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하늘이 유독 예뻤던 어느 날 아이가 태어났어요. 백일 사진을 찍을 때쯤엔 한겨울이 되었죠. 추운 날씨 덕분이었는지 출산 전 미리 준비해 둔 기저귀 발진 크림은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상태였어요. 이때까지만 해도 기저귀 때문에 그토록 고민하게 될 줄은 몰랐지요.
봄이 지나 여름이 되었고, 날씨는 점점 습해지고 더워졌습니다. 저는 아기들이 땀을 이렇게나 많이 흘린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한번 자고 일어나면 베개가 흠뻑 젖어있는 경우도 많아서 처음에는 깜짝 놀랐어요. 우리 아기가 유난히 땀이 많은 아기였던 건지.... 아무튼 그때부터 기저귀가 닿는 부위에 발진이 조금씩 올라왔고 팔이나 다리같이 접히는 부분도 땀띠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아이가 이유식을 먹기 시작하며 가끔 설사하는 일도 생겼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설사를 하고 나면 연약한 피부가 짓무르기도 했지요.
기저귀 발진에 대처하는 방법
기저귀 발진이 생겼다면 우선 잘 씻고 잘 말려주는 게 최선입니다. 이때 발진이 심하지 않은 정도라면 기저귀 발진 연고를 바르면 금방 좋아집니다. (예: 비판텐. 비판텐에는 피부 조직의 재생을 돕는 덱스판테놀 성분이 들어 있어요. 스테로이드 성분은 들어있지 않아서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고 하루에 여러 번 발라주어도 괜찮아요.)
대부분의 발진은 바람이 잘 통하게 해 주면 며칠 안에 괜찮아져요. 하지만 조금 증상이 심한 경우라면 스테로이드 연고를 사용해 볼 수 있습니다. 스테로이드는 종류가 굉장히 다양한데, 약효를 나타내는 세기에 따라 등급이 나뉘어있어요. 아기들이 사용하는 제품은 대부분 7등급으로 가장 약한 등급의 스테로이드예요. 피부가 짓물러 아이가 너무 아파한다면 스테로이드 연고의 사용도 고려해 볼 수 있어요. 가끔씩 아주 소량 단기간 사용하는 것은 크게 문제 되지 않습니다. 스테로이드 연고를 발라주었다면 바로 기저귀를 채우기보다는 조금 기다리는 것이 좋아요. 기저귀가 피부를 밀봉시키는 효과를 내어서 스테로이드 성분이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흡수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발진이 너무 오래 지속되는 것 같으면 병원에 가서 진료를 보는 것이 좋아요. 곰팡이균에 의한 기저귀 발진의 경우에는 항진균제를 사용해야 합니다. (이 경우는 기저귀 발진에 흔히 발라주는 보습 연고나 스테로이드 연고와는 다른 제품으로 치료해야 합니다.)
기저귀 발진이 생겼을 때 기저귀를 벗겨 놓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지요. 이때부터 '가장 자극이 적은'기저귀를 찾아내는 미션이 시작됩니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다 똑같아 보였던 기저귀인데, 어느샌가 회사별 제품 스펙을 줄줄 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이들 마다 자기에게 맞는 기저귀가 다 따로 있는 것인지 유독 발진이 잘 생기거나 잘 새는 제품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한 가지 종류의 기저귀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 제품 저 제품을 써보며 계속 비교하게 됩니다. 일명 각종 제품을 섭렵하며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기저귀 유목민' 생활의 시작이지요.
밤만 되면 누워서 각종 기저귀들 후기를 읽어보고 체험팩이 있으면 시켜보곤 했어요. 하나의 회사에서도 어찌나 다양한 종류가 출시되는지, 우리나라에 시판 중인 기저귀 종류가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웠습니다. 기저귀 하나 고르는데도 엄청난 고민에 고민을 했던 날들.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에 그냥 잠이나 더 잘걸, 하는 생각도 드네요.
육아용품의 세계는 정말 무궁무진합니다. 출산 전 처음 베이비페어에 다녀왔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지 못해요. 세상 처음 보는 물건들이 눈앞에 쫙 깔려있는데 도대체 여기서 무얼 사야 하는지 감도 오지 않았어요. 게다가 아기가 사용할 물건이라고 생각하니 성분에서부터 후기까지 하나하나 꼼꼼하게 확인한 후에야만 손이 가더라고요. 물건 하나 사는데 이렇게 많이 공부했건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요즘 세상의 육아를 경험해 보신 어머님들은 하나같이 공통적으로 옛날 육아랑은 다르다고 말씀하세요. 물론 세상이 많이 변했으니 육아 방식도 변하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그런데 저는 그 원인 중 하나가 '너무 많은 정보와 선택권'에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앉은자리에서 기저귀에 들어가는 흡수체의 원산지까지도 바로 알 수 있는 세상이 되었어요. 그리고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육아용품이 쏟아져 나오지요. 게다가 다른 엄마들은 어떻게 아이를 키우고 있는지 속속들이 다 알 수도 있고요.
나만 모르는 육아정보가 있는 건 아닌지, 벌써부터 정보전에서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우리 아기에게 하나라도 더 좋은 걸 해 주고 싶은 마음에 끊임없이 정보를 서칭 해요. 휴대폰 액정 화면을 보고 있는 시간들이 늘어갑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닫지요. 아기가 지금 이 순간 가장 원하는 것은 엄마의 온전한 관심이라는 사실을요. 아이를 위해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지만 정작 그 순간 내 눈 앞의 아이가 뒷전이 되고 있다는 아이러니함을 깨닫고는 휴대폰을 내려놓았습니다.
가끔은 너무 많은 선택지 앞에서 갈팡질팡하며 옛날에는 선택의 폭이 좁아서 편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저 어릴 때는 아기 이유식도 '거버'제품이 거의 유일했다고 하네요. 그냥 너도 나도 다 그것만 먹였다고....) 물건 하나 사는데도 이렇게 고민이 많은데,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정보의 늪에서 허우적거려야 할지 앞날이 조금 캄캄했어요.
정보가 넘치는 세상에서는 나만의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한 것 같아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혜택이지만, 그 정보에 매몰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항상 최선의 결정만 내리겠어요?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의 우선순위를 잘 매겨서 어느 정도 포기할 것은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그게 아이도 저도 모두 행복한 길인 것 같아요.
아이가 처음 태어나면 뭐든지 다 정성을 다 해서 해 주고 싶지요. 하지만 곧 그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엄마의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으니깐요. 나만의 확고한 우선순위를 정해서 한 가지 씩 내려놓는 일. 아이와 엄마 모두 행복할 수 있는 육아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