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sset엄마 Jul 10. 2020

나도 운전하고 싶다

나도 운전석에서 멋있게 내리고 싶다.

나도 아이들 데리고 외출할 때 편하게 차 타고 다니고 싶다.

나도 지인들에게 "내가 데려다줄게, 내 차 타고 가자!"라고 호의를 베풀고 싶다.


내 면허증은 내 지갑에서 큰 의미 없이 지낸 지 20년이 넘어가고 있다.  남들은 쉽게 쉽게 또 멋있게도 운전하는데, 심지어 많은 이들에게 운전은 당연한 일상이지만 나한테는 참으로도 힘든 일이니 속상하다.  심지어 자존심이 상하기도 한다.


순탄치 않은 시작

20년도 전에 호주에서 운전면허시험을 봤다.  친구들은 한 번에 척척 붙더구먼, 차부터 사고 면허시험을 보기도 하더만 나는 힘겹게 합격을 했다.  이젠 시험 절차도 가물가물 기억이 나지 않지만, 호주에서는 만 16세 생일이 지나고 나면 연습면허 (Learner's permit)를 필기시험 후에 취득할 수 있으며, 그 후 주행 연습시간을 충족한 뒤 정식 면허를 취득할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빠듯한 유학생 살림에 비싼 주행 연습비까지 지불하며 노력했건만, 첫 번째 시험은 시험장을 나가기도 전에 떨어졌다.  전면 주차되어 있는 차량을 후진 후에 빼서 나가야 하는데, 너무 일찍 핸들을 돌리는 바람에 옆에 주차되어 있는 차에 부딪칠 뻔하였는데, 난 몰랐다.  "Fail!!!" 이 한마디로 나는 차에 탄지 5분도 안되어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집에 가서 나 자신이 너무 멍청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엉엉 울었다.


겨우 20 살이었던 나는 나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아서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감을 바닥을 치고, 내가 다시 운전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참 힘들었다.  지금도 호주는 대도시가 아니면 차가 없으면 이동이 편리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20년도 전 내가 살던 호주 동부의 소도시는 학교에 가는 버스를 타려면 40 ~50 분에 한번 다니는 버스 시간을 맞춰 하염없이 버스정류장까지 걸어 나가야 했다.  버스정류장 표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버스가 보이기 시작하면 "나를 꼭 태워주세요!!!! "라는 나의 간절한 요청을 손을 번쩍 들어 알려야 했다.  그 시절엔 택시도 잘 보이지 않았었다.  잠시 쉬어가고 있었던 내 마음속에서 다시 소용돌이가 치기 시작했다.  다시 운전에 도전해보자, 한 번은 떨어질 수 있어.  두근 두근대는 마음을 안고, 조심스럽게 주행 연수를 예약했다.  이게 웬일, 생각보다 너무 잘하는 것이다.  나는 다시 면허시험 예약을 했다. 그리고 합격을 마음속으로 기정사실화 했다.  그랬다.  나는 2번째 면허 시험도 또 떨어졌다.  이번에는 최소한 주행은 마쳤다. 주행을 마치고 시험관은

"응시자는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운전했습니다. - 감점 xx"

"응시자는 스쿨존에서 규정속도를 위반했습니다. - 감점 xx"

"응시자는 차선 변경 시 숄더 체크를 하지 않았습니다. 감점 xx"

이 정도가 나의 기억이고, 종단에는 " You failed the test"를 선언하였다.


응시자 주제에 한 손으로 기어 변속을 하고 (그 시절에 나는 수동 운전면허 시험을 봤다), 한 손으로는 핸들을 잡고 운전을 하였나 보다.  스쿨존 표지판은 무시한 채 쌩쌩 달렸나 보다.  한마디로 나는 건방지기 짝이 없는 실력은 없으나 겉멋만 잔뜩 든 응시자였다. 당연히 합격하고 면허증을 받아올 줄 알았는데 또 떨어졌다고 하니 함께 살던 여동생도 너 뭐니?라는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한번 더 떨어지고 결국 나는 3전 4기 만에 면허증을 손에 얻었다.  그랬다면 운전을 하며 날아다녀야 해야겠지만, 난 아직도 운전대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진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하여 아기를 낳기 전까지는 자차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아이들이 생겼어도 바로 옆에 사시던 시아버지께서 어디든 태워주셨고, 데리고 다니셨기에 난 큰 절실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럼에도 내 안에서 나도 다시 운전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자꾸 올라왔다.


