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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약 Jul 18. 2024

[서평] 태어나는 말들 - 조소연


글쓰기 모임에서 서평 모임을 가졌다. 글쓰기 모임이다 보니 어떤 글이 잘 쓴 글일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브런치북 대상을 받은 책을 선정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책 내용의 감상뿐만 아니라 글쓰기의 관점에서도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로 하고 첫 장을 넘기게 되었는데, 첫 문장을 읽는 순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의 죽음'을 이런 문장으로 시작할 수도 있구나.


나는 아주 폭력적인 방식으로 어머니의 세계로부터 추방되었다.


어머니의 자살이라는 소재는 매우 충격적이지만 그 사실 외의 다이내믹한 스토리 전개는 이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소재 자체가 너무 무거워서 보는 이 조차 침묵하고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 비극적인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고 해석하고 이해하는 일을 해야만 남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기도 하다.


'자살은 영원한 의혹'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작가는 어머님의 죽음을 뒤늦게 뒤쫓으며 파헤치지만 끝내 진실을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저 어머니의 인생을 다시 되짚고 자신과 연결하고 그녀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면서,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고통과 슬픔, 죄책감... 그 외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모든 감정들을 그녀가 소화해 낼 수 있는 방식으로 적어 내려갔을 뿐이다. 그렇게 "쓰일 수밖에 없었던 이질적인 텍스트들"을 엮어 낸 책, 그래서 제목을 [태어나는 말들]이라고 정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복잡한 서사가 얽혀지지 않아도 한 가지 사건에 대해 지하 깊은 곳까지 파헤쳐 들어가 그 끝을 마주하면, 이러한 울림의 언어들을 만들어 낼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파고들었던 어머니의 삶과 비극적 선택은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의 수치심'과 맞닿아 있었다. 시대가 변해도 여성으로서의 삶이 가질 수밖에 없는 생물학적 태생이 만들어 내는 사회적 편견은 그 폭력성의 형태만 달리하며 변해가는 것은 아닐까.


글이 마무리되는 3부에서 저자는 제주도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다시 살아갈 이유와 희망을 바라보는 그녀의 인생을 너무나도 응원하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의 남은 인생이 죄책감이 낳은 의무감으로 인해 너무 무거워지지 않기를 기도하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흘러가야 했던 것들에 대해서 조금 더 그녀의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기를...


나는 제주란 섬의 검은 바위들에 몸을 웅크리고 될수록 낮게 포복하여 작고 여린 것들에 몸을 기대어 아팠던 마음의 상흔들을 그려본다. 고망난 돌이라 불리는 이 바위들의 무수한 구멍은 우리 마음의 상흔들과 같다. 화산의 폭발하는 열기들이 그들의 몸을 뚫고 나오듯, 파열의 기억을 몸에 지낸 채 살아가는 것. 이 상처의 무늬들이 바위 위나 바위틈에 붙은 따개비 군락이나 거북손, 담치, 군부, 바위살랭이처럼 살아 있는 것들의 은신처가 된다. 나는 이 깊고 그윽한 색을 품은 고독의 생명체들을 오래도록 사랑하겠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장편의 시 같기도 했던 섬세하고도 강렬한 문장력에 압도되는 책이었다. 또한 '여성'의 삶에 대해, '자살 유가족'의 인생에 대해 깊이 있게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철학적 측면도 함께 느껴졌다. 다시 한번 좋은 책을 접하게 해 주고 함께 감상을 나누며 독서의 재미를 더 크게 느끼게 해 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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