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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독맘 Nov 05. 2020

10년 일기

10년 농사일지를 쓰시는 아버지, 10년 일기 쓰는 나

어렸을 적 동이 트기도 전인 새벽 4시, 농사일을 나가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잠결에 보면서 참 대단한 아버지라 생각했는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 나도 새벽에 자주 깨게 된다.  아버지의  잠 또한 이때부터 깨버린 게 아닐까.. 그래서 그 시각부터 일을 시작하러 가시는 습관이 생기고 세 자녀를 키우신 아버지는 평생의 습관으로 남게 된 것 같다. 사실 이 부분은 여쭤보지 않아서 내 추측일 뿐이다. 

나는 따로 일을 나갈 수 없으니 이 시간, 새벽 4시, 브런치에 글을 남기고 있다


매사에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사시는 모습만을 보여줘 왔던 아버지께서 잠깐이나마 매일 하시는 일이 있었는데 검은색 커버로 되어있는 두꺼운 노트에 무언가를 적으시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날그날  해야 할 농가 일들을 적었던 것이다. 봄이면 매실 수확하기, 감 밭에 비료 하기, 밤 산에 풀베기... 어떤 비료를 써야 할지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누가 와서 함께 일을 할 계획인지를 적으시면서 시작하셨다.


이 일기장이 재미있었던 게  한 페이지에 10년의 기록이 남는 것이다.

1월 1일 페이지에 2001년부터 2010년까지 적을 수 있게 한 페이지가  10칸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다. 위에서부터 2001년, 그 아래 칸에는 2002년, 그 아래는 2003년... 마지막 칸은 2010년  

이렇게 기록하는 영농일지의 장점은 과거의 작년 1월 1일에 무슨 일을 했는지, 재작년 1월 1일의 일을 윗 칸으로 살짝 눈을 돌리면  그날에 무엇을 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참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는 기록법이라 생각했는데 어느덧 나도 이런 기록법을 하고 있었다.

10 Jahresbuch, 독일어로 10년 일기장이다. 


8년 전에는 이런 스타일의 일기장을 찾지 못해서 일반 노트를 구매해서 한쪽을 5칸으로 나눠 5년간의 기록을 했었고, 3년 전에는 운 좋게 서점에서 10년 일기장을 발견해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2011년에 기숙사 앞에서 주웠던 낙엽 그리고 2014년, 2016년 ..  낙엽빗깔 조차도 추억으로 남는다



이러한 기록법을 사용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지인들의 생일을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날짜 옆에 이름을 적어놓기만 하면 10년 동안 빠짐없이 돌아오는 그날을 잊지 않고 볼 수 있기에 바쁜 일상에서도 잊지 않을 수 있다.

나이가 들 수록 가물가물해지는 기억들, 추억들.. 작년에 다녀갔던 가족들이 언제 정확히 왔었는지 기억할 수 조차 없이 기억력이 쇠태 하진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기록법이다.


물론 10년의 기록을 한 페이지마다 조금씩 적어가는 방식이라 자세한 디테일을 적을 수 없다는 한계는 있지만 추억을 떠올리거나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기에는 오히려 이 방법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나라는 사람은 미련하게도 좋은 기억을 남기려고 노력해서인지도 모르지만 지나간 추억은 모두 감사하고 잠시나마 그 순간을 떠올림에 행복해지니까.


어머니께서 고이 보관하고 계시다가 주신.. 내 국민학생 시절 일기장.. 




 한평생 영농을 하시면서 똑같은 일상일 수도 있는 하루하루를 특별한 기록으로 남기신 아버지,

그리고 " 나 "라는  밭을 일구면서 하루하루를 짧게나마 기록으로 남기는 모습이 참 닮았다


지난 일기를 찾아보고 현재의 일을 기록하면서 코로나를 이겨낸 후에 보게 되는 지금의 기록들은 또 어떻게 느껴질지...이 시기를 지나고 뒤돌아보게 될 때 과연 어떤  생각이 들지 궁금하다. 

그 훗날  후회하지 않게 변화하는 시대를 흐름을 잘 파악하며 살아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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