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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삼 Aug 07. 2019

지난 것들의 아름다움

 13. 산불이야!   

금년도 강원도 고성, 강릉, 속초, 동해 지역 산불은 그 피해면적이 1,757헥타르에 이른다는 보도가 있었다. 발표된 그대로를 받아들인다면 ,  1 헥타르가 10,000 평방미터이니 17,570,000 평방미터이고,  인천 문학경기장 면적이 251,937평방미터이니 그것의 70배나 되는 면적을 태운 것이다. 

 요즘은 산불이 나면 대부분 대형 산불로 번지는 경우가 흔하다. 때문에 추수가 끝나는 때부터 이듬해 5월까지는 모든 행정이 산불예방에 집중되어있다.


얼마 전 금년도 산불 비상근무가 해제된 이튿날 직원들 격려차 회식자리를 마련했더니, 회식자리에 가기도 전에 산불이 났다는 신고가 접수되었다. 산불근무요원들이 철수되고 나니 감시가 없는 틈을 타 밭둑에 불을 놓았다 산으로 번진 것이다. 초기 진화로 큰 산불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사건이었다.


산불이 발생하면 초기에 불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요즘 산을 다녀보면 예전과 달리 사람조차 다니기 힘들 정도로 숲이 우거져 있어 사람의 접근이 어려워 초기진화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웬만한 산불에도 헬기가 동원되곤 한다.


초등학교 때 언젠가 큰 형님을 따라 나무를 하러 갔다. 눈 내리지 않은 겨울이었지만 응달쪽은 몹시도 추웠다. 형이 나무를 하는 동안 긁어다 놓은 솔잎(갈비)을 조금 가져다 불을 해놓고 쬐고 있었는데 갑자기 부는 골바람에 수북이 해놓은 나무더미에 불이 붙었다. 형과 나는 소나무 가지를 잘라 불을 끄느라 산비탈을 누볐다.

다행히 주변은 갈퀴로 나무 밑의 솔잎(갈비)들을 모두 긁었던 곳이라 크게 번지지는 않았다. 옷과 얼굴이 까맣게 그을린 형님은 그래도 괜찮다며 놀란 나를 탓하지 않았다. 그때의 놀란 가슴이란 차라리 형한테 꾸지람이라도 받았다면 났다고 생각했었다. 그 사건은 지금까지 오래 간직하며 혼자서도 웃을 수 있는 기억이다


당시 난방과 취사의 주요 화력은 오직 나무였기에 장날이면 읍내 장터 가장자리에서 장작을 짊어진 나무꾼도 볼 수 있었고, 어느 집이든 나무를 해다 때지 않는 집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산림은 황폐해져 갈 수밖에 없었고, 행정기관은 산림보호를 위하여 산감(산림감시원)을 두어 각 마을을 순시하며 큰 나무를 베거나 솔잎(갈비) 긁는 것을 통제하고 다녔다.

그래서 마을 어귀에 말쑥하게 차려입은 낯선 사람이던지 옆구리에 노란 서류봉투를 끼고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동네에는 즉각 비상이 걸렸다. 그런 차림새의 사람들은 산감 또는 술 조사 나온 세무서 직원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산감이 채취를 통제하던 나무는 소나무와 솔잎(갈비)과  굵은 나무 등이었다. 가능한 것은 가랑잎(갈잎)과 가느다란 잡목(비 나무), 고지박뿐이었다. 그래서 산감이 나온다는 날은 그런 나무를 어두침침한 부엌 구석에 처박고, 그 위에 잡목 가지와 갈잎을 덮어둔다. 또한 신발을 감추고 방안에 있거나 으레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뒷산에서 산감의 동태를 살피기도 했는데 약아빠진 산감은 나무하러 다니는 길목을 지키다가 적발하기도 한다.


그런 날은 동네가 초상집 분위기이다. 저녁이면  이장집은 마을 사람들로 북적인다. 산감은 융숭한 대접을 받기도 하고, 어떨 때는 무슨 심사인지 이장 집에도 안 들르고 그냥 내빼기도 한다.

계획된 그 무엇이 있는 것이다. 그러면 마을 이장은 우매한 동네 사람들을 대신하여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며 선처를 호소하고, 행정기관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미진한 행정 추진의 기회로 활용한다.

체납된 세금 완납과 도로 부역에 주민동원의 수단으로도 쓰는 것이다. 행정에 비협조적인 동네는 늘 산감이 자주 출몰하였고, 밉던 곱던 산감이란 존재는 해결사처럼 민(民) 위에 군림하면서  면서기(면 근무 공무원) 중 가장 끗발 있는 존재가 되기도 하였다.


중학교 때 우리 집은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이었다. 새로 집을 짓기 위해서는 많은 목재가 필요했다. 그래서 기둥감과 서까래 감 등 많은 나무를 베어다 뒷동산에 쌓아 놓았는데 하루는 남의 집에 품앗이 가셨던 아버지께서 급히 뛰어오시며 뒷산으로 물을 퍼오라 하셨다. 나는 영문도 모른 체 물 한 초롱을 들고 뒷동산으로 갔다. 아버지께서는 퍼온 물에 논흙을 넣고 저어 짚으로 수세미를 만들어 나무에 바르곤 하신다. 흙이 마르고 나니 멀리서 보면 나무들이 오래되어 먼지 묻은 나무처럼 잿빛을 띄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멋진 임기응변식 조치였다.


공직생활을 하게 된 어느 날 후배가 초임 발령을 받아왔다. 같은 학교 동문인지라 늘 가깝게 지냈는데 그에게서 공무원을 하게 된 동기를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후배가 초등학교 3. 4학년 때쯤이란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각 나무하러 가신 아버지를 마중 나갔다가 저수지 얼음판 위에 나뭇짐이 뉘어 있고 어떤 신사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아버지를 발견했단다. 나무를 해오다가 산감한테 적발되어 찬 얼음 바닥에 무릎을 꿇고 빌고 있더라는 것이다. 후배는 그 날 광경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한다. 그래서 산감이 되리라 마음먹고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게 되었다 한다. 후배가 공무원 시작한 시절은 산감의 존재감이 없는 시절이 되어버렸지만 ….



부모님 세대에 호랑이 같이 군림하던 존재, 미진한 행정 추진의 해결사 역할도 하였던 산감. 한 시대에 많은 활동을 하며 지금의 울창한 산림으로 보전하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한 직책이다. 물론 생활이 부유해지면서 바뀐 난방 문화의 변천이 더 큰 역할을 했지만 ….


매년 대형 산불이 산림자원을 소멸시키고, 문화재와 삶의 터전까지 위협을 하고 있다. 조그마한 실수와 무관심이 수십 년 간 가꾸고 보전해 온 산림을 순식간에 삼켜버리는 일들이 우리를 놀라게 한다. 내 일이라면, 내 것이라면 하고 생각하면 지키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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