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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삼 Aug 10. 2019

지난 것들의 아름다움

14. 노세 노세 젊어 노세, 천렵(川獵)

처갓집 동네는 일곱 가구가 사는 하늘 아래 첫 동네라 할 만한 산골 동네이다. 장모님께서는 전화를 하시어 넷 집이 어울러 돼지를 잡으려는데 고기가 너무 많으니 모두 모여 나누어 먹자고 하신다.

마을 어른들께서는 가까이 있는 자식들과 사위들에게 연락들을 하여 한나절만에 10여 명의 객꾼이 모였다. 두어 시간 돼지를 잡아 나누고는 내장을 삶아 도랑가에 위치한 마당 너른 집에 비닐 멍석을 깔고 둘러앉으니 온 동네 사람들이 한 식구처럼 느껴진다.


어린 시절에 보았던 마음에 맞는 동갑네끼리 돼지바리를 잡든 방죽을 훑어 미꾸리를 잡아 고된 농사일 하루쯤 접어두고 도랑가 그늘에 모여 음식을 나누며 하루를 즐기던 풍습이 생각난다.

천렵을 간다는 그 날은 남자들은 방죽을 훑어 미꾸라지며 붕어 새끼며 매운탕거리를 잡고 아낙들은 돼지고기를 삶고 전을 지져낸다. 그런 날은 남자들도 여자들의 일을 한목 거들기도 하고 저녁나절이면 여자들에게 슬그머니 자리를 내주어 여자들만이 한판 술판도 벌인다. 그야말로 찌든 인생사 힘든 농사일 모두를 잠시 잊고 신명 나는 시간을 갖는 모습이었다. 50여 년 전 우리 농촌의 모습니다.


그런 천렵을 가는 날이면 누구누구의 술사가 있음이 알려지기도 하고, 때로는 누구네 남정네와 누가 눈이 맞았다며 머리채 끄드는 싸움도 일곤 했는데, 그 또한 천렵하는 날의 뒤풀이 중 빼놓을 수 없는 장면으로 기억된다.


천렵 문화는 어쩌면 층층시하의 며느리들에게 잠시 해방의 기쁨을 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 것 같다. 이웃의 권유로 시어머니의 허락이 떨어지면 큰집 며느리인 어머니께서도 그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동네에서 가장 젊은 어른도 이미 팔순을 넘긴 연세들인지라 아들이며 사위들이 뒷 심부름을 한다. 그분들의 주름진 얼굴에 환한 웃음이 피어난다. 정스러운 아주머니께서는 양재기에 술을 따라주시며 손바닥만 하게 썬 고기를  왕소금에 꾹 찍어 입에 넣어주신다.


“고기는 이렇게 먹어야 제맛이지! ”

"아 - 하게나!"


어른들은 어깨를 실룩거리며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며 흥에 겨워 창도 한마디 식 하신다. 평소 무릎 아프다는 얘기는 어디로 가고 …


모처럼 돼지를 잡아 동네잔치를 치르고 보니 단옷날이면 도랑가에서 천렵을 하던 고향 사람들이 눈에 선하다. 비록 어린 시절에 본 기억들이지만 부모세대의 천렵 문화를 곁눈질했던 것이 어쩌면 지금처럼 이웃과 단절된 사회를 살면서 가끔씩 그런 문화를 그리워하는 계기가 되었을까.

이웃집 아이들이라도 데리고 족대를 울러 메고 한나절 도랑가를 첨벙거리고 싶은 충동이 이는 걸 보면 …


※천렵: 설명 <사전적 의미는 천렵(川獵)[철―][명사][하다 형 자동사] (놀이로) 냇물에서 고기를 잡는 일 >이라고 되어있다. 그러나 충북 제천지역에서는 천렵 간다고 하면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돼지 등을 잡아 여럿이 어울려 노는 행위 자체를 천렵(간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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