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EON Sep 08. 2022

내 마음대로 되지 않던 인생처럼

손끝에 마음을 담는 도예

예전 업무적 인연으로 도예를 경험해본 적이 있다. 크고 단단하던 흙을 내 손으로 조물조물 만져보며 마음대로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어내던, 내 손 안에서 이렇게 저렇게 모양이 바뀌던 흙의 모습에 흥미롭고 몰입했던 순간이 참 즐겁게 남아있었다. 

그런 즐거웠던 기억이 저 한편으로 지나갈 때 즈음 진짜 도예를 만나게 되었다.


도예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남의집은 누하동 골목 안쪽에 위치한 작은 공방이었다.

공방을 살짝 엿볼 수 있는 작은 창이 매력적이던 포근한 공간 '도도공방', 들어가는 순간 따뜻했다.


공방에서 만난 선생님은 도예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가득하신 분이었다. 도예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과 오늘 체험할 도예에 대해 설명을 들으니 내가 만들 작품에 대해서도 기대가 되었다. 특히 일일체험이지만 '물레'를 이용해 도자기를 빚을 수 있다는 부분에서도! (보통 일일체험을 가게 되면 물레를 이용해 도자기를 빚는 경험은 적다고 한다. 시간적, 비용적, 효율적인 면에서 힘들기 때문에)

오늘 체험에 대해 설명을 들은 뒤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그림으로 표현해보았다. 무엇을 만들지? 깊게 생각하지 않고 방문한 탓에, 무엇을 만들지 고민하던 나의 눈에 공방 안의 한 화병이 눈에 들어왔다.

보는 순간 사랑에 빠졌다고나 할까? 밋밋한 듯하지만 우아함을 뿜어내는 매끄러운 화병의 모습에 빠져버렸고 저 화병을 만들어보고 싶다 생각했다. 화병을 따라 도안을 그리며 나만의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할까? 하는 작은 아쉬움이 들었지만, 흙을 만지며 마음이 바뀐다면 그때 바꾸면 되지! 하며 나의 화병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첫 물레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선생님께서는 기본적인 부분만 알려주신 뒤 모든 것을 나에게 맡기셨다. 

생각보다 조금의 힘으로도 빠르게 돌아가는 물레에 당황스럽기도, 부드러운 흙의 촉감에 기분이 좋아지기도, 물기가 사라져 가면서 손에 남는 흙의 궤적들이 뻑뻑하게 남는 느낌에 이질감이 느껴지다가도 흙의 모양이 내 손의 힘으로 이리저리 바뀌는 것이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일단 무언가를 만들겠다는 생각보다 흙과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힘을 줘 호리병처럼 길게 올려보기도, 안쪽과 바깥쪽에 힘을 균형 있게 주어 접시처럼 납작하게 만들어보기도, 물결모양처럼 이리저리 힘을 주었다 빼보기도 하면서 흙을 가지고 놀았다.

조금 흙과 친해졌으니 이제 나의 화병을 만들 차례. 밑에 쪽은 둥그렇지만 올라갈수록 얇아지게! 보기에는 쉬워 보였지만 생각보다 마음처럼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왜 이렇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거지? 조금은 짜증이 밀려오려 할 즈음, 굳이 왜 이곳에 와서까지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마음을 내려놓고 일단 해볼 수 있는 만큼 해보자. 이렇게 하면 비슷할까? 이렇게 하면 어떨까? 나의 손이 가는 대로, 나의 마음이 가는 대로 흙을 만지다 보니 어느새 얼추 내가 만들고 싶던 화병과 비슷한 모양이 되었다.

만들어내었다는 뿌듯함, 완성되었다는 행복감, 어떻게 구워질지 설렘까지. 나만의 화병이 완성되었다.

내 손으로 직접 만들지만 내 마음대로 빚어지지 않고, 그러면서도 노력하다 보니 내가 원하는 모습대로 만들어진 나의 화병.


완성하고나니 꼭 흙을 빚는 것이 인생 같지 않은가 싶었다.
내 마음대로 하고자 하지만 내 마음처럼 되지 않고,
그러면서도 어느새 내 마음과 같게 가고 있는 나의 인생처럼.


우연과 변수 속에서 피어나는 하나의 작품. 고난과 고민들 속에서 이뤄내는 나의 인생 같았다.


그래서 더 뜻깊었고 즐거웠나 보다. 흙을 만지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온전히 손에서 느껴지는 촉감과 나만이 있는 기분. 내 손끝으로 무언가 만들어내며 가슴 떨리는 경험. 흙을 행복하게 느끼게 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완성되어 나의 품으로 들어온다면 더 행복하겠지? :)


완성될 나의 화병을 기다리며 남기는 글.




'이 콘텐츠는 남의집 서포터즈 거실 여행자로 지원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랜만에 남의집을 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