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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음 May 15. 2021

청첩장의 무게

-무겁습니다.

 오랜만에 청첩장을 받았다. 청첩장 주인과의 관계는 같은 직장 정규직과 비정규직인 사이로 10년간 이야기 한 시간을 다 합쳐도 1시간도 안 되는 관계이다. 코로나로 인해 인원이 제한되는 현시점의 이 청첩장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스럽다.     




 처음 청첩장을 받았을 때 매우 기뻐했었던 기억이 있다. 왠지 이런 걸 받는 것이 어른이 된 것 같고 누군가의 인생이 바뀌는 중대한 사건에 내가 함께하는 것 같아 뿌듯했다. 그러다 세월이 지나 한 장이 두장이 되고 두장이 세장이 되면서 A의 결혼식과 B의 결혼식의 차이점과 장단점을 분석할 수 있을 정도로 결혼식권위자가 되자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스몰웨딩서부터 호텔 웨딩까지 각종 결혼식장의 형태를 익혔으며, 축가 연주는 기본이고 스튜디오 촬영 도우미부터 부조 도우미, 야외 결혼식 꽃장식까지 도와달라는 일은 다 도와주고 보니 그들은 어느새 내 옆에 없었다.     


 언니들의 결혼식을 가다가 친구의 결혼식을 가다가 동생들의 결혼식가는 비중이 많아지고 그러다 점점 결혼식 자체가 줄어드는 시기였다. 한기수 아래 후배가 갑자기 연락이 와서 결혼식에 와달라고 했다. 10 만의 연락이었고 이때부터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이었던  같다.



'내가 생각하는 친함의 기준과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친함의 기준이 다른가?'      



 이상하게 친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청첩장을 안 준다. 부조라도 해야겠다 싶어 카카오 페이로 돈을 보냈더니 돈을 끝까지 안 받아서 되돌아온 적도 있다. 상대방이 돈을 안 받으면 나한테 도로 돌아온다는 걸 부조를 거절당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뭐 이렇게까지 안 받나 싶었지만 나름 이유가 있다.      

    


“에이.. 바쁜데 뭘...”   

   

“그냥 가족끼리 작게 할 거야.”   

  

“집들이할 때 선물이나 사 가지고 와.”    

      


이쯤 되면 나는 또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뭐 서운하게 한 게 있나?’     

 

‘부조는 친분이 없는 사람들에게 주는 건가?’   


       

 사실 옆에서 지켜보면 결혼식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그렇게들 한다더라...’ , ‘저렇게 한다더라...’ 한다더라 통신을 통해 결혼식을 준비하기 때문에 무엇이 최선인지 모른다.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자기 생각대로 결혼식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지만 준비기간 동안 계속 흔들리다 막판에 운명에 맡기듯 감정적인 선택을 해버리는 사람도 많다. 우리는 어떤 결정 앞에서 언제나 자유로운 의지를 가지지 못한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에게 청첩장으로 줬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청첩장 봉투에 꽃도 붙이고 손글씨로 이름까지 쓴 걸 보니 마음이 또 흔들흔들한다. 직장에서 계속 볼 사이니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나온 일들을 돌이켜보면 내 마음과 상대방의 마음이 언제나 일치하는 것도 아니었다. 배려한다고 준비한 건데 받는 사람은 부담스러워했으며, 같은 그룹에 있는 사이라고 생각하여 간 자리에서 섬처럼 혼자 앉아 있다 온 적도 있었다.     

 

 어떤 이는 청첩장을 주고받으며 인간관계를 정리하면 된다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조언을 주기도 했지만 그렇게 정리된 인간관계가 이상적인 인간관계인지도 의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내 마음과 맞지 않는 사람을 다 정리하면 결국 혼자만 남을 것이다. 이 세상에 내 마음과 똑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자신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고작 몇 그램도 안 하는 청첩장을 받고서는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가 되는 것이 우습지만.


청첩장의 무게는 확실히 무. 겁.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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