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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레카 권 Mar 15. 2022

같은 여행지를 가더라도 나만의 여행이 되는 이유

- <퇴근길엔 카프카를>을 읽고

“책을 읽는다는 것은,
바로 옆에 있는 사람도 눈치챌 수 없는 여행”

활자가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도,
구름 그림자가 지나는 카페테라스에서도,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여행이 시작된다.
셰익스피어부터 카프카를 지나 하루키까지,
웹툰 작가 의외의사실이 만난 열세 편의 “인생 고전”에세이.

- 민음사 <일상이 여행이 되는 패스포트툰 퇴근길엔 카프카를> 소개글



민음사 고전과 웹툰의 만남. 제목에 등장하는 카프카...
오묘한 조합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 웹툰작가 의외의사실이 추천하는 민음사 고전 13편과 함께 한 퇴근길 여행은 업무 스트레스 충만했던 시기에 산소호흡기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삶의 큰 변화를 앞두고 힘들어하던 친구의 손에 넘겨져 친구의 숨통을 틔우고 돌아온 이 책의 리뷰를 이제야 남긴다.




좋은 책은 애정하는 친구와 꼭 같이 읽고 싶다.



저자는 문장 사이사이를  얼마나 많이 여행했을까. 얼마나 음미했기에 13권을 고전을 몇 장의 그림과 몇 문장으로 걸러내어 현실의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사유하게 하는 것일까.  덕분에 누구의 방해도 없이 행복한 퇴근길 여행을 누릴 수 있었다.



책 속의 시간은 영화 속 시간과 다르게 정해진 절대적 시간 속을 흐르지 않고 암흑 속에서 흐르지도 않는다.
생활 속에서, 내가 고른 음악 속에서, 날씨와 계절 속에서 느릿하게 보조를 맞추어 흐르는 책 속의 시간.

8~10페이지

영화를 좋아한다. 영상미가 돋보이는 영화를 특히 좋아한다. 몰입할 수 있는 어두운 영화관이 좋다. 하지만 영상 그 이상을 상상할 수 있는 책을 더 사랑한다. 햇살을 등지고, 빗소리를 들으며, 떨어지는 낙엽을 눈에 담으며, 얼음처럼 닿는 겨울바람을 마주하며 언제든지 읽을 수 있는 책을 사랑한다.

제한된 시간 안에 제한된 스크린 크기로 담아내야 하는 영화와 시공간의 무한한 확장성을 가진 책은 시와 산문처럼 각각의 매력이 다르다. 때로는 영화의 대적 시간을 따라 흘러가고, 때로는 책 속의 유연한 시간을 따라 흘러갈 수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축복으로 여겨진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아무도 모른다.
시간이 어떤 속도로 흐르고 시간이 흐르며 무엇을 남기는지 우리는 어떻게 죽어 가고 있는지...
연로한 사람들에게도 삶이란 이런 것일까요?
이토록 놀랍고, 예기치 않은 미지의 것인가요?

61, 63페이지 버지니아 울프 <등대로> “시간의 흐름에 대한 이상한 감각”

매일 새롭게 채워지는 나의 24시간. 3분의 1시간 이상을 직장에서 보내고,  3분의 1 가량을 꿈꾸며 보내고, 나머지 3분의 1 가량의 시간으로 먹고, 읽고, 쓰고, 대화한다.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유사한 패턴이 쌓이면 일상의 루틴이 되고, 예측가능성이 높아져 공포나 위기감이 적어진다. 그러다 한 번씩 마주하게 되는 “이벤트” 앞에 우리는 속수무책이 된다.

살아온 시간의 길이와 상관없이 각자가 마주하게 될 내일은 주사위를 던지듯 알 수 없는 것 같다.  


그러니 그저 주사위를 던지는 이 순간에 충실해야 하겠지...




시간은 어떻게, 어떤 속도로 흘러갈까...



사람들은 모두 오래 봐도 상대방의 한가지 면밖에 못 보는지도 모르고 사람과 사물들은 각자의 속도로 각기 다른 대상을 중심으로 제각기 떠돌고 있는지도 모른다.

144페이지 F.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부패하지 않는 꿈과 그 꿈을 좇는 헛된 마음”.    


우리 모두는 각자의 궤도를 돌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궤도가 유사해서 평행선처럼 함께 하는 동반자를 만나고, 어긋난 궤도 속에 단 한 번의 꿈같은 교차를 하는 누군가를 만나기도 하고, 마주할 뿐 단 한 번도 교차하지 못하는 만남도 있을 것이고, 각자의 궤도는 운행을 끝내고 나서야 정확히 그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

개츠비와 데이지. 닉 캐러웨이와 조던 베이커. 톰 뷰캐넌과 머틀 윌슨 그리고 데이지. 그들의 희비를 바꾸는 교차와 어긋남의 궤도는 대상과 모습, 강도가 다를 뿐 우리의 일상에서도 발견하고 경험할 수 있기에 공감을 자아낸다.




닥쳐오는 재앙을 체념하거나 받아들이지 않고 성실하게, 쉼 없이 싸우고 버텨 나가는 것이 거대한 재앙과 알 수 없는 세상 앞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태도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260~261페이지 알베르 카뮈 <페스트> “재앙이 삶을 덮칠 때”

직장 동료가 죽었다는 소식, 교회 집사님이 위독하다는 소식, 우리 식구들의 격리. 그리고 나의 심장 부동맥 후유증...


이전의 어느 바이러스보다 오랫동안 변이와 생존을 이어가고 있는 괴로운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카뮈의 <페스트>를 다시 찾는 심리는 비슷할 것이다. 거대한 재앙을 마주하게 될 때 사람들의 마음이 궁금하고, 대처방법이 궁금하니까. 감염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기약 없는 이별을 마주하는 마음은 시대와 장소가 달라도 비슷할 테니까 카뮈의 글에서 작은 희망과 위로를 얻고 싶은 나와 같은 마음이겠지.    




거대한 재앙 앞에 대처하는 방법...




하나의 작품을 본격적으로 만나기 위한
사소한 시작이 되어 주기를,
이미 읽은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작은 환기가 되어 주기를

412페이지 <에필로그>에서

퇴근길에 읽는 가벼운(?) 만화로 뽑아 들면 후회 없이 묵직한 사유로 충만해지는 여행으로 이끌어주는 책이다.


에필로그에서 언급한 저자의 바람대로 누군가에게는 고전 작품을 만나기 위한 사소하지만 큰 기쁨을 주는 시작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읽은 책을 다시 떠올리며 생각을 넓힐 수 있는 작은 환기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책이다.
 
같은 곳으로 여행 가더라도 보고 느끼고 깨닫는 것은 각자 다르기에 이 책을 통해 고전을 여행하는 많은 이들의 여행담이 궁금하다.




같은 여행지라도 나만의 여행이 되는 이유...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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