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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러리 Apr 21. 2020

김정은과 면역력

 KT&G 033780 

김정은 중태설이 CNN을 통해 전파됐을 때, 스탯의 렘데시비르 관련 기사를 다시 한번 정독하고 있었다. 지난밤 4월 19일 월요일 미국장은 약세장이었다. 다우존스와 S&P500이 모두 떨어졌다. 그동안 상대적인 강세였던 나스닥조차 하락했다. 지난 4월 17일 금요일장에선 렘데시비르야말로 기적의 치료제라면서 뉴욕 증시가 일제히 상승했던 터였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주말이 지나자마자 렘데시비르 상승분을 홀라당 반납해버렸다. 금요일엔 상종가였던 길리어드 사이언스의 주가도 월요일엔 하락 마감했다. 불과 6시간 전에 폐장한 4월 19일 월요일 한국장에선 렘데시비르 관련주들이 상종가였는데 말이다. 렘데시비르 효과를 망각한 듯한 미국장의 모습을 보면서 코로나19 치료제를 주제로 어딘가에 칼럼을 기고했다. 그러느라 스탯의 기사를 한번 찬찬히 살펴봤었다. 스탯은 렘데시비르 관련한 특종을 맨 처음 터뜨린 미국 의료전문웹사이트다. 그래서 4월 21일 화요일 한국장이 문을 열자마자 파미셀의 주가부터 살펴봤다. 

미국 시장은 분명 렘데시비르를 의심하고 있다. 한국 시장은 어떨까? 파미셀은 렘데시비르의 원료를 생산하는 기업이다. 4월 17일과 4월 20일 이틀에 걸쳐서 7400원이나 올랐다. 1만6000원대였던 주가는 2만3000원대가 됐다. 52주 신고가였다. 정작 4월 21일 화요일장에선 파미셀의 주가는 2만원대 언저리까지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오르느라 바빴던 하루 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었다. 코스피 하락의 주된 원인은 물론 마이너스 유가였다. 5월 인도분 WTI가 장중 한 때 배럴당 마이너스 40.32달러까지 내려갔다. 그러니까 5월엔 별 필요는 없어도 기름을 사주실테니 대신 보관료를 내라는 뜻이었다. 파미셀이나 길리어드의 주가 횡보는 유가 탓이 아니었다. 오히려 유가 폭락에도 나홀로 상승했어야 맞았다. 시장이 렘데시비르를 의심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스탯의 렘데시비르 관련 기사를 꼼꼼히 살펴보고 있었다. 정말 기사에서 환자를 인용한 것처럼 “렘데시비르는 기적”일까. 

그때였다. 포트폴리오의 주가가 한층 더 새파랗게 질려버리기 시작했다. 코스피 지수는 유가 때문에 1900선이 깨지더니 이젠 1800선도 내줄 판이었다. 알고 보니 CNN의 김정은 중태설 뉴스가 시장에 반영됐기 때문이었다. 사실 김정은 뇌사설은 지난 4월 17일 금요일에도 찌라시를 통해 한 차례 퍼진 적이 있었다. 일부 국내 언론이 보도했지만 대부분 결론은 사실 무근이었다. 그런데 CNN을 통해 보도되자 파급력이 달랐다. 한국증시를 뒤흔들어놓았다. 종목별 주가가 떨어지는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개인투자자들이 파는 건 아닐거라고 짐작했다. 한국인들은 북한 뉴스에 이젠 둔감하다. 2011년 12월 17일에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을 때도 증시는 4% 남짓 떨어졌다가 하루 이틀만에 회복됐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중태설 정도로는 눈 하나 깜짝할 턱이 없었다. 한국 증시는 북한 이슈엔 면역력이 상당하다. 무엇보다 일상이 평온했다. 증시 역시 남북한이 선전포고 정도는 해야 눈 하나 정도 깜짝할 터였다. 그렇다면 증시 하락의 원인은 외국인 매도세였다. 가뜩이나 마이너스 유가로 뉴욕증시 하락이 예견되는데 북한 관련 불확실성까지 겹쳤다. 팔고 나가는게 정상이었다. 외국인들은 면역력이 약하다. 

