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보는 갤러리
동문 모텔에 이어 아라리오 뮤지엄 탑동 시네마에 도착했다. 극장을 탈바꿈시킨 만큼 여유로운 전시 공간과 창 너머의 바다 덕분에 호화로웠다. 공간이 주는 힘이 미술관을 기억하는 데 있어 이리도 영향을 끼칠지는 몰랐지만 제주의 매력인 것 같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간 뒤 내려오면서 전시를 관람하는 것이 좋다는 안내를 받았다. 엘리베이터에도 작품이 설치되어 있어 지루하지 않게 올라갔다. 문이 열리자 정체모를 향으로 가득한 전시장이 펼쳐졌다.
관람시간
10:00 ~ 19:00(18:00 입장 마감), 월요일 휴관
입장료(성인)
탑동시네마 - 15,000원
동문모텔1,2 - 20,000원
탑동시네마/ 동문모텔1,2 - 24,000원
씨 킴 CI KIM
씨 킴의 개인전 'I have a dream'은 미국의 흑인 해방 운동 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동명의 제목으로 했던 연설에서 가져왔다. 평생 꿈을 향해 달려왔다는 작가의 흔적들이 회화, 조각, 설치, 드로잉, 비디오, 레디메이드 오브제 등 다양한 형태로 작업되어 보여진다.
작가의 특징 중 하나는 버려진 것들, 오래된 것들, 버릴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재사용이다. 버려진 건물에 영혼을 불어넣어 살려내는 아라리오 뮤지엄 사업에서부터 버려진 마네킹에 하얀색 시멘트를 입혀 만든 조각들, 작업실 근처 바닷가에 떠밀려내려온 마모된 부표와 그것의 형태를 그대로 살려 브론즈로 떠낸 조각, 작업실 바닥에 깔려있었던 카페트를 그대로 들어 올린 작품들까지, 일상의 흔적들에 작가의 마음이 담겨 탄생한 작품들이 조명된다.
이질적인 재료들의 조합을 끊임없이 실험하고 탐구해 왔다는 작가의 작품들은 새로운 감각들을 선사하는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버려진 마네킹 위에 시멘트와 석고를 발라 작업했다고 한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코디 최의 펩토비즈몰(소화제)를 사용한 작품이 생각나 비교가 되었다.
아크릴 물감 위에 커피로 채색하고 본드로 질감을 살린 작품에서는 커피! 아닌 커피? 의 향이 난다. 제주의 풍경을 담아냈다는 설명 덕분에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아크릴과 커피, 이질적인 재료들의 충돌이 이런 것인 것 같다.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물주전자를 든 젊은 여인', '우유 따르는 여인'을 재해석 한 작품이다. 펌킨 쥬스라 적혀 있는 포스트잇을 보고 커피를 이어 호박죽을 뿌린 건가 싶었는데 세월의 흔적을 표현하기 위해 철가루를 뿌리고 부식시켰다고 한다.
뒤샹의 작품을 보고 미술가가 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됐다고 한다. 버려진 물건을 예술 작품으로 환생시키는 작업 또한 뒤샹과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위의 작품은 목탄, 에나멜 도료를 사용할 때 마스크를 끼고 작업하기에 마스크를 포스터에 붙였던 것인데 코로나 19 시국과 연계된다는 점이 흥미로워 2003년에 만들어 놓았지만 다시 전시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니엘 리히터 <Oriente, 2005, oil on canvas> <Nizza-Horro Der Lebenden, 1996, oil on canvas> <Opfermiethen, 2004, oil on canvas>
실과 바늘을 이용해 일상적인 사진 등 다른 매체 위에 자수를 놓아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고 한다. 굉장히 서구적인 느낌을 받았는데 일본 작가의 작품이라 재밌었다. 디테일한 자수 때문일까 그냥 순수하게 아름다워서 다른 작품에 비해 오랜 시간 앞에 서있었던 것 같다.
