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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러리 Apr 16. 2020

줌 아웃

줌 ZM

아침부터 한바탕 난리를 쳤다. 초딩 3학년들의 온라인 개학이 오늘이라고 잠시 착각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원래 4월 16일에서 20일로 연기됐었다. 덕분에 다음주 월요일 아침에 겪었을 혼란을 미리 겪은 셈이 됐다. 또 아이도 학부모도 온라인 개학 같은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도 새삼 느끼게 됐다. “이럴거면 차라리 진짜 개학을 하면 좋겠어. 친구들도 직접 만나고.” 코로나 방학으로 “노는게 제일 좋아” 뽀로로가 됐던 아이가 투덜거렸다. 

온라인이 결코 대체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화상 미팅으로는 나눌 수 없는 인간적 교감이 있다. 온라인 만남은 효율적일 순 있어도 효과적이진 않다. 코로나 상황은 우리가 온라인 미팅에 친숙해지게 만들었다. 포스트 코로나에서도 온라인 화상 미팅은 이제까지보단 훨씬 더 보편적인 소통 수단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그래도 이용빈도나 만족도는 코로나 상황에서 우리가 전적으로 의존했던 것만큼은 아닐 것이다. 오프라인 미팅을 어느 정도 대체하겠지만 제한적일 것이다. 

4월 15일 수요일 미국장에서 보유하고 있던 줌 주식 2주를 모두 매도했다. 주당 150.15달러였다. 15일 뉴욕증시는 폭등세였던 14일 상황과는 전혀 달랐다. 전부 떨어졌다. 원인은 JP모건과 웰스파고나 시티뱅크 같은 금융주들의 1분기 실적이 나빴기 때문이다. 시장은 그 의미를 재빠르게 포착해냈다. 역시 돈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다. 월가 은행들은 1분기 실적이 나쁜건 대손충당금을 잔뜩 쌓았기 때문이다. 2분기 이후 몰아닥칠 것이 확실한 경기 침체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가계에선 카드연체가 증가할 것이다. 기업들은 매출과 이익이 줄면서 부실화될 것이다. JP모건은 대손충당금으로 무려 68억 달러를 축적했다.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CEO는 이걸로도 충분하지 않을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제이미 다이먼은 2008년 금융위기로 견뎌낸 월가의 왕자다. 월가 은행들의 1분기 실적은 사실 1분기라는 과거가 아니라 2분기라는 미래를 어둡게 전망한 결과다. 그래서 15일 뉴욕증시는 14일과 달리 급락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하루 전의 폭등세가 비이성적 과열이었던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그 와중에 상승하는 종목이 일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줌이었다. 솔직히 줌을 매수한 타이밍은 썩 좋지 않았다. 지난 4월 1일이었다. 주당 145달러로 2주를 샀다. 존슨앤존슨을 사다가 내친김에 줌까지 사버렸다. 충동구매였단 얘기다. 줌이라는 기업을 처음 알게 된건 3월 중순 무렵이었다. 아이의 영어학원에서 코로나 탓에 줌으로 화상 수업을 하겠다고 하면서부터였다. 해외의 취재원들도 줌으로 화상미팅을 하자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솔직히 줌의 주가가 너무 높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주당 160달러대를 넘나들고 있었다. 이 정도면 마이크로소프트의 주가보다도 높았다. 마이크로소프트에도 팀이라는 화상 미팅 서비스가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일개 서비스만 운영하는 스타트업이 마이크로소프트보다 주가가 높다는건 분명한 오버슈티잉었다. 그래도 코로나 시대에 줌이 각광 받을만한 기업이라는건 인정했다. 줌의 하루 평균 이용자수는 2019년 12월엔 1000만명에서 2020년 4월엔 2억명으로 폭증했다. CMA계좌엔 다른 주식들을 사고 남은 달러외환이 약간 남아 있었다. 딱 줌을 사면 안성맞ZOOM일 액수였다. 그때 마침 교육부가 온라인 개학의 화상 서비스 방식 중 하나로 줌을 추천했다. 서버 수요를 고려해서 직전에 마이크로소프트와 엔비디아를 샀던 터라 투자 논리에도 맞았다. 그래서 사고야 말았다. 이래서, 초보다. 