그때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미국 주식을 팔아서 번 달러가 있었다. 언제 원화로 환전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원달러 환율은 1230원대를 넘어서고 있었다. 4월 17일 금요일에 외국인 매수세가 좀 돌아왔다 싶었을 때는 1210원대였다. 3월 중순처럼 1290원대를 찍는 일은 당분간은 없을 것이다. 뉴욕증시와 한국증시 모두 바닥은 쳤다. 한미통화스와프까지 해버렸다. 그렇다면 북한 관련 악재가 터지면서 반짝 환율이 올랐을 때가 환전 타이밍이 아닐까. 무슨 거액을 환전한다고 이러나 싶긴 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비록 푼돈이지만 미국시장에서 벌어온 달러니까. 

원화로 환전을 하고 나자마자 주가가 떨어진 종목들부터 살펴봤다. 그 중에서 살만한게 뭐가 있을까. 신세계부터 봤다. 신세계인터내셔널이 아니고 말이다. 아쉽지만 신세계는 이미 쓱 반전 상승하고 있었다. 빨간불에는 안 산다. 원칙이다. 초보투자자로서 바보처럼 추격 매수를 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다. 역시나 아난티는 파란불이었다. 총선 직후부터 대북 경헙 테마주라고 가격이 올랐던 기업이었다. 이런 테마주는 일단 거부다. 가볍게 지나쳐줬다. LG전자가 눈에 띄었다. 확신이 안 들었다. 아직 공부가 더 필요했다. 3월만 해도 종목 고르는게 참 쉬웠다. 위기가 만들어준 기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점점 종목 선정이 어려워지고 있었다. 스터디할게 많아지고 있다는 소리다. 

지난주부터 눈여겨보고 있었던 KT&G에 손이 갔다. 78900원에서도 살까 망설였다. 79000원을 넘어버리기 전에 잡아야 하나 싶었다. 그랬던 KT&G가 77000원대로 내려와 있었다. KT&G를 매수하고 싶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포스트 코로나에서 매출이 확대되지 않을까 기대가 됐기 때문이다. 담배가 아니라 홍삼 때문이었다. KT&G는 홍삼에 관해선 반독점 기업이다. 국내 홍삼 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워렌 버핏도 좋아할만한 기업이다. 게다가 김재수 대표는 2018년 취임 이후 내수 위주였던 사업 구조를 수출 위주로 재편하고 있다. 덕분에 2019년에만 해외 매출이 17% 넘게 늘어났다. 일본과 대만 법인은 흑자 전환을 했다. 미국과 중국 시장 개척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일단은 면세점 매출에 줄었겠지만 포스트 코로나에선 상황이 달라질 공산이 크다. 

현재로선 코로나19는 계절병이 될 공산이 높다. 겨울마다 유행하는 바이러스가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다들 렘데시비르 같은 치료제의 애타게 찾고 있다. 백신이나 치료제와는 별개로 포스트 코로나에선 평소에도 모두가 면역력을 높이려고 애쓸 수밖에 없다. KT&G가 매출 1조 클럽을 달성한건 홍삼의 국내외 매출 덕이 크다. 게다가 KT&G의 홍삼은 한류의 영향으로 중국에서도 인지도가 높다. 드라마를 보다보면 KT&G의 정관정 짜 먹는 홍삼이 정말 툭 하면 등장하곤 한다. <태양의 후예>에선 대한민국 육군 대위 송중기가 아예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니까 코로나만 아니라면 주가가 10만원대 안팎은 나와줘야 하는게 아닐까? 포스트 코로나에선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은 중국과 미국 수출이 늘어나지 않을까? 중국의 헬스케어 관련주들은 진작부터 잔뜩 올라있는 상태다. 전세계가 한국을 코로나 대응 모범국가로 칭송하고 있다. 알고보니 한국이 홍삼의 나라여서 코로나에 강했던 것이라면? 그러니까, 그렇게 해외 소비자들한테 비춰진다면? 그러면, 대박. 

소설 같은 이야기지만, 그래도 KT&G는 매수했다. 77000원에 3주. 포트폴리오의 크기로 보면 딱 적당한 규모다. 언제나 300주씩 사보나 싶긴 하다. 그런 큰 손 투자는 홍삼 먹고 포트폴리오의 면역력을 키워서 그때 해보는걸로. KT&G는 77000원에 매수한 뒤부터 오후장 들어서는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마이너스 유가 쇼크도 지나갔고 김정은 중병설도 지나갔기 때문이다. 쇼크의 오전장에서 환전도 하고 홍삼도 샀다. 홍삼차를 한 잔 타먹으면서 피터 린치의 충고를 곱씹었다. “가격이 올라간다는 이유로 당신이 반드시 옳았다고는 할 수 없다.” 맞고 틀리고는, 지엄하신 시장이 평가해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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