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지 않은 날에,
아무 일도 없는 날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날이었다.
평화로웠고, 어찌 보면 불편할 것 하나 없었고, 조금 불편한 것이 있어도 그저 툴툴 털어낼 수 있는 정도의
그 정도의 날이었다.
조금 불편한, 힘들었던 그 일은 어쩔 수 없는 나의 일이었고
평소였다면 '어쩔 수 없지!' 하며 웃으며 넘길 수 있는 날이었는데.
오늘은 그렇지 못했다.
나도 모르게 그 순간 마음의 소리가 튀어나왔다.
힘드네
순간 울컥.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아마 그때 알아차린 것 같았다.
내가 힘들다는 것을.
웃으며 툴툴 털어낼 수도 있던 일에 이렇게 무너져 내리다니.
민망함에 눈물을 멈추려 노력했지만 그럴수록 눈물은 눈치 없이 더 삐져나왔다.
그 눈물에 당황한 주위 사람들의 위로는 나의 눈물을 더욱더 샘솟게 만들었다.
그럴수록 나는 눈물을 참으려 했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바보, 바보. 왜 여기서 울음이 터져서.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당황하겠어. 누가 보면 혼자 힘든 일은 다 하는 줄 알겠네. 힘들면 얼마나 힘들다고 일하다 말고 눈물을 흘리냔 말이야. 그것도 밖에서는 절대 울지 않던 내가. 아니, 가족 앞에서도 울지 않던 내가.
그렇게 나를 자책하며 눈물을 멈추려 했지만, 눈물은 쉽사리 멈추지 않았다.
나는 눈물이 터지듯 힘든 이 순간에도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었다.
그 생각에 미치자 나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래, 나 요새 좀 힘들었어.
평화로운데 그래서인지 즐겁지 않았고, 무작정 앞을 향해 걸어가고 있지만 내가 잘 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고, 그저 이렇게 삶이 끝난다고 해도 아쉽지 않을 것 같은 평온함이 아니 이 지루함이 나를 갉아먹고 있었어.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이유 없이 힘들고 지치고 슬펐어.
근데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어. 힘들다고 하면 뭐가 힘드냐고 할 것 같아서.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래서 괜찮은 척했어.
근데 괜찮지 않았어. 아니, 힘들었어.
인정하고 나니 눈물이 멈췄다.
누구에게도 힘들다 이야기하지 못하는 내가, 꾹꾹 참기만 하다가 터져버린 내가, 터짐조차도 자책하던 내가
스스로를 인정하고 다독이고 위로했던 날.
다음에는 이렇게 힘들어지기 전에 힘듦을 표현하고 조금은 털어내기를 다짐하며 또다시 이런 날이 올 것이란 것을 알던 날이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힘듦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이 네 잘못이 아니라고. 그러니 또 이렇게 토해내고 다시 씩씩해지자고.
굳이 억지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잘하고 있다고. 잘 해내고 있다고. 잘 이겨내고 있다고. 사랑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