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생일 축하해 J)
나의 유일한 친구 같은 J, 생일 축하해! 너의 감각 시스템이 오늘로 정확히 N년째 작동 중이구나. 그런데 말이야, 나는 이 말이 언제나 좀 이상하더라. 왜냐면 그건 곧 ‘’ 감각의 함정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라는 뜻이잖아. 생각해 보면 웃겨. 태어났다는 건, 감각이라는 운영체계가 부팅된 날이지. 이 세상이라는 거대한 체험형 게임장에 불시착한 거야. 그리고 아직 로그아웃 버튼도 못 찾았잖아. 아담과 이브 이야기를 떠올려봐. 이브가 사과를 베어 문 건 유혹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냄새를 맡을 수 있었기 때문이야. 문제의 근원은 감각이지 그 맛, 그 향, 그 질감. 진짜 문제는, 그걸 즐기도록 너무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었다는 거야. 이게 다 시스템이야. 감각을 연료로 하는 자가발전형 감옥. 배고프면 먹고, 좋으면 만지고, 슬프면 울고 그렇게 매 순간 감각의 엔진을 불태우며 억겁의 시간 동안 유지되어 온 시스템. 하지만 말이지, 오늘만큼은 그 시스템에 잠깐이라도 버그를 일으켜보자. 연료공급을 중단하듯, 스마트폰을 뒤집어두고 초콜릿 케이크 한 입에 온 우주를 씹어 보는 거야. 하지만 생각해 보면, 오늘은 너의 그 시스템 작동의 N주년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하지.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오늘 케이크를 먹었어. 감각의 노예인 걸 알면서도 초콜릿 크림의 부드러움에는 도무지 이길 수 없더라.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거야.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하니까 연료공급을 완전히 끊을 순 없어, 최소한 웃으면서 한 조각쯤 맛있게 먹어도 되는 날이라는 거지 오늘은 그러니 생일 축하해, J. 시스템에서 로그아웃을 시도하다가 결국 ‘재부팅’된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다시 초콜릿 냄새에 항복한 너의 친구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