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Future and Present
나만의 Zone에 들어설 때가 있다. 이때 온전히 뛴다는 행위에만 집중을 하게 되는데 그 순간 나를 붙잡고 있던 온갖 생각들은 사라지며 그것들은 더 이상 중요치 않은 것이 된다.
달리는 순간, 우리의 몸은 최대의 에너지를 끌어모아 오직 달리는 것에 사용하기 위한 모드에 돌입한다. 시선은 전방에 고정되고 충분한 산소 공급을 위해 숨은 차오르며 체온 유지를 위한 땀 배출작업을 시작한다. 그렇게 어느 순간 몰아의 경지에 이른다. 나만의 존에 들어선 순간, 나 이외의 다른 것들은 점점 멀리 떨어져 나간다. 그 무엇도 중요치 않은 순간, 그저 현재에 존재할 뿐이다.
며칠 전 아침, 책을 보다 불현듯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라는 생각과 함께 허무함과 마주했다. 보통 그런 생각이 들어 무력감이 생길 때면 가능한 한 빨리 따귀를 때려서 돌려보내고는 했지만 그날은 덥석 하고 안아버렸다. 그렇게 나는 집 근처 카페테라스에서 Zone out 상태에 돌입해 버렸다. 그곳에 앉아있으면 항상 비슷한 시간 산책을 나온 주민들과 마주치게 되는데 그날은 존아웃 상태의 나를 발견한 이웃사촌(이지만 아버지뻘이다)이 멀리서부터 "Hey 지현"이라고 인사해온다. 그는 거의 매일 같은 시간 그의 반려견과 산책을 하는 뉴욕 출신의 교수인데 우리는 오다가다 마주치며 안면을 텄고 지금은 간단히 커피 한잔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가 구사하는 영어를 듣고 있자면 내가 알고 있는 영어는 어디에다가 쓰려고 배운 건가라는 생각이 들며 밑바닥 영어실력의 한계를 시험하게 된다. 그날, 사고의 회로가 멈춘 나에게 삶에 관한 조언(이라기보다 이야기)를 자신의 관점에서 가볍게 풀어 던져 주었다. 그의 연륜이 묻어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자니 어쩐 일인지 그가 하는 이야기가 내 모국어인 양 자연스레 들려왔고 다시 컴백한 정신과 함께 미소를 짓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상처도 사람으로부터 회복도 사람으로부터 라고 했던가. 그길로 무력함에 뒤늦은 따귀를 때려 보내고 며칠째 꾸역꾸역 마지못해하던 작업의 속도를 내어 원래의 페이스로 돌려놓았다. 그리고 저녁에는 러닝을 나갔다. 초반 워밍 시간이 오래 걸리는 나는 3K 지점까지는 속력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4K 지점부터 몸이 가벼워지면서 속도도 붙기 시작하는데 그날은 기존 거리보다 2K를 더 달려 7K를 완주했다. 거리도 시간도 페이스도 모두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무력감을 성취감으로 전환했다. 가까이하고 싶지 않던 감정들로 며칠을 소비해버린 나는 감사하게도 이웃을 통해 일과 운동 두 가지 모두 이전보다 더 나아진 결과로 만족감을 얻었다. 살면서 이러한 감정과 만나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겪지 않아도 된다면 나는 겪지 않는 걸 선택하고 싶지만 그 과정이 없이 인격체로서의 성장은 가능할까? 그럴지도 모르겠으나 쉽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는 성장을 위한 과정으로 '그 시련의 감정들을 받아 드릴 것인가? 그렇다면 얼마나 오래 안고 갈 것인가, 바로 돌려보낼 것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돌려보낼 것인가'를 인지하며 수용하고 결정함으로써 한 번씩 나를 찾아오는 불청객들과 공생하려 한다. 그 문제에 대한 선택이 무엇이든 그 후의 결과는 만족스러울 것이라 확신하며.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성취감에 따라오는 추가적 선물인 듯 나를 반기는 아름다운 풍경에 감사할 수밖에 없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