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발라더 망원역 2번 출구입니다
며칠 전부터 커피를 마시면 심장 뛰는 느낌이 크게 느껴진다. 심장에서 시작되는 지진처럼. 요새 운동을 안 해서 그런지, 안 쓰던 글을 다시 시작해서 그런지, 그것도 아니면 계절 탓인지 모르겠다. 여튼 심장이 뭔가 신호를 주고 있다.
어제는 티티를 만나서 삼십 분을 기다려 웨이팅이 긴 라멘을 먹었다. 시끌벅적한 라멘집에서 내가 자주 딴 세상에 갔나 보다. 티티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물었다.
‘야, 가을 타?’
나는 비밀스러운 꿈을 꾸다가 깬 것처럼 놀랐지만 마피아 게임에서 능구렁이처럼 빠져나가는 태도로 태연하게 이것저것 늘어놓았다.
‘내가 오늘 아침에 전화로 재무상담을 받았거든? 어젯밤에는 메가박스에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 원스를 봤어, 그 영화에서 영수증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이 보인다고 말하더라고? 근데 재무설계사도 과소비를 줄이려면 영수증을 잘 들여다보라고 하더라고? 지금까지는 혼자서 끄적거리는 시간으로 충분했는데, 영수증이라는 자본주의스러운 메타인지 방법론을 찾은 거지. 그래서 그냥 그 생각을 하고 있었어.’
티티는 오호, 그치그치. 하고 맞장구를 영수증 점검 좋네. 소비는 감정이니까.라고 말했다.
티티한테 말한 것과 달리 사실은 영수증을 분석할 각오는 아직도 없다. 그건 여전히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오싹하다.
가을 타냐는 질문을 받으면 기분이 묘하다. 그게 부끄러운 일은 아닌데, 내가 실력파 감성 발라더의 1집 앨범처럼 컨셉이 넘치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니. 나중에 그런 가수는 복면가왕에 추억의 가수로 소개되던데. 망원역 2번 출구 같은 가명으로 말이지.
몇 달째 아무리 이런저런 딴짓을 하다가도 생각나는 애가 있다. 그건 달콤하고 몽글몽글한 현상은 아니고, 빈 속에 물 한 컵을 마시는 정도의 습관이랄까. 어쩌다 까먹어도 어깨 한 번 으쓱하고는 털어버리는 정도의 루틴이다.
엠비티아이로 치면 나는 F가 아니라 T라서, 생각나는 이가 있으면 내가 너를 보고 싶어 하는 걸 수도 있겠다고 인정하고 넘긴다. 근데 가끔은 팍 하고 튀어나오는 궁금증 때문에 별로 안 좋아하는 애한테 아주 뜬금없는 연락을 해버린다.
예를 들어, 걔가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책상을 찍어서 올렸다. 근데 사진 속에 열린 창문과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보인다.
1. 지금은 밤 10시(왜 커피?)
2. 방충망이 없음(나방 좋아하나?)
3. 얘는 암 유전 확률이 있음(이건 내가 왜 알지?)
등등 이런저런 정보가 툭툭 떠오른다. 차가운 음식을 조심해야 하는 애가 영하 3도에 창문을 열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고 있다. 그러다가 결론에 도달한다. 왜 이러지? 물어보고 싶다.
애써 스토리를 넘기고 다른 친구들이 맛집에서 술을 마시는 사진을 쭉쭉 넘기다가도 고작 삼분 뒤에 다시 걔의 인스타를 검색하고(아이디를 몰라서 여러 번 헤매고) 스토리에 들어가서 디엠을 날려버리게 된다.
‘저기요, 지금 11월인데요’
아 맞다, 얘는 엠비티아이로 치면 F니까 걱정을 담아야지. 하나 더 보내자.
‘이렇게 춥게 계시면 감기 걸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