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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량 Nov 30. 2022

2022 올해의 취급주의 앨범 5선

INSIDE :: 케이팝 하는 당신에게, 요즘 음반 유통 이야기

또 한 해가 간다. 2022년은 2년 넘게 지속된 팬데믹 체제의 경계가 허물어진 역사적인 해로, 음악 산업에서는 대면 공연의 함성 허용을 비롯해 월드투어가 재개된 것으로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공연 사업의 축소에 따른 소비 심리 해소 대안으로 대폭 성장한 음반 산업은 그것이 버블이 아님을 증명하듯 더욱 높은 매출액을 기록하고 있다. 소비자의 기대에 부응하고 시대의 요구를 수용하기 위한 다양한 형태와 새로운 특성의 앨범이 출시되어 국내외 각지의 팬들을 찾아갔다. 핵심은 이거다, '찾아갔다'.


각종 판매점의 독점 특전을 받고자 예약구매를 한 팬들에게 앨범이 가닿기 위해서는 배송이라는 최종 과정이 필요하다. 같은 타이틀의 앨범이라도 버전별로 사이즈와 소재를 달리해 아티스트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차별점을 강조하고자 하는 노력이 음반 유통의 실무에서는 종종 난감한 상황을 유발한다. 올해, 팬들을 찾아가는 일이 유난히 힘들었던 앨범 다섯 가지를 꼽았다. 이 글을 유통사 관계자, 앨범 디자이너, MD 디자이너가 본다면 꼭 실무에 참고해주시길 소망한다.




1. 실물 앨범의 표준, 쥬얼 케이스 앨범


2000년대 초반까지도 '앨범' 하면 쥬얼 케이스(투명 플라스틱 케이스 형태의 앨범)가 대표적인 형태로 취급되었다. 음반 구매 경험이 그 당시에 멈춘 사람들에게 요즘의 기본 형태인 포토북, 박스형 앨범이 '규격 외'로 다가오는 이유다. 쥬얼 케이스 또는 디지팩(종이를 접어 만든 케이스 형태의 앨범) 일색이던 앨범은 2000년대 중후반부터 포토북 등의 형태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며 사이즈, 구성 등을 다르게 제작해 개성을 자랑했다.


이제 더는 케이팝 팬의 앨범장에서 통일된 음반 규격이 주는 안정감을 얻을 수 없다는 우스갯소리를 위로하듯, 2020년 12월 엑소 카이(KAI)의 미니 1집 'KAI (开)'이 포토북 버전, 플립북 버전을 비롯해 쥬얼 케이스 버전까지 총 3가지로 발매된 것을 기점으로 쥬얼 케이스의 귀환이 시작됐다. 재킷 사진 콘셉트로 앨범 버전을 이름 붙이는 것이 아닌, 음반 형태에 따른 버전 구분은 다른 기획사의 음반 발매 전략으로 자연스레 옮겨갔고 2022년부터는 음반 출시의 기본 갖춤이 되었다.


쥬얼 케이스 앨범의 단점은 단연 내구성이다. 얇은 플라스틱 케이스인 쥬얼 케이스는 배송 과정에서 쉽게 깨지고 부서진다. 잘못 떨어트리는 순간 티 나는 하자가 발생하고 만다. 그래서 취급 주의다. 예전 같으면 새 앨범 케이스만을 사서 교체하는 일이 당연했지만 지금은 음반을 듣는 것이 아닌 소장하는 굿즈로 여기기 때문에 하자에 더욱 민감하다. 다행인 점이라면 쥬얼 케이스 버전의 발매가 줄어들고 있다는 건데, 취급의 어려움 탓인지 디지팩이나 특수 케이스 등 비슷한 형태의 취급이 용이한 버전으로 발매되고 있다.


특히 SM엔터테인먼트의 경우 발매 초기부터 슈퍼 쥬얼 케이스를 사용한 쥬얼 케이스 버전을 선보였는데, 일반 쥬얼 케이스보다 상대적으로 내구성이 좋아서 슈퍼 쥬얼 케이스 앨범에 관한 고객 문의는 받은 적이 없다. 그나마도 올해 중순부터는 쥬얼 케이스 버전이 대신 디지팩이나 특수 케이스를 선택하는 추세다. 다른 몇몇 기획사는 일반 쥬얼 케이스로의 발매를 이어가고 있는데 아무래도 적은 비용 대비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 앨범 버전인 만큼 수익 극대화 차원에서의 구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듯하다.


일반 쥬얼 케이스를 사용한 쥬얼 케이스 버전. (왼쪽부터) 프로미스나인 미니 4집 'Midnight Guest' - 기현 싱글 1집 'VOYAGE'
슈퍼 쥬얼 케이스를 사용한 쥬얼 케이스 버전과 디지팩 버전. (왼쪽부터) 카이 미니 1집 '开' - 레드벨벳 미니 'The ReVe Festival 2022 - Birthday'



