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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삼 Aug 16. 2019

지난 것들의 아름다움

15. 숨바꼭질의 역사, 술 조사

왁자한 구내식당을 나서니 응달의 바람이 제법 서늘하게 느껴진다.

동료 몇몇이 청사 앞의 잔디밭에 앉아 모처럼의 가을 햇살을 받으며 담소하고 있었다.

한 직원이 며칠 전 출장을 갔다가 겪은 일이라며 이야기도 꺼내기 전 혼자 웃는다.

어느 동의 통장 집에 들러 일을 보고 있는데, 마침 경찰도 그 시각에 볼일이 있어 들리고, 산림과의 공무원도 그곳에 출장을 왔더란다.

한참을 담소하다가 느닷없이 통장님이 하시는 말씀이 "그러고 보니 옛날에 촌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들만 모였구먼"하여 박장대소하였단다. 자기는 세무직 공무원이고, 산림과 공무원은 산감이고, 표창을 준다고 해도 가기 싫어했다고 하는 경찰서의 순경도 함께하게 되었더라는 것.


그런 시절이 있었다.

불과 40여 년 전 주민이 꺼리는 공무원 중에는 세 부류의 공무원이 있었다.

나무 잘라 땔감으로 사용한다고 단속하던 산감이 그 첫째요, 밀주 담가먹는다고 수시로 술 조사 다니던 세무 공무원이 그 둘째요,  제복만 봐도 두려운 존재로 인식되던 순사의 이미지인 경찰이 그 셋째였던 것이다.



그때 집에서 겪는 일 중의 하나가 봄, 가을이면 한두 번씩 양복 입은 신사들이 옆구리에 노란 봉투를 찌르고 집집마다 밀주를 찾아 뒤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세무서 직원들이 술 조사를 나온 것이다.

 양조장의 술이 많이 팔려야 세금이 늘어나는데 농가에서 밀주를 빚어먹으니 술이 팔릴 리가 없다.

그래서 불시에 술 조사를 나와 모든 집들을 샅샅이 뒤지는 것이었다.

 

그들이 울타리를 넘어 서면 어머니께서는 가슴 졸이기 일쑤였다.

어머니께서는 옥수수술을 잘 담그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술 익는 냄새는 속이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술 조사가 나왔다는 기별이 있으면 어머니께선 술 단지를 소여물 썰어 넣은 깍지 우리  속에 묻어 놓기도 하고, 부엌 한구석 나무청의 땔감 밑에 묻고 나무를 쌓아 두기도 했다.

그리고 어떨 때는 우리들조차 밖으로 쫓아내고 사립문을 걸어놓고 집을 비우고는 늦게까지 집에 오지 않는 방법을 쓰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밖에서 놀던 우리들도 이웃집에 사람이 어디 갔느냐고 물어오면 절대로 모른다고 답하곤 했다.

그것이 생존 방식이었으므로...


어느 날 술을 거르다 말고 술 조사 다닌다는 기별을 받았다.

어머니께선 소죽 솥을 대충 씻고는 그곳에 거르던 술을 붓고 뚜껑을 닫아 버렸다.

그리고 소죽 끓일 준비를 하는 척 구정물을 솥 옆에 갔다 두고 콩깍지와 여물을 섞어 삼태기에 담아 솥 옆에 두고, 불 지필 준비를 해놓은 것이다. 그들은 냄새가 나긴 해도 그곳을 열어보지는 못하였다.


그들은 어떨 때는 깍지 우리 속까지 뒤지는 대담함도 보였고, 부엌과 광속까지 마치 공항의 마약견이 여행객의 소지품을 냄새 맡듯 구석구석을 킁킁거리며 뒤지는 것은 가관도 아니었다

그러다 걸린 집들은 벌금을 내야 했는데, 그것을 무마시키는 것이 마을 이장님이 아닌가.

산감이며 술 조사 나온 세무서 직원이며 동네를 제집 드나들 듯하는 그들은 모두 이장 댁에 들려 칙사 대접을 받던 시절이다.

그들이 출장 오는 날이면 토종닭이며 그 시절 귀하던 소주, 맥주 등이 그들에게 향응으로 제공되었다.

이장의 그런 대접으로 무마되기도 했기에 우매한 농사꾼은 이장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충직한 주민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추석이 지나고 쌀알이 영글어 가는 계절이면 싸라기와 옥수수로 술밥을 쪄 농주를 빚어먹던 시절, 우리네 부모님들의 숨바꼭질하던 애환도 이제 세월 저편으로 가버렸구나 생각하니 새삼 옛날의 술 조사 다니던 차가운 시선들도 그립기만 하다.

요즘은 행정기관에서 술 빚는 방법을 교육시켜주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 깍지 우리(여물 간) : 여물을 보관하던 장소

  * 여물 : 마소를 먹이기 위하여 썰어놓은 농산부산물, 건초

2) 나무청 : 옛날의 가옥구조는 부엌 내에 땔 나무를 넣어두는 공간이 있었는데 나무 청 또는 나무 간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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