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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네상수 Jan 10. 2021

국립현대미술관 - 청주관, 보존 과학자 C의 하루

집에서 보는 갤러리


"보존과학자 C의 하루는 상처 받은 작품을 만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여러 가지 보존 도구와 첨단 장비가 놓인 실험실 같은 C의 공간은 과학적이면서도 동시에 상상의 세계가 공존하는 곳이다. C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예민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작품을 살피고, 손상된 곳을 발견하면 서둘러 작품을 치료한다. 작품에 담긴 작가의 의도를 그대로 살리면서도, 작품 속에 새로운 시간이 쌓여갈 수 있도록 돕는다. C의 하루는 작품을 향한 끊임없는 질문과 고민으로 완성되고 또다시 시작된다."


탄생과 소멸, 미술작품 또한 생명체와 같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전시였다. 보존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소장품 실물과 영상을 통해 소개하고 전시로 풀어낼 수 있는, 국립현대미술관만이라서 할 수 있는 것 같은 좋은 전시, 좋은 관람이었다.

'상처와 마주한 C', 'C의 도구', '시간을 쌓는 C', 'C의 고민', 'C의 서재'의 흐름으로 흘러간다. 작품이 좋다는 느낌보다는 내용이 좋다는 전시는 또 처음인 것 같다. 


니키 드 생팔 - <검은 나나(라라)>, 1967

초등학생? 중학생? 서울랜드로 소풍 가던 때 과천에서 마주했던 작품이다. 아마도? 십 년 넘은 일들의 기억은 머릿속에서 달아나려고 안달인지 흐릿하다. 흐린 기억처럼 늙어가던 라라도 복원이 되어 나타났다. 보존처리 관련 의사결정 과정을 보니 생각보다 많은 서류가 오갈 것 같다는 생각과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이 타인의 손에 의해 복원된 모습을 보니 의문이 든다. 작가의 온전한 작품이 아니지 않나? 전시가 의도한 물음과 같을지는 모르겠지만 작품을 소유하게 된 미술관의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미술품 복원에 쓰이는 도구들

록타이트만 보면 아려오는 손가락은 십 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주재범 - Attack!! Age-Virus, 2020, pixel animation, 1'30"

현실보다 더 아름다운 이미지들이 만들어지는 현대 시대에 픽셀로 이루어진 미디어 작품이라, 뉴트로 감성을 사랑해 반갑지만 유행처럼 다시 사라지겠지? 뻔하지 않은 것들이 뻔해져 사라진다면 슬플 것 같다. 보존과학자 C와 복원 그리고 구시대의 표현법이 묘하게 어울렸다.

zerolab - 분석 그래프, 2020

한국 근현대 회화를 대표하는 오지호와 구본웅, 근현대 유화작품에 사용된 안료 연구를 위해 두 작가가 사용한 백색안료의 성분을 분석한 것이라고 한다.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백색 안료 변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 픽셀이 무색하게 최첨단으로의 분위기 반전


김지수 - 풀 풀 풀 - C, 2020, 채집한 체취와 냄새, 바이알병, 스틸, 벽 위에 페인트

매체에 따라 독립된 공간을 사용하는 보존과학실은 각기 다른 보존처리 방법과 재료에 의해 특징적인 냄새들이 존재한다고 한다. 시각적으로 냄새를 확인할 수 없지만 '보존과학의 냄새'라는 상상의 영역으로 안내한다고 하는데, 그때도 지금도 잘 모르겠다. 아 교보문고의 디퓨저가 생각났다. 'the scent of page' 미술관의 향기, 예술의 향기, 나쁘지 않을지도

'만지지 마세요'에 세뇌된 마음에 다섯 글자가 심장을 뛰게 한다. '만져 보세요' please touch, 만져 주세요로 받아들여 열심히 만져봤다. 

자세한 설명과 서양화에 대한 새로움 그리고 이어지는 보존 과학, 복원에 대한 전시의 내용이 수준 높은 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는 것이 많아질수록 아는 것은 부족해지는 기분이 들어 발걸음을 조금 천천히, 

보존환경 중 재질별 조도 및 좌외선량에 대한 예시로 조도를 수치에 따라 보여주고 있다. 금속 및 석재 1500~750 lux, 도자기 및 유리 300 lux, 유화 150 lux 이하, 동양화 및 수채화 100 lux 이하 등 생각보다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을 실감했다. 다른 전시를 갔을 때 조도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은 기분? 청주관 1층의 수장고를 가면 온도와 습도 조절에 엄청난 힘을 쓰고 있는 것 또한 볼 수 있었다.

정정호

작가는 보존복원을 위해 실제로 사용되는 각종 도구들을 일반적인 시각과 다른 각도에서 들여다보거나, 새로운 형상으로 쌓고 배치하는 등 도구를 다른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한다. 작품 속 예측하지 못한 도구의 이미지는 실재와 상상의 경계에서 도구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는 설명이었다. 음? 

제로랩 - 3D 그래프, 2020

이 분석 데이터는 3개 제조사에서 동일한 이름으로 판매 중인 유화물감 4종류의 형광 발생량을 3차원 이미지로 변환한 그래프이다. 차이를 통해 같은 색의 물감이지만 제조사마다 혼합되는 재료의 종류가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포스터물감으로 색상환을 만들 때 알파와 신한의 파랑이 참 다르던 것이 생각난다. 

"Micro-XRF 스캔 분석, X선을 작품에 비추어 물감에 포함된 원소의 종류와 양을 알아내는 분석법이다. 각 원소별로 개별 색상을 대입하여 색상이 밝을수록 해당 원소의 햠량이 높음을 의미한다. 망간 성분 분포 이미지를 통해 바위를 그릴 때 망간이 함유된 물감을 사용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또한 티타늄, 아연, 철 성분 분포 이미지를 통해 뒤집힌 나룻배, 수풀 등의 형상이 확인되어 작품 속에 또 다른 그림이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C의 고민, C's Dilemmas

"복원에 있어 어느 '정도'까지가 작품의 원본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일까, 복원된 부분이 드러나도록 두어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이 반영되게 할 것인가, 혹은 작품을 처음의 시각적 완성 상태로 되돌릴 것인가, 오늘도 C의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보존 과학, 복원을 듣고 가장 먼저 생각났던 과천관의 '다다익선'의 이야기가 전시의 끝을 장식한다. 10월 03일 개천절, 1003개의 브라운관으로 이루어진 '다다익선'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것인가? 형태를 변화해야 하는 것인가? 백남준이 아닌 다른 작가의 손에 맡겨야 하는가?라는 미술관의 고민을 도슨트 투어에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잠시의 생각과 복원에 대한 전시를 본 뒤의 생각에는 차이가 있는 것 같지만 나는 당연히 ~에 투표했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하다. 즐거운 이야깃거리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 올 일이 아니면 인연이 없는 청주, 였었다. 였던 것 같다. 녹아내리던 여름에 두들기다 만 글과 사진을 시린 겨울에 다시 꺼낸다. 게을러지지 말자던 새해 바람과 함께 철 지난 전시의 기록들을 하나 둘 꺼내야겠다.


ps. 청주에 다시 갈 수 있을까? 지금과는 사뭇 다른 계절의 하늘을 한참은 우두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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