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결국 여성가족부 폐지를 밀어붙일 건가 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29일 오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출석해, 이번 국회 회기 내에 여가부 폐지가 담긴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제출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힌 것이다.
여가부 폐지는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사항이지만 그동안 구체적인 폐지 로드맵이 공개된 적은 없다. 여가부 측은 정부조직법 개정 담당 부처인 행안부와의 협의가 필요하고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 중이라는 이유로 구체적인 시점을 밝히지 않아 왔다. 하지만 이번 행안부 장관의 발언으로, 그간 물밑에서 폐지 로드맵을 마련해 왔음이 드러난 셈이다.
여가부 폐지 주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논리적인 근거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단 일곱 글자를 SNS에 올리며 이를 공약으로 제시했고, 그 근거로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구조적 성차별은 뿌리 깊고 그 증거는 차고 넘친다. 세계경제포럼(WEF)의 2021년 세계성별격차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성격차 지수는 156개국 중 102위다. 또, 성별임금격차는 OECD국가 중 가장 크다(31.5%, 2020). 중앙부처 여성 고위공무원 비율은 지난해에서야 10%에 도달했고, 기업(상장법인) 여성임원 비율은 5.2%(2021년 1분기 기준)에 불과하다. 서울에 거주하는 15세 이상 여성의 하루 가사노동시간(2019년)은 2시간26분으로, 남성(41분)보다 1시간45분이나 많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여가부가 이제 수명을 다했다”고 말한 바 있다.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인식으로 한 말이겠지만, 설사 그렇다손 치더라도 여가부는 현재 여성·성평등정책만을 담당하는 부서가 아니다. 오히려 가족·청소년 정책의 비중이 더 크다. 여가부의 2022년 예산 1조4650억원 중 가족 분야는 9063억원(61.9%), 청소년 분야는 2716억원(18.5%),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 등을 지원하는 권익 분야는 1352억원(9.2%)인 반면 여성·성평등 분야는 1055억원(7.2%)에 그쳤다. 그리고, 여가부 예산은 정부 전체 예산의 0.24%에 불과하다. 정부 18부 가운데 가장 적다. ‘복지 확대’라는 시대적 요구에 비춰봤을 때 가족정책, 청소년 정책을 전담하는 여가부는 오히려 그 기능이 강화돼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여가부의 기능을 다른 부처에 배분해 잘 수행하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독립부처가 아닌 경우 정책 추진은 매우 어려워진다. “부처 간 일을 하다 보면 국장급끼리 만나서 조율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된다. 결국 장관이 장관한테 가서 부탁하고 국무회의에 가서 대통령 앞에서 의견을 개진해야 변화가 이뤄진다.” 정현백 전 여가부 장관의 말이다. 그리고, 여가부가 독립부처로 있기에 국회에도 전담 상임위원회인 여성가족위원회가 있다. 여가부 폐지는 국회의 성평등 논의의 장도 사라진다는 의미가 된다.
이제 아무런 근거도 없고 오로지 ‘혐오’를 확산할 목적만을 지닌 ‘여가부 폐지’를 멈출 때도 됐다. 국민의 합당한 요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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