 상황에 계속 노출되기도 하고, 더러는 누구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사람이 미워하는 그 사람처럼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누구나 주위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이해받고, 공감받고, 존중받으며 공정하게 대우받기를 원한다. 내가 소중한 존재로서 세상과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이러한 정서적인 욕구가 해소되지 않을 때 인간관계는 갈등으로 점화된다. 서로를 탓하며 방어하고 비난하기도 한다.

     

성장과정에서 가족으로부터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거나 소외당하는 경험도 자식으로서 비로소 자기중심적 존재로서의 인간이라는 부모님을 받아들이고 이해를 넓혔을 때 갈등은 연민으로 변한다. 부모와의 갈등이든 친구사이의 갈등이든, 갈등 속에 숨겨진 진화를 위한 장치는 작용한다. 내가 소중하듯 남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갈등이라면 의식의 진화, 성장과 확장은 시작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자립적인 지성체계, 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