백남준 <반 고흐 로봇, 1992, mixed media> <나의 작은 록키 소녀, 1993, mixed media> <텔레 커뮤닛, 1990, mixed media> <탈, 1993, mixed media> <시스 코프, 1994, mixed media> <TV는 키치다, 1996, mixed media> <마키우나스, 1992, mixed media>
세자르 발다치니 <한 쌍의 반인반수, 1995, welded bronze>
장환 <Family Tree, 2001, chromogenic prints> <영웅 No.2, 2009, cowskin, steel, wood and polystyrene foam> <공자 Confucious, 2011, cowskin> <영적 지도자 No.16, 2010, cowskin> <소가죽 부처 얼굴 No.3, 2010, cowskin>
조지 시걸 <우연한 만남, 1989, Bronze with brown patina, aluminum post and painted metal sign>
4층 전시관을 맞이하는 백남준의 작품들, 현대 미술을 소개하는 전시에서 못 보면 서운할 정도인 백남준의 작품들이지만 인물들을 형상화한 작품들이 더러 모여있어서 인상적이었다.
대중매체를 예술의 영역으로 발전시킨 비디오 아트들은 꽤나 취향에 맞는 것 같다. 작가가 남기고 간 작품의 수를 생각하더라도 감탄이 나온다. 같은 국적의 세계적인 작가라 더욱,
중국 작가 장환의 퍼포먼스, 가계(家系)를 얼굴에 새겨나가며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지경으로 끝이 난다. 다르면서도 같은 문화권에 살고 있어서 일까? 와 닿는 느낌이 가까웠다. 거듭하다 결국 까맣게 되어버린 얼굴을 보고 있자니 경주와 연고도 없는데 경주 이 씨로 살고 있는 게 조금 웃겼다.
하나의 상영관이었을 공간을 압도적인 크기로 자리 잡고 있는 장환의 '영웅 No.2', 소가죽으로 뒤덮여있는 사람 형태의 영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생각보다는 이 거대한 작품을 어떻게 옮기고 설치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소가죽을 재료로 작업하는 작품들이 많은 이유도 궁금했다. 이름과 가죽, 남기고 가는 것들에 대한 예술로써의 접근일까,
토마스 데만트 <Parking Garage, 1996, chromogenic print>
김경승 <소년상, 1942, bronze, stone>
이헌정 <그1, 2015, glazed ceramic, ceramic pencil> <그2, 2015, glazed ceramic>
마르쿠스 루퍼츠 <Daphne, 2003, painted bronze> <Prometheus, 1989, painted bronze>
안젤름 키퍼 <Star books, 2001, five standing books of lead and card with oil and acrylic> <Shebirat Ha-Kelim, 2000, oil, shellac, emulsion on canvas, with iron and ceramic> <Tannhauser, 2000, lead book with thorns>
씨 킴 <무제, 2019, painted bronze> <무제, 2017, painted bronze, cement, mixed media> <스머프 칼라, 2014, acrylic and polystyrene on canvas> <무제, 2016, paint and cement on canvas> <꿈, 2016, neon on refrigerator door> <쥐, 2019, painted bronze>
전시장에 거울이 있으면 거울로 작품을 한 번 더 봐야 할 것만 같고 그렇다.
5층 전시장에 있던 작가의 작품들보다 화려한 느낌이 더욱 강해서 일까, 제주의 자연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문구가 떠올랐다. 작가인 동시에 컬렉터이기 때문일까 네온을 이용한 작품, 스머프를 이용한 작품, 등 굉장히 다양한 소재를 사용하고 확고한 스타일보다는 다양한 부분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하는 것 같다.