나를 막는 사람이 있었으니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처음에 타보고 나는 이 사람을 그만 만나야 하나 했다.  운전을 굉장히 잘하는 사람이긴 한데 그 잘하는 스킬이 급한 성격과 만나니 그가 운전하는 차는 흡사 레이싱 카를 탄 기분이었다.  주차는 발레 파킹 서비스가 왔다 울고 갈 지경으로 한 손으로 단 한 번에 넣어버렸다.


사실 난 주차가 서투르다.  호주에서는 주차칸도 워낙 넓고, 차도 드문드문 있는 데다가 후진 주차를 하지 않으니 내 주차 스킬은 거의 제로다.  주차를 잘 못하니 차를 가지고 나가는 것도 두려웠다.  더군다나 결혼 전까지 십 년 가까이 완성되지도 않은 운전을 쉬다가 다시 시작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남편은 "차 끌고 나가서 여러 사람한테 민폐 끼치지 말고 그냥 택시 타고 다녀"라며 나를 막았다.  


어렵사리 차 키를 받아서 주차장에서 운전연습을 한다고 하면, "여기서도 주차 잘 못하면 너는 다른 데 가면 주차 못해.  괜히 욕먹지 말고 하지 마"


남편 몰래 주행 연수도 3번이나 받았지만, 받으면 뭐하랴.  연수 중에 생긴 감을 잃기 전에 실전을 해야 하건만, 실전을 하지 못하니 난 그냥 거기서 그대로이다.  사실 용기를 내어 차를 두세 번 가지고 나가보았으나, 다녀와서 주차 잘한답시고 범퍼 밑을 벅벅 긁어놓질 않나, 사이드미러를 통째로 날려버리지 않나, 다른 표현 없이 난 그냥 loser 일 뿐이었다. 사이드미러를 통째로 날린 날은 나 자신이 바보 같아서, 이틀 동안이나 자발적으로 단식을 하였다.  밥알이 차마 넘어가지 않더이다.  사이드 미러 그게 뭐라고


시아버지께서 태워주시는 것도 한계가 있고, 남편한테 부탁하는 것도 가끔은 매우 치사하고, 지인들한테 늘 신세 지는 것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게 싫어서 한 번씩 세 아이들을 데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외출하고 돌아오면 그날의 에너지는 그걸로 다 끝나는 듯하였다.


이번 기회는 잘 잡을 수 있을까

작년 가을에 세 아이들이 커 감에 따라 그동안 타던 승용차가 비좁아서 다섯 식구가 편안하게 탈 수 있는 큰 차를 구입하였다. 10년이 넘게 타던 차는 당분간 처분하지 않기로 결정하여, 나는 남편에게 용기 내어 제안했다.  "나 기존 차로 출퇴근하면서 운전 연습을 해보는 건 어떨까?", "하지 마" 단칼에 거절당했다.  

"야!!!! 너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운전했니?"라는 말을 꾹꾹 눌렀다.


휴가를 맞은 나는 남편이 출근하면 한가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주차 연습을 시작했다. 이제 4일 차.

아이들이 홀라당 말해서 이제 남편도 알아버렸지만, 별 말 안 하길래 나는 휴가가 끝나는 날까지 계속 연습하려 한다.


사실 너무 감이 떨어져서 처음 이틀은 정말 헤맸고, 셋째 날에는 아파트 단지 내에서 진로방해를 했다는 이유로 다른 운전자와 그 주위에 계신 분에게 싫은 소리를 듣고야 말았다. 난 당황했을 뿐이고, 결국 얼른 피해드렸음에도...  그 날 하루 종일 여태껏 안 하고 살았으니 그냥 그만둘까라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다.  오늘과 다음 주 월요일은 하필 남편이 차를 써서 부득이 운전 연습을 쉬어야만 한다.  덩치 큰 새 차는 너무 부담스러워 연습은 도저히 못할 거 같다.


난 이번 기회를 통해 운전을 시작할 수 있을까? 답은 나도 모르겠다.  오늘까지 내 마음은 이번엔 꼭 해내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건강해져라, 쑥쑥 크거라,  행복하거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