이때부터 줌은 보안 논란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지난 4월 5일이었다. 캐나다 보안업체 시티즌랩이 줌의 차이나 게이트를 터뜨렸다. 생각 이상으로 심각한 이슈였다. 줌의 화상미팅 내용이 어찌된 영문인지 중국 서버를 거쳐서 전송되고 있었다. 중국 이외 지역에서 나눈 화상대화였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줌이 암호화시켰다고 주장하는 대화 내용조차 중국 서버를 거치면서 얼마든지 유출이 가능해졌다. 중국은 법률상 정부가 요구하면 암호화된 사용자간 대화 내용도 제공할 의무가 있다. 당장 구글이 줌 사용을 금지해버렸다. 구글은 검열과 보안 갈등으로 중국에서 철수했다. 스페이스X도 마찬가지였다. 스페이스X는 위성발사체를 만드는 방위 사업체다. 줌의 창업자가 위안정이라는 중국인이라는건 스터디를 해서 알고 있었다. 본사만 미국에 있지 중국에 대다수 개발자들이 포진해 있는 사실상 중국 업체라는건 뒤늦게 알았다. 무엇보다 줌은 유일한 화상미팅 프로그램도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팀이나 구글의 행아웃 같은 훨씬 안전한 화상 미팅 서비스들이 많다. 줌한텐 해자도 없단 말이다. 

당분간 줌의 주가가 반등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가는 110달러까지 떨어져버렸다. 충동투자의 대가였다. 4월 15일 수요일이었다. 유가까지 주당 10달러선까지 내려앉으면서 시장이 모조리 가라앉는 와중에 줌만 상승하고 있었다. 뚜렷한 이유는 찾기 어려웠다. 몇몇 애널리스트들의 긍정적인 주가 전망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루 전 폭등세의 숙취였을지도 모른다. 3월 폭락장에서도 그랬다. 세상이 무너질 때 솟아날 구멍을 찾는 투자자들이 쏠리는 종목이 있다. 아마존과 넷플릭스가 그랬다. 줌도 그 중 하나였다. 줌의 주가는 매수가였던 145달러를 넘어서서 152.57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때다 싶었다. 파란불에 사고 빨간불에 팔라고 했다. 줌이 빨간불일 때 팔겠다고 결심했다. 상승세일 때 팔기 어려운건 더 오를 것이라는 미련 때문이다. 하락세일 때 버티기 어려운 것도 더 내릴 것이라는 공포 때문이고 말이다. 그렇게 어리석은 투자자이고 싶진 않았다. 마지막으로 줌의 재무재표와 PER를 확인했다. PER은 1684. 이제까지 투자했던 기업 가운데 가장 높은 PER이었다. 줌의 주가가 다시 140달러대까지 눌렸다가 다시 올라갈 즈음 미련 없이 매도해버렸다. 매수가에 비해 주당 5달러 남짓 수익을 남긴 셈이었다. 그래봤자 해외주식 거래에 매겨지는 세금을 계산하면 본전이나 다름 없다. 그래도 원금은 되찾은 셈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야후 파이낸스를 열어봤더니, 줌과 관련한 투자자 경보가 발령돼 있었다. 일부 금융사와 로펌들이 보안 이슈와 관련해서 줌에 소송을 걸었다는 뉴스가 흩어져 있었다. 줌은 유료 사용자의 경우엔 자신이 원하는 서버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중국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바꿔 말하면 무료 이용자의 경우엔 중국 서버를 거치게 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단 뜻이다. 며칠 전 줌을 이용하다가 유료와 무료 계정의 연결 상태가 판이하게 달라서 애를 먹었던게 이것 때문인가 싶었다. 과연 이런 줌의 노력들이 소송전까지 번져버린 보안 리스크를 덮을 수 있을까. 4월 16일 목요일장 뉴욕증시에서 코로나 시대의 깜짝 스타로 불렸던 줌의 주가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아침에 아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이럴거면, 빨리 개학했으면 좋겠어.” ‘이럴거면’이라는 단어에 줌인됐다. 그래서, 이걸거면, 줌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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