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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Oct 30. 2021

내가 만난 사람

"브랜든"

호주에서 노인복지 프로그램을 수료하던 시기에 그 과정의 일환으로 실습을 나가게 되었다. 그곳은 30명가량의 레지던트들이 생활하는 요양시설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유난히 마음이 쓰이던 레지던트가 있었다.

그는 키 190이 넘는 거구의 뇌성마비 레지던트로 누군가 그에게 하이파이브하자고 손을 들어 올리면 최선을 다해 손을 맞춰 올려주던 사랑스러운 할아버지였다. 나는 그의 방을 지날 때마다 그의 이름을 불렀고 그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시설 레지던트 모두를 동등하게 대해야 하지만 브랜든에게 마음이 더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사실 그는 시설 다른 레지던트들보다 많은 도움이 필요로 했지만 그 누구보다 협조적이었다. 나는 브랜든을 만나기 이전 뇌성마비 환자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을뿐더러 몸이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 어떤 것이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생활이 그에게 녹록지 않음을 알아차리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의 목욕시간. 그는 최선을 다해 울부짖는 듯한 소리를 내어 의사 표현을 하려 한 듯했다. 그러나 귓가에 날카롭게 꽂혀왔던 그 소리를 들은 케어러들은 일상이라는 듯 그가 하려는 이야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알고 싶지도 않은 낯선 이들 앞에서 발가벗겨지는 기분. 그에게는 익숙해지고 싶지 않을 일상이 아닐까. 그렇게 나는 내가 모르던 삶, 모르고 싶었던 삶, 어쩌면 모르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는 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비 오는 어느 날, 복도를 지나가다 창 밖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 멈춰 섰다. 그가 어렵사리 목을 돌려 바라보던 창문 밖의 풍경이라곤 옆 건물의 벽면 콘크리트. 그는 그저 비 내리는 풍경이 보고 싶은 거였겠지만 그 모습에 도리어 내가 의미를 두고 숨이 막혀왔다. 그는 받아 드린 듯했다. 그래야만 했을 것이다. 괜히 그의 방으로 들어가 이미 잘 덮여있던 이불을 다시 여미어 주고 나왔다. 하이파이브는 하지 않았다.


절대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실습 마지막 날. 나는 모든 레지던트들에게 인사를 하고 마지막으로 그의 방으로 갔다. 그리고 그에게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전해 주었다. 그동안 나는 그와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날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 나는 그날을 위한 적절한 인사말을 찾지 못했다. 자의든 타의든 그의 노년은 누군가의 선택으로 인해 이곳으로 정해졌을 것이다. 앞으로 그에게 또는 그 누군가에게 그의 남은 시간에 대한 다른 어떤 결정을 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기는 한 걸까. 그곳은 브랜든의 기억 속 마지막 장소가 될 것이다. 그가 이곳을 나갈 수 있는 이유가 단 한 가지밖에 없다는 사실은 나를 아프게 했다. 그래서 그에게 그 어떤 위로의 말도 작별의 인사도 할 수 없었다. 다만 누군가 다시 그를 찾아와 주길 바랄 뿐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동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두 가지.

존엄성과 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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