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와 오시이 마모루
“여기서 일 하게 해주세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초등학생인 둘째가 보고 싶다고 합니다. 이 영화 20년 만이네요. 어떤 영화였는지 기억도 안 납니다. 같이 봤습니다.
이 영화, 이런 영화였나요. 거장이 젊은 세대를 훈계하는 영화였네요. 저도 20년 전엔 20대였으니, 제게 하는 이야기였군요.
버블경제가 지난 시점. 버블의 여파가 남았네요. 치히로의 부모는 흥청망청 먹습니다. 당시엔 애니메이션‧영화적 상상력이라 생각했죠. 먹방이 유행하는 지금. 20년 만에 우린 저렇게 됐습니다.
부모는 결국 돼지가 되어 망했습니다. 그러니 취업이 다급한 치히로.
먼저 취업에 성공한 하쿠. ‘안된다고 할 테지만, 계속 일하고 싶다고 말해.’ 면접 필살기를 치히로에게 전수합니다.
주인공 치히로
“여기서 일 하게 해주세요.”
빌런 유바바
“내가 왜 너 같은 인간을 고용해서 밥을 먹여줘야 하지?”
“네게 맡길 만한 일이 어디 있겠느냐?”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가장 괴롭고 가장 어려운 일을 죽을 때까지 평생 하게 해줄까?”
마치. 우리를 보는 것 같습니다.
“취직하고 싶어요. 합격하고 싶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가장 괴롭고 가장 어려운 일을 죽을 때까지 평생 하게 해줄까?”
“퇴사하겠습니다.”
치히로는 취업 계약서를 씁니다. 직장에선 센이라는 다른 사람이 됩니다. 센은 어렵게 취업한 직장. 고인물들의 텃세, 남의 업무 떠맡기, 기피 업무 강제 배정. 이런 과정 묵묵히 견딥니다. 결말에선 모든 동료가 센을 응원합니다.
감독은 “온천장을 지브리 스튜디오라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풀어갔다.”라고 합니다. 혹시 그가 젊은 직원들 보며, 느낀 감정 표현한 건 아닐까요?
감독은 이런 말도 합니다. “어린이는 여러 가지 체험을 하며 어른으로 성장한다. 그런 과정 지나지 않으면 그 다음은 오지 않는다. 그걸 표현하고자 했다.” 마치 신규 직장인에게 하는 말 같습니다.
실체적인 건 아무것도 없지만, 보여주기식으로 가오만 잡는 가오나시. 이불 밖은 위험하다며, 집에만 있는 빌런의 자녀. 이 캐릭터들을 봐도, 젊은 세대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나무위키 문서를 보면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일본인들에게 바치는 헌사라고 해석하기도 한다.’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와 비슷하게 느낀 분들도 있는 모양입니다.
물론, 실제론 10살 된 친구 딸의 에피소드를 보고 만든 영화라고 합니다.
애니메이션을 철학으로 끌어올린 또 한 명의 거장. 『공각기동대』 감독. 오시이 마모루. 그는 책 『철학이라 할 만한 것』 에서 전봇대에 붙어 있던 구인 광고를 보고 애니메이션 업계에 들어가게 됐다고 말합니다. 먹고 사는 것에 필사적인 시대였기에, 직업이 맞는지 안 맞는지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세계적 거장도 ‘일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지지 않는 한, 직업을 전전해봤자 천직을 만날 수 없다.’라며, 최소한 3년은 한 직장을 다녀보라 합니다.
그리고 직장에선 그냥 다른 사람이 되라 합니다. 돈 버는 곳에선 진짜 자신 필요가 없다는 말이죠. 마치 계약서를 쓰며 직장에선 ‘센’이된 ‘치히로’를 보는 것 같습니다.
3년 후면 일을 알게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시이 마모루는 3년 지나야 비로소 사회생활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오시이 마모루. 둘이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생활의 달인 같은 프로를 보면, 달인들은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이게 뭐 대단하다고. 평생 했는데 못 하면 이상하지.’
세계적 거장도 그냥 하다 보니 되었나 봅니다. 우리도 출근하다 보면 뭐라도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