듀에인 핸슨 <벼룩시장 상인, 1990, polychromed bronze>
앤디 워홀 <Marilyn Monroe, 1967, silkscreen on paper>
김인배 <시간의 옆 모습, 2014, pencil on wooden panel> <혼자 잘 할 수 있겠습니까?, 2014, pencil on wooden panel> <시간의 외곽선, 2014, pencil on wooden panel> <델러 혼 데이니, 2007, pencil on resin> <지리디슨 밤비니, 2005, pencil on resin>
수보드 굽타 <배가 싣고 있는 것을 강은 알지 못한다, 2012, mixed media> <모퉁이를 돌다, found aluminum utensils, water piper, tap, cement, wire, pump and water variable dimensions>
한스 옵 드 벡 <테이블, 2006, mixed media>
샹탈 조폐 <isabella, 2012, oil on board>
키스 해링 <무제, 1982, Enamel and dayglo on metal>
Life size라는 표기가 인상적이다. 동문 모텔에서 전시되었다면 많이 놀랐을 것 같은 디테일 또한 인상적이다.
벼룩시장에서 마주칠 수 있는 일상적인 인물을 표현한 작품이고, 미국의 소비 사회에서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비판적인 시각을 극대화했다고 한다.
있어도 없어도 섭섭한 앤디 워홀, 키스 해링의 작품들
과감히 생략되고, 축소된 표정에 대비하여 얼굴 형태가 커다란 덩어리로 부각됨에 따라 시각적 리듬을 생성한다고 하는데, 시그니쳐가 될 것 같은 기괴하고 재미있는 형태가 뭔가 좋았다.
성인의 신장과 비슷한 높이로 테이블을 확대시켜 만든 작품으로, 관람자들은 약 7세 정도 아이의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볼 수 있다고 한다. 흰색으로 가득한 시선에 음식과 담배가 심하게 반대된다. 담배밖에 안보였던 것 같기도 하고,
소재인 알루미늄이나 스테인리스 스틸은 작가의 트레이드마크이자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잘 나타내는 재료라고 한다. 인도인들은 사기그릇엔 사람들의 타액이 묻어 흡수되기 때문에 불결하다고 생각하고, 살균이 가능한 금속 그릇을 청결하게 여겨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 하는데, 조금 반전이었다.
청결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다르기는 한가 보다. 예상외의 부분에서 청결을 찾는 것을 알게 되니 새로웠다. 여하튼 스테인레스 식기의 겉은 번쩍이지만 속은 비어있다는 점에서 양면성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한다.
3층 전시장에서부터 이미 시선을 빼앗았던 작품이다. 위에서 볼 때와는 다르게 마주하니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공중에 매달려있는 작품의 형태도 신기하고, 한눈에 담기지 않아 이리저리 둘러보는 재미가 있었다. 영웅과 마찬가지로 어떻게 옮기고, 설치했을까 생각이 든다.
회화 작품의 수가 적었던 건 아니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서양의 블루는 참 우울한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제주의 바다, 하늘과 대비되는 파랑 때문인지 무엇 때문이지는 모르겠지만 이사벨라, 이름을 들을 때 마다도 생각날 것 같다.
팔로마 바가 바이즈 <도그맨, 2002, lime wood and chippings> <무제, bronze>
폴 맥카시 <난쟁이 머리(파랑), 2000, platinum-based silicone and wood crate>
코헤이 나와 <픽셀-밤비 #13, 2014, mixed media> <픽셀-밤비 #12, 2014, mixed media> <픽셀-밤비 #11, 2014, mixed media> <픽셀-디어 #38, 2014, mixed media> <픽셀-디어 #37, 2014, mixed media>
우고 론디노네 <일출, 동쪽, 6월, 2005, cast bronze, silver car paint, concrete plinth> <2007년 1월 15일, 2007, acrylic on linen> <유성의 어두운 흐름을 지나서, 2004, cast resin, semi-transparent> <물로 숨쉬기, 2005, plexiglass, wooden frame, enamel>
엄태정 <틈 - 02 - 3A, 2002, ink on paper> <순례길 - 키스마나, 1980, copper> <틈 - 01 - 1A, 2001, ink on paper> <모퉁이 집 no.17_A, 1999, copper> <틈 - 04 -1A, 2004, ink on paper> <틈 - 02 - 1A, 2002, ink on paper>
사라 루카스 <메머리루루, 2012, tights, fluff and ceramic toilet>
2층에서 1층으론 내려가는 계단 사이의 공간에 전시되어있다. 기획이 참 잘되어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도그맨 작품과 자투리 공간이 자연스럽고, 참 잘 어울린다.