2. 굿즈 같은 앨범, 박스형 앨범


신보 안내서의 앨범 커버나 디테일에서 박스형 앨범의 목업을 보면 출시도 전부터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 그리고 앨범이 입고되면 전사에 주의를 전한다. "앨범 구조의 파손이 잦은 상품입니다. 배송에 유의해주세요!" 비투비(BTOB)의 정규 3집 'Be Together'와 같은 앨범이 배송 중 파손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박스형 구조다. 책처럼 생겨서 앞장을 왼쪽으로 넘기면 사각 구조물 안에 CD-R을 비롯한 포토북 및 구성품이 담겨 있는 형태. 견고해 보이지만 입고 시점부터 터져있는 앨범을 종종 만날 수 있어 검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박스형 앨범의 구조 안정성은 아래의 앨범 커버를 기준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높다. 양쪽으로 여닫는 형태의 구조는 좌우 날개가 네 귀퉁이를 디귿과 같이 감싸고 있어 그런지 확연하게 파손이 적다. 파손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으나 눌림과 같은 훼손은 박스형 특성상 다소 발생하는 편이다. 가장 강력한 박스형은 뚜껑이 있는 형태인데, 소비자 입장에서는 여닫는 방식이 내용물을 확인하는 데 번거로울 수 있지만 수고를 감수하는 만큼 가장 안전하게 상품을 수령/보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왼쪽부터) 비투비 정규 3집 'Be Together' - 에이핑크 스페셜 'HORN' - 스트레이 키즈 미니 'ODDINARY'



3. 가벼워서 무서운, 단상자형 앨범


무겁지도 않고 취급 주의 재질도 아닌데 다루기 무서운 앨범이 있다. 간단한 화장품 패키지와 같은, 단상자 형태의 아웃 케이스 앨범이다. 기획의 장점이라면 박스형보다 제작이 용이하고 비용이 저렴한 데다 다양한 형태의 구성품을 담을 수 있기 때문에 콘셉트에 맞는 디자인을 비교적 자유롭게 풀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동시에 이 점은 취급의 치명적인 단점이 되기도 한다. 구성품의 형태가 다양할수록 상자 내부에 예측 불가한 여백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조금 힘주어 손으로 드는 것만으로도 외관이 일그러지며 훼손된다. 이런 이유로, 많은 고객의 손을 오가는 매장 진열용 단상자형 앨범은 대체로 외관이 구겨져 있다.


(왼쪽부터) 문별 미니 3집 6equence - 세븐틴 정규 4집 Face the Sun - 뉴진스 미니 1집 New Jeans



4. 지금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긴, 플랫폼 앨범


2022년 음반 유통의 화두 중 하나는 플랫폼 앨범이다. 환경 문제와 함께 불거진 케이팝 음반 제작 및 소비 행태에 관한 고발은 케이팝 음반과 관련된 모두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특히 내부자라면 지금의 음반이 가장 중요한 구성품 '포토카드'를 팔고 취하기 위한 공급자와 소비자의 치열한 갈등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플랫폼 앨범의 등장은 얼떨떨함과 반가움 그 사이에서 미지근하게 이뤄졌다. '그래도 음반인데 이래도 되나' 싶은 찝찝한 마음과 '포토카드만 잘 들어있으면 되지' 하는 열린 사고가 조심스럽게 충돌했다.


일반적으로 종이 한 겹과 OPP 봉투가 외관의 전부인 플랫폼 앨범은 누락이나 분실의 우려가 높다. 많은 수량의 경우 판매자나 소비자나 두세 번은 세야 하는 이유다. 내용물은 보통 두세 장의 포토카드가 전부다. 한두 장은 아티스트의 초상이 담긴 포토카드고, 한 장은 큐알코드가 담긴 포토카드다. 플랫폼 앨범별로 연계된 애플리케이션에서 큐알코드를 스캔하면 음원/재킷 사진 등의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작고 가벼운 특성으로 유통 초창기 오프라인에서는 도난을 우려해 카운터에서 직원에게 문의를 통해서만 구매할 수 있기도 했다.


(왼쪽부터)  온앤오프 스페셜 Storage of ONF - 제이홉 미니 Jack In The Box - 뉴진스 미니 1집 New Jeans



5. 아름다운 건 클수록 좋으니까, 빅사이즈 앨범


다양한 크기와 소재, 구성을 이용해서 아티스트의 고유함, 음악의 메시지를 음반에 담아내려는 노력은 때때로 크기를 통해 규모 있게 표현된다.


태연의 정규 3집의 ENVY ver.(한정반)은 가로 23cm, 세로 30cm의 하드커버 포토북으로 제작됐다. 88쪽의 포토북은 내지까지 고급으로 무장해 묵직한 인상을 준다. 앨범 발매에 맞춰 성수동 소재의 복합문화공간에서 열린 관련 전시를 떠올리면 이 버전의 앨범은 전시 도록으로도 읽힌다. 앨범 실물을 확인하고 크기에 한 번, 무게에 두 번, 그리고 퀄리티에 세 번 놀랐다. 앞에 두 번의 놀람은 유통 실무자로서의 우려를 동반했지만, 마지막의 놀람은 팬의 입장에 이입한 감탄이었다.


비아이의 미니 앨범 중 REAR PACK ver.은 '패킹봉투'로 지칭된 외관이 가로세로 40cm에 달한다. 다행인 점이라면 박스나 책자가 아닌 '봉투'라는 이름에 맞게 얇고 가볍다는 점. 비아이 역시 앨범 발매 이후에 오프라인 팝업 스토어가 예정되어 있는데 봉투라는 형태가 마치 그곳에서 쇼핑을 하고 나온 것과 같은 연상을 자아낸다. 아름다움과 의미를 모두 취한 빅사이즈 앨범들은 비록 유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내가 팬이라면' 생각할 때는 부러운 마음이 든다. 물론, 팬들 역시 보관이 고민되겠지만.


(왼쪽부터) 태연 정규 3집 INVU - 비아이 미니 Love or Loved Par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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