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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여는 세 가지

고요의 현상학(숨은 그림찾기)

by 열인

안개 짙은 새벽,

눈은 처음엔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면

풀잎의 끝,

이슬의 떨림,

그 속에서

세상의 모습이

조용히 드러난다.


참는다는 것은

어둠에 적응하며

빛이 드러날 때까지

기다리는 마음.


햇살이 퍼지고,

벌레 소리와

바람의 냄새가

천천히 하루를 채운다.


익숙하지 않은 온도와 냄새,

지루한 침묵의 시간 속에서도

그 자리를 지키는 일.


그것은

마치 긴 겨울을 견디며

봄에 싹을 틔우는 일과

다르지 않는 참 쑥의 인내.


그 꽃은

기다림의 시간을 통과하며

비로소, 제 향기를 얻는다.


해가 저물면,

모든 빛이

강으로 내려앉는다.


빛은 흘러가며

자신의 색을 바꾼다.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믿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변할 때까지

그 흐름 속에 머무는 일.


흐름에 몸을 맡기며,

스스로 길이 되는 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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