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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옥 Mar 29. 2023

등산이 독서다

『왜 책을 읽는가』함께라 가능한 일들, 그건 사랑이다


"책에 코를 박은 채 그 속에 빠져들어 보라. 개인의 오만함은 진지한 생각 앞에 머리를 낮추게 되며, 고독은 친구를 찾아 헤매게 된다." (104P)


 『왜 책을 읽는가』






산에 가지 못한 일요일 느긋하게 늦잠을 잤다. 8시 30분 개운해진 몸으로 일어나 소파에 앉았다. 주말이면 남편과 함께 떠나던 산을 발목 부상으로 함께 가지 못했다. 남편은 혼자 산으로 떠나며 아쉬움을 남겼다. 산에 가지 못한 속상함 대신 소파에 앉아 책을 펼쳤다. 독서 모임에서 함께 읽기로 한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 적가인 아니 에르노의 작품 『진정한 장소』다. 이미 작가의 작품을 두 편이나 읽었던 터라 그녀의 날것의 언어가 낯설지 않았다.  『진정한 장소』는  『빈 옷장 』 과 『단순한 열정』보다 가독성이 좋은 책이다. 읽는 동안 독서모임에서 『빈 옷장 』에 대해 나눴던 이야기가 되살아나기도 했다.



책 읽는 즐거움에 푹 빠져 고개를 드니 시계가 12시를 가리켰다. 집중된 시간이었다. 책에 마음을 다하고 나니 산을 오른 듯 피곤함이 밀려왔다. 때마침 남편이 가라산 정상 사진을 보내왔다. 햇살이 가득 쏟아진 정상 풍광은 찬탄을 뿜어낼 만큼 아름다웠다. 등산의 맛을 알기에 마음이 요동쳤다. 독서의 절정에 등산을 떠올리다니 '나는 독서와 등산 중 어느 것을 더 좋아하는 걸까?' 물었다. 답을 낼 수가 없다. 확실한 것을 둘 다 마음을 설레게  한다는 점이다.



남편이 보내온 산풍경을 보면서 불현듯 등산이 독서와 같다는 퇴계 이황의 글이 생각났다. "사람들이 말하길 독서가 산 유람과 같다지만 / 이제 보니 산을 유람함이 독서와 같다. / 온 힘을 쏟은 후에 스스로 내려옴이 그러하고 / 얕고 깊은 곳을 모두 살펴야 함이 그러하네. / 가만히 앉아 구름이 일어나는 묘미를 알게 되고 / 근원에 앉아 구름이 일어나는 묘미를 알게 되고 / 근원에 이르러 비로소 원초를 알게 되네. / 그대는 절정에 이르길 힘쓸지니 / 늙어 중도에 그친 나를 심히 부끄러워할 따름이다."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힘을 쏟아야 한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정독하기 위해서는 쏟는 에너지도 만만찮다. 등산의 맛을 알기 위해서는 정상을 올라야 하는데 독서도 끝까지 읽어내야 저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정상을 오르며 만나는 야생화를 만나는 재미는 기대 이상이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다 숨어있는 행간의 의미를 찾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알게 되면 산삼이나 발견한 듯 뿌듯하다. 높은 산을 올라 풍경을 바라보게 되면 세상의 이치를 알게 되기도 한다. 수준 높은 책을 이해할 때의 기분과 높은 산을 정복했을 때 맛보는 짜릿함과 흡사하다. 난도가 높은 산을 오르다 보면 겸손하게 된다. 독서도 그렇다. 수준 높은 책을 읽다 보면 무지를 깨닫게 되어 한없이 겸손해진다.



산을 오르다 보면 인생의 깊이를 알게 되는데 독서도 그렇다. 다양한 책을 읽다 보면 새롭게 알게 된 지식과 지혜에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등산도 그렇다. 각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을 보다 보면 감탄이 절로 터져 나온다. 오를수록 더 많은 산을 만나고 싶은 마음과 읽을수록 더 많은 책을 만나고 싶은 욕구가 생기니 독서와 등산은 다. 인생의 근원을 알기 위해서는 독서도 제대로, 등산도 제대로 만나고 싶다.



남편이 사진 몇 장을 더 보내왔다. 혼자라 심심하다는 짧은 문장이 사진과 함께 딸려왔다. 어찌 등산만 그럴까? 독서도 그렇다. 함께 읽는 재미는 혼자 읽는 재미와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함께 읽는 책에서 더 많은 삶의 지혜를 배운다. 타인의 생각을 공감하고 소통하면서 무심코 지나쳤던 문장의 의미를 찾기도 한다. 등산도 독서도 혼자서 지나쳤던 것들이 함께면 더 선명해진다.



다시 책 속에 빠져들었다. 읽는 재미로 등산의 그리움을 대신한다. 산에 가지 못한 날이지만 독서가 주는 기쁨은 등산만큼이나 다. 지금, 나에게 독서는 등산이다.





함께라 가능한 일들 그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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