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정말 종잡을 수 없다. 보통은 미래를 이렇게 표현하겠지만 나는 가끔 생각한다. 누군가는 미련을 못 놓고, 누구는 좋은 추억으로. 지금을 만든 경험으로. 아니면 지나간 일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이 그리는 이상적이고 행복한 미래. 혹은 계획된 목표들에는 하나같이 더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이 녹아있다. 그런데 과거에 대한 마음은 모든 이가 다르게 마주한다. 삶이라는 것은 참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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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나는 치열했나?’
멍하니 지나가는 자동차를 바라보다 생각했다. 나름 치열하게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기준이 참 모호했다. 평소의 내가 기준이라면 이건 상대적인가 절대적인가. 애초에 내가 기준이라는 것이 또 말이 되는 걸까? 하기야 나는 경쟁하는 삶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세상이 세운 잣대를 기준으로 만드는 것도 결국은 나의 결정이다. 나를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은 스스로 잣대를 세우기 위함이다. 이 안에서 내가 뭐라도 해보겠다고 치는 발버둥은 결국 내가 제일 잘 안다. 결과가 나오기 전에도 나는 나를 칭찬하거나 비난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의 눈치를 덜 보게 되었고 도전을 사랑하게 되었다, 아주 미약한 도전, 가령 하루 종일 노트북을 두드리던 날에 만 보도 아니고 오천 보를 걷는 것도 도전이 된다. 그리고 나는 그 미약한 도전들을 성공시킨다. 오천 보가 아니라 삼천 보면 또 어떠할까? 아침 3분 전력 질주나 5분 명상과 같은 루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작고 작은 도전들이 나에게 도움이 된다면 나는 관대하게 스스로를 칭찬할 수 있다.
나의 오늘이 어제가 될 때마다 나를 위한 거름은 쌓여가고 오늘은 비옥해진다. 이런 매일이 반복되는데 어찌 내가 오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지는 잎은 그저 쓰레기처럼 도로를 굴러다니며 차에 치일 수도 있지만, 차곡차곡 모아서 내일의 거름으로 쓰일 수도 있다. 지금 정말로 행복하지 않아도 나는 수많은 작은 행복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하다. 수치화가 가능한 도전도 좋지만, 그전에 우리는 스스로를 더 이해하고 의미를 발견하고 동력을 창조하는 매일을 살면 더 좋지 않을까?
나는 그저 저기 굴러가는 낙엽도 영감이 되고 새로운 도전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모두가 치열하고 바쁜 서울 한복판. 지나가는 수천의 사람들 속 과연 몇이나 저 낙엽에 관심을 가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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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성공을 위한 거름으로 실패를 이야기하곤 한다. 나는 성공도 실패도 시간의 흐름 안에서 모두 거쳐 가는 정거장이라 말하고 싶다. 큰 성공도 큰 실패도 아직은 경험하지 못했지만, 내가 겪은 작은 성공과 실패들에 나는 남들보다 더 많은 의미를 담으려고 노력한다.
평범함을 잃어버린 현대에서 우리가 괴짜가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날마다 쳇바퀴 굴리는 삶보다 몽상가의 삶이 낭만적이기에 돈키호테는 명작으로 남은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영웅들의 이야기를 사랑하는 것은 그들이 성공해서가 아니라 이겨내서는 아닐까? 앞서 말한 삶처럼 나의 이야기를 사랑하게 만드는 방법은 오늘의 의미를 쌓고 내일의 동력을 확보하며 모레의 성공에 다가서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나의 어제는 오늘의 동력이 되었고 나의 그제는 오늘 나에게 작은 성공을 선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