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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네상수 Mar 20. 2020

마이아트뮤지엄 - 알폰스 무하 AlphonseMucha

집에서 보는 갤러리

마이아트뮤지엄의 개관특별전 <알폰스 무하>전은 무하의 판화, 유화, 드로잉 등 오리지널 230여 점을 총 5부로 나누어 소개한다. 2019.10.24 ~ 2020.04.05


관람시간 

휴관일 1월1일, 월요일 개관일 화~일 10:00 ~ 20:00 (입장마감 19:00)



인기 덕인지 코로나19 때문인지 2020.04.05로 연장되었다.

마이아트뮤지엄은 개관특별전으로 체코를 대표하는 화가 '알폰스 무하'의 전시를 개최했다. 이번 전시는 알폰스 무하의 판화, 유화, 드로잉 등 오리지널 원작 230여 점을 작가의 삶, 여정에 따른 작품 변화에 따라 5부로 나누어 소개한다. 파리 시절 '무하 스타일'이라고 불리는 넝쿨 같은 여인의 머리카락, 독특한 서체 등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그림체로 제작된 아르누보 양식의 포스터에서부터 무하가 고국으로 돌아가 슬라브 민족의 애국심을 고취하고 역사적 화풍으로 고국을 위한 작품들을 그리며 생을 마감하기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전시를 보러 가던 중 문득 상업성이 참 좋은 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싫어할 이유가 없을 전시였고 아르누보의 정수, 알폰스 무하의 작품에 대해서는 그저 직선이 없는 그림? 정도로만 알고 있던 나에게도 많은 작품 수와 스타일의 변화가 알아간다는 느낌을 주는 전시였다. 영화 한 편보다 비싼 티켓임에도 불구하고 평일 낮 시간에 도슨트 시간을 맞추어 많은 인파가 몰리는 것을 보면 지금 보아도 세련되고 우아한 무하의 작품이 그만큼 인기가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셀카 찍으러 오기에 좋은 전시는 아니지만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정우철 님의 도슨트를 들을 수 있다.


*아르누보 - '새로운 예술'을 뜻하는 아르누보(Art Nouveau), 기존의 예술을 거부하고 모든 분야에서 새롭게, 통일적인 양식을 추구하고자 한 당시 진보적인 미술가들의 도전이었다.
*슬라브 민족 - 현재 동유럽과 북아시아의 주된 주민으로 러시아,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불가리아의 민족

*고취 - 의견이나 사상 등을 열렬히 주장하여 널리 선전함.

참고 - 네이버지식백과



<지스몽다, 연극포스터>

1부 - 연극포스터, 사라베르나르와 무하

Theater, Sarah Bernhardt and Mucha

프랑스 파리에서 가난한 유학생활을 하던 무하는 우연히 사라 베르나르의 연극 <자스몽다>의 포스터를 맡아 그리게 되면서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이후 베르나르는 전속으로 작품의 포스터를 맡아 그릴 수 있게 도와줬고, 무하는 당대 인기 여배우의 대중적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만들어내 부각시켰다. 당시 포스터들과 완전 다른 느낌의 좁고 세로로 긴 실물 크기의 포스터는 연극의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데 효과적이었다. 무하의 이국적이면서 세련된 디자인은 아르누보 그 자체, 새로운 예술로 반향을 일으켰다.

사진으로만 접하던 작품들을 실물로 볼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매력적인 일이다. 지금 보아도 세련되고 우아하다는 느낌이 가득한데 당시에는 왜 무명의 생활을 지냈던 것일까?라는 궁금증도 들게 했고, 전시 구조 또한 무하의 포스터들을 여유롭고 가득 차게 볼 수 있어서 좋았다. 



1부에서 2부로 넘어가는 사이에는 동시대 미술 역사와 무하의 연도별 작품, 생애를 기록해놓은 벽면이 있다. 

요즈음 전시들은 동시대 미술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느낌이 있다. 시대와 미술은 일맥상통이긴 하지.


<모엣샹동, 광고포스터>

2부 -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린 광고포스터

The Art of Advertising

연극 포스터로 명성을 얻은 무하는 여러 종류의 광고와 상품 디자인 의뢰를 받게 되며 경제적 안정과 대중적 인기를 쌓아갔다. "대중의 감각을 자극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그들을 깨우기 위해서, 예술가는 유혹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고 말한 무하는 식음료, 담배, 세제와 향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품의 홍보용 포스터를 제작했다. 무하의 광고 포스터는 광고의 목적보다 회화적인 표현이 핵심이었다. 양식화된 아름다운 여성의 이미지는 당시 신여성들에게 광고 포스터 속 화려한 무하 스타일을 소비하게 하며, 마치 제품을 사면 지루한 일상을 탈출해 특별하고 이지적인 공간의 일부가 될 것 같은 느낌을 선사했다.

