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네 남매가 모였다. 남동생 생일에 엄마를 모시고 공주 마곡사 경내를 한 바퀴 돌아 뒷길로 드라이브를 하기로 한 것이다. 사곡면과 정안면을 잇는 지방도로, 갈 때마다 느끼는 아름다운 길, 아직 지지 않은 꽃들이 터널을 이루며 우리를 반겨준다.
엄마는 유난히 꽃을 좋아하셨는데, 엄마의 뜰에는 수선화가 노랗게 피었다가 졌고, 달래와 두릅이 새순을 내밀었다 쇠었는데, 붉디붉은 모란도 뚝뚝 떨어졌는데, 엄마는 2년 째 집을 비웠다. 막내 동생이 엄마가 좋아하시던 노래 가락을 뽑는다. 하하하 호호호 깔깔깔, 엄마를 향한 사랑의 언어들이, 이제는 그리움이 되어버린 가난했던 시절의 이야기들이, 창밖 꽃잎 날리듯 차안에서 난무한다.
아버지 떠나신 지 15년, 그동안 혼자 집을 지키시며 외로우셨던 걸까. 텃밭을 꽃밭처럼 가꾸며 다양한 야채들을 심어 집에 오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재미로 사시던 엄마가 어느 날부터 내게 전화하기 시작하셨다.
“얘야, 언제 올래? 집 앞에 수선화가 예쁘게 피었어, 목단이 탐스럽게 피었는데, 상추가 맛있게 자랐는데, 열무가 연해서 부추 베어다가 김치 담가놨는데, 하비아저씨네 복숭아가 맛있게 익었는데, 알밤이 뚝뚝 떨어지는데…….”
엄마의 그 전화들이 ‘딸아, 나 외롭단다.’라는 시그널이라는 걸 나는 모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엄마한테 가지 못할 핑계들이 앞을 다투고 있어 오가는 기름 값이면 그것들을 충분히 사먹고도 남는다고, 못 간다고 했다. 그러면 엄마는 “그려, 너는 애들 가르치느라 바쁘닝께, 아무리 바빠도 밥은 꼭꼭 챙겨먹고 다녀라. 몸조심 하고…….” 하시고는 전화를 끊었다.
늦게 공부하여 애들 가르치는 것이 무슨 교육부장관이나 된 것처럼 자랑스러워하시던 엄마, 그 엄마가 어느 날 저녁을 잘 드시고 잠자리에 드셨는데, 함께 저녁을 해먹은 간병인이 다음 날 오후 다시 찾아올 때까지 깨어나지 않으셨다. 그녀가 급하게 응급실로 옮겼으나 엄마의 잠은 일주일 동안 계속됐고, 이후 깨어난 엄마는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오른 편마비에 평소 쓰시던 언어도 잃고 행동도 잃어버리셨으니까.
엄마가 멍하니 창밖을 보신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걸까. 90년 가까운 엄마의 삶이 내 머리에 스쳐간다. 한국전쟁이 남긴 상처들로 신산스러운 삶을 살아온 여인, 무매독자로 자란 철없는 남편을 만나 종부가 되어 억척스럽게 살아야 했던 여인, 배워야한다고 가난 속에서도 여러 자식들에게 교복을 입히는 대가로 논농사에 밭농사, 봄가을에 누에까지 치고 농한기인 겨울에는 볏짚을 추려 콧구멍이 시커멓도록 어린 딸을 데리고 가마니를 짜야 했던 여인, 살만해지니까 자식들은 제각각 둥지를 만들어 나가고, 남편은 먼저 떠나고, 홀로 외로움과 싸워야 했던 여인….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인생을 마음대로 핸들 할 수 있다고 믿고 살아간다. 나 또한 그리 살아왔는데 이제 돌아보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성서에 의하면 에덴동산에 살던 인간이 하나님처럼 스스로 선과 악을 분별하며 살고 싶어서 선악과를 따먹었고 에덴의 동쪽으로 추방되었다. 영원에서 시간 속으로 피투된 것이다. 모태에서 나온 인간은 성장하면서 하나님처럼 선과 악을 스스로 규정하고,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소리치며 주체적으로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이리 깨지고 저리 깨지면서 종국에는 인생이 내 마음대로 살아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영원으로 돌아간다. 그러니까 살아가는 동안 주어진 모든 게 감사해야 하는 거였구나, 깨닫는 게 이 생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재 엄마의 모습은 그동안 무엇인가를 하며 살아온 시간들이 모두 기적에 가까운 감사의 조건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걸을 수 있었던 것도,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었던 것도, 그것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것도, 모든 것들이 기적과 같은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수많은 역경을 건너온 지난 나의 삶은 모든 것들이 감사라는 걸 깨닫기 위한 여정이었는데, 깨닫지 못하니 힘들었고, 고난의 연속은 필연이었던 것이다.
지나온 나의 삶을 돌아보니 내게 다가왔던 수많은 고난은 나의 삶을 내가 마음대로 핸들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내 인생은 나의 것,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어요, 유행가 가사처럼 주체적 삶을 살고자 했던 욕망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버리고 모든 것들이 은혜입니다, 감사로 고백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지금 어찌 살고 있을까. 삶이 기쁨이었을 것이고 감동이었을 것이며 기쁨에 찬 감동은 곧 하늘이 바라는 기도였을 것이다.
T-map을 켜고 고속도로를 달리다 목적지 가까이 이르면 "이곳이 마지막 휴게소입니다."라고 알려준다. 누군가는 그냥 지나가지만 먼 길을 오느라 고단한 사람들은 마지막 쉼을 위해 들어선다. 영원에서 시간속으로 여행온 엄마는 주어진 생을 열심히 살아내다가 영원으로 가기 전 요양원이라는 마지막 휴게소에서 잠시 쉼을 얻고 있다. 곧 떠날 엄마, 가난한 시대에 나고 자라서 자식들을 가르쳐야한다는 생각에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것보다 더한 고생을 한 엄마, 영원이라는 목적지에 다다른 생의 끝자락에서 내 뜻이 아니더라고, 모든 게 은혜더라고, 내 삶을 보아온 너희들은 감사하며 살아가라고, 떠나시기 전 온몸으로 표현하시는 우리 엄마!
그래도 엄마, 엄마는 얼른 떠나고 싶겠지만요, 우리는 이렇게 모여서 엄마라고 부를 수 있고, 엄마의 체온을 느낄 수 있으며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해요. 주어진 모든 게 은혜라는 걸 죄송하게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엄마를 통해 깨달으며 매사 감사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나는 엄마한테 갈 때마다 사랑해요, 귓가에 속삭인다. 왼쪽 귀를 기울이며 최선으로 경청하던 엄마가 눈물지으시며 내 얼굴을 만지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손도 꼬옥 잡아 주신다. 나는 안다, 엄마가 흘리는 눈물이 "얘야, 고맙다!" 하는 감사의 표현이라는 것을.
청춘을 돌려다오, 젊음을 다오, 흐르는 내 인생의 애원이란다, 못 다한 그 사랑도 태산 같은데 가는 세월 막을 수는 없지 않느냐, 앞자리에 앉아 있는 막내동생이 구성진 목소리로 노랫가락을 뽑는다. 차창밖에는 활짝 핀 벚꽃잎이 흩날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