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압도되어 힘을 완전히 잃어버렸던 그 날 이후, 나의 방어 기제는 그로부터 5년 간 “회피”의 방식을 선택했다. 문득문득 다시 나를 찾고 싶다는 열망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다가도 세상에 발을 내딛는 상상만으로도 순식간에 무력해졌다. 어느 날 갑자기 “할 일 없는 동네 아줌마”가 되어 버린 나를 받아들일 수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도 이웃집 엄마와 차 한 잔도 편하게 마시지 못하는 주눅든 여자. 그게 나였다. 쉬다 보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흐른 6개월의 시간, 나아진 게 한 톨도 없다는 사실은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1년쯤 쉬면 나아질까. 웬걸 1년이 지나도 달라진 게 전혀 없다. 지친 마음은 조금도 회복되지 않은 채로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다시 일어서지 못할 거라는 불안함에, 지친 마음은 더욱 더 지쳐 가기만 했다. 돌아갈 길은 그렇게 차단이 된 듯했다.
악명높은 광고대행사에서 영혼을 쥐어짜며 보낸 15년의 세월. 덜컥 연년생 두 아들의 엄마가 되어 시작된 워킹맘의 생활. 답이 보이지 않는 남편과의 불화. 세상이 내게 칼을 겨누던 그때로 절대 다시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겉으로 보기엔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손이 많이 가는 어린 두 아들을 전적으로 보살피는 아내 덕분에 남편은 마음 편하게 일을 할 수 있었고, 아이들도 언제나 자기들을 쫓아다니며 수발을 들어주는 엄마가 있기에 실컷 원하는 것들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회사 일에 쫓기며 전전긍긍하지 않고 가족들과 충분한 시간을 여유롭게 보내는 나를 보며 친정엄마는 내게 참 보기 좋다고 말했다. 그렇게 쉬고 싶어 쉬게 되었고 나를 질책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지만, 나는 왜 더욱 더 공허하고 괴로워지는 걸까.
나의 삶에 내가 없었다.
내가 없어진 (겉으로만) 평온한 일상이 5년 정도 지속 되던 어느 날 갑자기,
출근을 했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할 수 있어? 이력서 하나만 보내줘”
그게 다였다.
세상에 다시 나가기 위한 장애물은 애초에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이,
무력감과 불안함에 몸부림치던 세월이 무의미했다는 듯이,
처음부터 원래 정해져 있기라도 했던 일처럼
당연한 듯 앉아 나의 일을 다시 시작했다.
달라진 게 전혀 없는 듯했다. 잃어버린 것도, 단절된 것도 전혀 없었다.
약간의 떨림만 제외하면,
차갑고 무섭기만 했던 세상에서의 발걸음이…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