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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목하라 Feb 01. 2021

영혼이 나와 분리되는 느낌

어떤 경험

오랜만에 만난 H와 동네 호수공원 산책을 마치고 편의점에 앉았다.

H는 따듯한 베지밀을 마시고 나는 시원한 밀키스를 마셨다. 찬바람 알레르기와 갱년기와 이별의 아픔을 겪고 있는 H는 차가운 탄산음료를 벌컥벌컥 마시는 나에게 조심스레 말한다.    


“몸이 신호를 보내기 전에 몸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전에는 찬 음료를 벌컥벌컥 마셨는데 왜 그랬나 후회가 돼.”     


나는 조금 공감이 됐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H는 손을 잘못해 베지밀 병을 떨어뜨릴 뻔했는데 순간적으로 병을 잡아 위기를 모면했다.    


”어..... 살아있네. 이 순발력“

”방금 내 안에서 뭔가가 쑥 빠져나가는 거 봤지? 몸에서 뭔가가 빠져나가는 이 느낌. 이거 다시 끌어서 내 안에 넣어야 해. “ 하며 H는 주변에 있는 기를 끌어모으는 흉내를 냈다. 


나는 격하게 공감이 됐다.     


 그런 걸 사람들은 ‘기’라고 표현했나? 내 안에서 기가 쑥 하고 빠져나가는 느낌. 내 영혼이 나와 분리되는 느낌.     


육체와 영혼을 이원화시켰던 플라톤의 이데아론. <국가>에서 이렇게 말했다.     


 “혼은 벌 받을 일에 대해 벌을 받되, 보존되도록, 감옥과도 같은 이 덮개(몸)를 갖게 된 것 같네. 그러므로 이름 그대로 몸은 혼의 빚을 갚기까지 혼의 보호소이며, 그래서 한 글자도 바꿀 필요가 없었던 것이네.”     

플라톤은 이를 나누면서 좀 가혹한 결론을 내리는데 몸은 육체적 감각이며 이를 벗어나지 않고는 절대로 순수한 진리인 이데아에 이를 수 없다고 말한다. 몸은 영혼의 지배를 받으며 몸은 이에 복종하는 것이라 말한다. 이후에 많은 서양철학자들이 플라톤을 따르거나 혹은 거부하며 철학은 발전하게 된다.     

H는 자신은 철저한 유물론자인데 요즘엔 ‘잘 모르겠다’라는 말을 했다. 


나 또한 그렇다. ‘감각의 대상인 물질적 사물’에 애정을 보였고 영혼에 복종하여 육체를 소외시키고 싶지 않았던 내가 아니던가? 아니, 영혼을 높은 차원을 가진 대상으로 인식하지도 않았다. 이제 와서 플라톤의 이데아론으로 내 영혼을 우월한 정신세계로 분리시켜 놓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신비롭게도 ‘몸’과 ‘혼’에 대한 불일치를 경험한다. 정신적 감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 실체로 느낀다.     


    우리의 대화는 늘 삼천포로 빠지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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