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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네상수 Mar 20. 2020

겨울에 제철인 예술영화

room606

겨울에 제철인 예술영화


3월, 숫자로는 이미 봄을 맞이 하였지만 여전히 쌀쌀한 밤공기와 짧은 해는 아직 겨울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가장 높은 숫자와 가장 낮은 숫자를 가진 겨울은 그만큼이나 가장 분위기 있는 계절이 아닐까? 덕분에 겨울이면 더욱 생각나는 영화도 있기 마련이다.



<전고운 감독의 소공녀>


첫 번째 영화는 전고운 감독의 '소공녀', 하루 한 잔의 위스키와 한 모금의 담배 그리고 남자친구 '한솔'만 있다면 더 바라는 것이 없다는 '미소'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퍽퍽하고 고달픈 현실에 상처 입으며 살기보다는 사소한 행복으로 치유하며 상처 없이 살아가는 현대판 소공녀 '미소'의 이야기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남들 다 하는 것을 따라가기 바쁜 현대인의 삶을 묘사하는 방식과 내용이 좋았고, 이런 이야기야말로 잘 만들어진 블랙코미디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꼭 눈이 펑펑 내려서가 아니라 겨울 특유의 공허함과 추위 때문에 일어나는 해프닝들이 기억에 남는다.

겨울에 유난히 도드라지는 감정이 있다. 나의 온기를 지켜줄 버팀목은 무엇일까, 나만의 행복은 대체 무엇일까? 작게 자리 잡았던 감정들이 커지기 바쁜 영화다.


<임대형 감독의 윤희에게>


두 번째 영화는 눈으로 가득하다. 눈 내리는 삿포로야 말로 쉽고 빠르게 갈 수 있는 설국이 아닐까 싶다. 영화 '윤희에게'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윤희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편지를 몰래 읽어본 딸 새봄은 편지를 숨긴 채, 엄마 윤희에게 편지를 보낸 사람이 살고 있는 곳으로의 여행을 제안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눈 내리는 겨울은 쓸쓸하고 추울 때도 있지만 오히려 따뜻하고 고요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윤희에게'에서의 겨울이 그랬다. 등장하는 소품들과 나레이션 덕분에도 기억에 남는 것들이 많았다.

어느 순간부터 일까 퀴어 장르가 스크린으로 많이 찾아오는 것 같다. 지금 시대에서야 어느 정도의 경계는 허물어졌다지만 부모세대에서의 마음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여러모로 아름다운 영화였다.


ps. 겨울이 오면 생각 날 영화가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홍상수 감독의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세 번째 영화는 홍상수 감독의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이다. 전반부, 후반부로 나뉘어져 이야기가 진행된다. 같은 인물들이지만 달라지는 대사와 뉘앙스들이 반복되는 장면을 지루하지 않게 도와준다.

겨울을 배경으로 하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는 밤거리가 잇따라 등장한다. 겨울밤, 술을 마신 뒤 나누는 대화들과 입김과 담배연기 가득한 대화들에 겨울이 더해진다. 고로 감독의 다른 영화들처럼 그 장소에 가고 싶어 지게 하는 힘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수원 화성을 굉장히 좋아해서일까? 나오지 않은 장소들에 대해 아쉬움이 컸지만 겨울에 생각나는 영화로는 충분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 또한 여전했다.


<미셸 공드리 감독의 이터널선샤인>


네 번째 영화는 미셸 공드리 감독의 '이터널선샤인'이다. 아픈 기억만을 지워준다는 회사 '라쿠나'를 찾아가 헤어진 연인의 기억을 지우기로 결심하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겨울은 사랑하기 좋은 계절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이별이 어울리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영화처럼 특정 기억만을 지워 낼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사랑이라는 감정이 잊거나 잊혀질 수 있을까?

아마도 이십대 초반이었을 때다. 어제였던가? 좋아하는 사람의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이터널선샤인'이라는 사실에 몇 번을 돌려봤다. 사실 별 감흥이 없던 영화였지만 지금 와서 다시 보자니 여러모로 아픈 영화다. 나의 성장과 더불어 좋아하는 것들이 많아지는 ‘이터널선샤인’, 니체의 말에 온전히 동의할 수 있을까


"망각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자신의 실수조차 잊기 때문이다. - 니체"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

마지막 영화는 국내 재개봉 횟수만 무려 4회에 달하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이다. "お元気ですか?私は元気です" 라는 대사로 수많은 패러디와 유행을 낳기도 했고, 아이러니 하게도 일본보다 한국에서 굉장한 인기를 누린 이와이 슌지 감독의 초기작이다.

훗카이도가 배경인 영화는 화면 가득 하얀 설경과 일본 멜로 특유의 정서가 더해져 모두의 겨울 영화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희에게'또한 그랬지만 '러브레터'의 엔딩 또한 몇 날 며칠은 머릿속에서 아른거릴 엔딩이었기에, 이번 겨울을 떠나보내는 영화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이미지출처 - 네이버영화



스트리밍 서비스 덕분에 접근은 쉬워졌지만 아직도 극장에서는 상영관도 굉장히 적고, 있다한들 상영시간도 제멋대로 인지라 예술영화를 제때 접하기가 참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 내어 극장에서 관람할 수 있다면 제철 감정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ps. 여전히 이터널선샤인을 좋아하는 여자와는 정서적으로 맞지 않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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