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18년 차
지난주에는 첫째의 18번째 생일이었다. 일 년에 한 번씩 다가오는 아들의 생일이지만, 올해는 유난히 마음이 몽글몽글해졌었다. 곧 법적으로 성인이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아직도 내 눈엔 커다란 강아지 같은 이 녀석이 언제 이리 컸는지, 나는 언제 이만큼 나이를 먹었는지 아이를 키우며 울고 웃었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던 하루였다.
늘 먹던 삼겹살이 아닌 쇠고기를 굽고, 미역국을 끓여주자 아들은 아주 좋아하였다.
"단순한 녀석"
그리고 좋아하던 초콜릿 케이크를 꺼내면서 생일축하 하자하니 어색해하며 말했다.
"엄마, 나 18살인데도 생일 케이크 초 부는 거야? 이젠 안 해주는 줄 알았지"
"무슨 소릴, 30살이 되어도 40살이 되어도 해줄 거야"
밥이며 국이며 케이크까지 설거지 하듯 먹고 학원을 갔다. 왠지 아들의 뒷모습이 즐거워 보였던 건 내 기분 탓일까?
사실 이 녀석이 뱃속에 있을 때 나는 한 일주일 가량을 온몸에 수분이 마를 정도로 울었었다. 기형아 검사에서 다운증후군 고위험 결과를 받아서 양수검사까지 받았었다 양수검사를 받는 것 자체가 굉장히 두려웠었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기다리는 2박 3일은 피가 마르는 시간이었다. 통상 결과를 받기까지는 일주일이라는데, 속성으로 결과를 받는 데는 2배 이상의 비용이 들지만 그 당시에는 비용이 눈에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 사건 이후 돈으로 시간을 산 것 같아서 매우 씁쓸하긴 했었다. 남편은 결과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고, 나는 그저 너무 두려웠다. 당시 친정엄마가 외국에서 거주하고 계셨었는데 어찌 보면 다행스러웠다. 엄마 목소리를 들으면 난 무너질 거 같았다.
양수검사는 생각보다 간단히 끝나고, 검사 후에도 수월하게 지나갔다. 커다란 바늘이 불룩 나온 배를 찌르는데도 난 두렵지 않았다. 뱃속의 아가를 위해서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2박 3일 후 결과는 다운증후군이 아니라는 결과를 받았지만, 사실 출산 때까지 마음이 쉽게 놓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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