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일이 며칠 안 남았다. 이러고 있으면 안 된다는 일념으로 아침 조깅길에 나섰다. 무릎 관절에 무리가 생길까 봐 조깅에서 걷기로 바꾼 지 수 년. 조깅을 하다가도 숨이 턱턱 막히면 심장이 멎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일고부터는 내 심장도 아껴야 했다. 이래저래 나는 나의 몸을 아껴가면서 써야 할 나이라고 생각하면서부터 무리한 달리기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엔 조금 뛰어야 했다. 왜냐면, 건강검진일이 예상보다 확 당겨져서 2달 후가 아니라 일주일 후가 되었기 때문이다. 조깅은커녕 걷기도 게을러진 요즘. 명절 보내느라 살은 또 여기저기 붙었다. 무엇보다 수치 유지가 어려운 혈관이 제일 염려됐다.
앗... 바로 이 맛이야. 가을이 성큼 다가온 은파호수공원을 가볍게 뛰는 일은 염려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우선 몸에서 힘을 빼고 다리는 가볍게 날아가듯 사뿐사뿐 속도를 붙이는 거지. 아직 살아있네를 연발하게 하는 (물론, 속으로) 기분은 상쾌하다. 처음엔 집중해야 할 생각들을 모은다. 최근엔 쓰고 있는 글의 ‘격리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생각했고, 누군가와 끊어질 듯한 인연을 다시 잇게된 순간에 내가 선택한 것은 어떤 힘을 갖게 하는가에 대해 생각했고, 어제 온 택배는 발신처의 정보가 하나도 없는데 과연 누가 보낸 것일까?를 생각했다. 이건 순전히 예감인데 올해 건설회사 사장이 된 춘희 언니의 선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가 보내준 것들은 무엇이든 고급지고 품격이 있는데 열어보는 순간 그런 게 느껴졌다. 텀블러 3개는 우리 둥이들과 나를 위한 섬세한 배려가 있어 보였다. 무조건 그렇다. 언니를 생각하며 오는 길에는 여귀를 한 손 가득 꺾었다. 언니가 가을에 붉게 영근 여귀를 화병에 꽂아둔 사진을 보내준 적이 있었는데 마치 한 사람의 상징처럼 나는 가을 여귀의 그 붉음을 그리움처럼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월요일이 되면 텀블러를 보낸 쇼핑몰에 전화를 해봐야지. 우선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이런 잡다한 생각들이 모조리 사라지는 순간이 오고야 마는 것은 내 숨이 차오를 때이다. 숨이 차오르면 오직 나의 숨에만 집중하게 된다. 들숨과 날숨을 조절해보고 두 번 쉬고 두 번 뱉는 호흡법을 해본다. 숨이 조절되는 순간과 오직 나의 숨만 생각하게 되는 순간은 나의 몸이 오직 내 것인 양 아주 기분 좋은 순간이다. 그러면서 한계를 조금씩 늘려가 본다. 그래, 22번 보안등이 있는 곳까지. 그래, 빨간 음악 벤치가 있는 곳까지, 그래, 저기 물속에 있는 백로가 나를 보고 있는 곳까지. 이렇게 조금씩 늘려본다. 모자 속으로 스며드는 땀의 느낌도 좋다. 목덜미를 타고 내리는 땀의 흐름도 좋다. 그런데 조금 더 기분 좋은 일이 있었다.
이른 아침의 은파호수공원에는 짧은 팬츠와 나시 운동복의 마라토너들이 간간이 조를 이루어 뛰는데 앞에 뛰어 오던 한 분이 나를 보고 파이팅을 외친다. 그분들은 마치 속도와 몸과 시간을 재고 뛰는 것같이 일정한 페이스를 유지한다. 흩어짐이 없다. 한계가 없는 듯 미동도 없다. 산이 좋아 산에 자주 다니던 시절에는 내려오는 사람이나 올라가는 사람이나 서로를 격려해 주는 말들을 많이 했다. 지금은 많이 하지 않는다. 서로의 어깨가 닿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서로를 스칠 뿐이다. 그러다 아주 먼 추억처럼 그런 인사를 받으니 아주 급속도로 나는 서로가 파이팅을 외쳐주던 한때로 귀환된다. 나는 조금 타이밍을 놓쳤지만 화답했다. '파이팅' 그리고 나 자신에겐 조금 더 인팩트 있게 말해줬다. 파이팅! 오늘도 파이팅하자. 그리고 누군가의 지침에 늘 파이팅을 외쳐주는 글쟁이 친구 생각이 났다. 네가 그랬지영~~~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