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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직장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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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목하라 Nov 16. 2020

내 감정을 잘 못 주문했어요.

지겨우니까 직장이다.

  

  나를 당황시키는 많은 곳 중에 으뜸은 롯데리아나 써브웨이같이 한 가지 종류로 수십 가지의 메뉴를 만들어 파는 음식점이다. ‘어떻게 드릴까요?’ 내 앞에 당도한 메뉴판 앞에서 어버버버 똥 멍청이가 된다. 가장 단순하고 당장 나의 허기를 달래줄 햄버거면 되는데 종류가 수십 가지는 되는 메뉴판 앞에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치킨버거 주세요” 정도면 좋겠는데 식탐에 멋이 든 나의 입맛은 뭔가 색다른 것을 주문하고 싶어 한다.     


문제는 이것이다.

 ‘내가 아는 것은 없는데 뭔가 색다른 것을 원한다는 거다.’     


  다른 고객님들처럼 뭔가 거침없이 자신의 취향을 줄줄 5 문장 정도로 버거를 주문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거다. 이 욕망은 자신이 버거를 그다지 즐겨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도 잊게 만든다. 아주 잠깐이지만 주문을 위해 공부를 해야 할까도 고민한다. 왠지 단순하고 적당한 주문은 같은 지출 대비 효용이 떨어진다는 손해 심리까지 작용한다. 최애 메뉴를 만들기 위해 수고할 만큼 나에겐 애정이 없다는 것도 잊은 채. 메뉴판 앞에만 서면 이상한 승부근성이 내 뒷덜미를 스멀스멀 붙잡는다.


  그리고 내 영어 실력은 왜 이렇게 짧은 걸까? 알고 보면 이것이 가장 큰 이유일 수 있다. 써브웨이는 빵만 해도 6가지 종류이다. 화이트, 위트, 플랫, 파마산, 허니 오트, 하티. (이걸 못 알아들었다면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나와 비슷한 이유로 써브웨이가 부담될 것이다.) 이중에 가장 무난한 플랫으로. 그리고 토핑과 치즈를 고르고 추가하고 싶은 토핑이 있으면 추가 구매한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야채와 소스를 주문해야 한다. 다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이 정도 공부하고 가도 그 앞에만 가면 생판 처음 보는 뒷사람 눈치를 본다. 어버버버하다 주문이 늦어질까 염려한다. 당황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소스만 이상하게 주문해도 영 입맛이 안 난다. ‘이곳은 정말 올 곳이 못되는군’ 이런 생각으로 꾸역꾸역 먹다가 결국 버린다. 주문한 나의 정성이 아까워서 먹다가, 내 입맛이 아닌데 먹어야 할 이유가 없다에 꽂힌다. 버리는 순간의 쾌감은 주문하면서 겪었던 나의 쪼그라듬이 순간 확 펼쳐지는 것처럼 자유롭다.     


 가끔은 직장생활이 나를 복잡한 주문서 앞에 앉혀 놓은 것처럼 불편하다.     


  내가 직장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하는 순간 ‘고민’이 찾아왔다. 고민은 나에게 말했다.

“너, 직장이 즐거워?, 재밌어? 쓰고 싶을 만큼 애정해?”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 대답이 뻔할 것이라는 표정을 한 ‘고민’을 빤히 바라봤다. 직장은 나에게 25년 지기 애증의 관계를 이어가는 부부 같다. 앉은자리만 바뀐 부부의 세계다. ‘지겨우니까 직장이다’라는 누군가의 말이 딱이다. 어쩌다 나는 직장인으로 살아갈까? 다시 생의 시계를 돌린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유명한 가수는 테스 형님을 불러왔으니 나도 애정 하는 옵하 한 분을 모셔와야겠다.


  그 옵하는 이렇게 말했다. ‘삶에는 어떤 의미도 목표도 없다.’ 우리는 비록 ‘찰나의 순간’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것은 동시에 ‘영원한 결정’이기도 하다. 내가 오늘 내린 결정은 한 생을 다시 돌린다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오늘 나의 선택이 어제의 나였고 내일의 나인 것이다. 우리는 영원히 반복되는 삶을 살 것이다. 이런 무서운 말을 한 옵하는 누구인가? 니체다. 그리고 그는 긍정의 힘으로 삶을 끌어안으라고 말했다. 아모르파티, 운명을 사랑하라.    


나는 시시때때로 내 감정을 잘못 주문한다.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 내 삶이 다시 나에게 와도 나는 이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내 운명을 사랑해 보련다. 뭐가 이렇게 거창하냐고 말할지 모르겠다. 이것도 내 삶이니, 내 맘이다. 이렇게 나를 부추긴 옵하들이 또 있으니, 이들에게도 감사를 표한다.     


카프카 : 그 이름을 정확하게 불러야 그 삶이 우리에게 온다. 그것이 삶이라는 마술의 본질이다.     


이만교 : 언제나 얼마든지 더 매력적인 어휘 선택과 표현 방법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글쓰기 공부는 가장 강력한 자기 성찰이자, 구체적으로 자기 해방을 추구하는 운동일 수밖에 없다.     


이현웅 : 지겨우니까 직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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