샴페인 광고 포스터에 샴페인이 없다. 다른 작품들에도 제품이 강조되기보다는 여성의 이미지와 다양한 색채가 눈에 띄었고, 무하의 철학이 담긴 문장이 눈에 띄었다.


"포스터는 더 많은 대중을 계몽하기에 좋은 수단이다. 일하러 가는 그들은 멈춰서서 포스터를 보게 될 것이고, 정신적인 기쁨을 얻을 수 있다. 거리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전시장이 될 것이다." - 알폰스 무하


<'살롱 데 상' 전시회 포스터>
<황도 12궁, 달력 표지>

3부 - 대중을 위한 인쇄 출판물

Exhibition poster, Magazine and Print

무하는 파리가 사랑한 장식 예술가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이러한 성공은 산업화와 인쇄술의 발달로 인한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자신의 영감을 독창적으로 표현한 결과였다. 사람들을 위한 예술활동을 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한 것처럼, 무하는 귀족 일부가 아닌 대중을 위한 예술을 추구하였고, 예술이 소통의 수단이라 믿었던 그는 대중을 위한 예술을 목표로 달력과 잡지 같은 상업적인 출판물을 작업하였다. 후에 그래픽 예술가들의 산실이었던 <살롱 데 상>에서 개인전을 치르며 더 많은 전시회, 출판물 작업 요청을 받게 되었다.

지스몽다에서부터 이어지는 그의 예술은 항상 대중을 위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부 사람들은 그가 마카로니 같은 꼬불꼬불한 머리카락만 그린다며 비판하였지만, 한결같았던 그의 자세가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무하스타일에 열광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황도 12궁은 참 마음이 많이 간다.


<네 개의 별 : 달, 북극성, 금성, 샛별>

4부 - 매혹적인 아르누보의 여인들

Art Nouveau and Mucha style

아르누보는 무하에 의해 강한 영향을 받았다. 이 새로운 예술 장르는 많은 예술가들과 파리 시민들에게 갑작스런 파급효과를 내었고, 처음에는 '무하 스타일'이라 불렸는데 곧 아르누보와 동일시되었다. 그의 일러스트들은 점차 양식화되어 성숙한 아르누보 스타일을 구사했고, 특히 별이나 원, 왕관과 같은 몇 가지 장식 언어들은 순수하게 장식으로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글과 연결되어 상징적인 의미를 띠기도 했다. 

아르누보의 정수라 불리는 무하, 4부에서는 아마 가장 많이 접해봤을 거라 생각되는 시리즈물들이 등장한다. 상업성이 짙은 미술이라기보다 대중의 마음을 끌 수밖에 없는 작품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에 와서는 타로카드, 애니메이션(카드캡쳐체리, 세일러문)등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하니 여러모로 대단한 것 같다. 


<체코 음악의 판테온>

5부 - 고국을 위한 애국적 헌사

Patriotic Tribute to Czech

파리와 미국에서의 성공을 뒤로하고 슬라브 민족에 대한 정체성과 조국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그는 체코로 귀향했다. 가장 처음 프라하 시청사의 시장실을 위한 벽화를 그렸고, 상업적인 작품을 만들지 않았으나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자선단체 등을 위한 포스터는 다수 작업했다. 1918년 체코슬라비아가 독립한 후에는 고국의 지폐, 국가의 엠블럼 등을 무상으로 디자인했다. 그는 20여 년에 걸쳐 체코의 역사와 민족애를 담은 20개의 연작 <슬라브서사시>를 완성했다. 아름다운 이미지들과 달리 무하의 이 대작은 웅장하고 역사적인 화풍을 보여준다. 무하는 1939년 나치의 프라하 침공 당시 체포되어 심문의 후유증과 폐렴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판테온은 모든 신들을 모시는 신전이라는 뜻이다. 음악을 사랑하고 체코의 작곡가들을 존경하는 마음을 신전에 빗대어 추모하는 그림이라고 한다. 문화말살정책이라 해야 할까? 게슈타포가 첫 번째로 체포한 인물 등 중 하나였던 무하, 비록 심문 후에 집으로 보내졌지만 고령이었던 그를 여러모로 악화시켰다.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가 덩그러니 생각이 나 씁쓸했다. 


*게슈타포 - 독일 나치스 정권하의 정치경찰


무하의 장례식 연설을 마지막으로 전시가 끝이 났다. 순수와 상업이라는 단어를 가져다 붙이며 미술을 접했었는데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보기 좋은 것이 느끼기도 좋다는 생각을 하게 해 준 전시였다.


ps. 굿즈 코너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엽서 두 장을 구매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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