작가는 주로 디즈니 만화에 등장하는 친숙한 캐릭터들을 뒤틀리고 왜곡된 신체를 가진 형상으로 묘사함으로써 우리가 가진 동심의 세계를 무참히 파괴한다고 한다.
위의 작품 또한 성기를 연상하든 불뚝 솟아난 난쟁이의 얼굴에서 탐욕스러운 욕망으로 가득 찬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전혀 몰랐다.
탑동 시네마에서 메인이 되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박제된 사슴의 표면을 투명한 크리스탈 구슬로 덮어 마치 수많은 디지털 픽셀로 구성되어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각각의 구슬들은 본래 동물이 가진 색과 질감보다 내면의 본질적 형태를 직관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시야와 인식의 지평을 넓혀준다고 한다.
굉장히 귀여운 사슴이다.라는 첫인상이었지만 박제된 사슴과 크리스탈 구슬 사이에서 괴리감이 느껴졌다.
우고 론디노네의 작품들은 작품명에 먼저 반하게 되는 것 같다. 아트 파라디소에서 진행했던 영원의 숲 전시에서 처음 작가의 작품을 접했었다. 시, 시구에서 영감을 받는다던 설명이 생각난다.
무제, untitled의 작품이 유난히 많았던 전시였기에 더욱 작품명이 빛났던 것 같기도 하다.
한국 추상조각의 1세대 선구자 엄태정의 작품들, 탑동 모텔에서 본 구본주의 조각과는 다른 느낌의 인상이다. 금속이라는 재료 참 매력적인 것 같다.
스타킹과 변기 등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재료들을 성적인 상징물로 전환시킨 메머리루루
성(性), 남성 중심의 사회적 관념을 비판하는 작업들은 직설적이고 해학적인 것이 더욱 인상적인 것 같다.
바바라 크루거 <무제, 1983, gelatin silver print>
김병호 <삼각 정원, 2014, powder coating on aluminum, piezo, arduino, sound> <일련의 사건들, 2012, brass, piezo, arduino, sound>
도미니크 곤잘레즈-포에스터 <엑소투어리즘, 2002, neon>
어원 웜 <젊은 예술가의 초상, 2008/2017, acrylic, paint and iron, 30 parts>
미하일 카라키스 <해녀, 2012, HD video, stereo sound>
일상 오브제, 오이 피클이 사람과 마찬가지로 어느 하나 똑같은 것이 없으며 모두 다르게 생겼다고 이야기한다.
피클은 사실 잘 모르겠고, 작가가 진행했던 60초의 시간 동안 관람객이 직접 작품의 일부가 되는 <one minute sculpture>를 찾아보면 더욱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참 제주스러운 작품이다. 외국 작가의 시선이 담긴 작품이라는 점과 퍼포먼스, 비디오가 함께 엮여있는 점이 포인트인 것 같다.
제주도로 떠난 여행에서는 하루짜리 일정이었는데 풀어내기까지의 시간은 어느새 두 달이 지났다. 어떤 때에는 몇 달 전 같았는데 글을 쓰는 지금은 어제 있었던 일 같다.
계획 없이 떠난 미술관 여행에서 얻어온 것 중 하나는 전시를 관람한다는 것은 상정 외로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것이다. 하루, 이틀, 몇 년의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 기록한다. 쓸수록 뭉그러지는 문장들에서 힘을 얻으며
ps. 사랑하는 도시가 생긴 것 같다. 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