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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 Sep 16. 2023

여행에서 만나는 시간의 방

해외여행. 분 단위로, 계획대로 움직였다. 많은 걸 보려 했다. 예전엔 SNS도 없었으니, 자랑할 목적은 아니다.


인생 다 살아낸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 “여길 평생 언제 다시 와 보겄어.” 그런 마음도 아니었다.     


싱가포르 갔을 때. 멋진 사자상 있는 머라이언 공원. 외국인들은 바닥에 앉아 한참이나 머물렀다.


커피도 마시고, 멍도 때리고. 그래 저런 게 여행이지. 나도 저래야지. 마음만 그랬다.


포인트라는 장소는 다 들러야 했다. 하루에 몇 끼를 먹더라도 맛집도 들러야 했다.


여행에서 호텔에만 있는다는 사람. 해외에서도 일상처럼 루틴을 지킨다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돈이 많겠거니 했다.


그 생각이 바뀐 건, 혼자 떠났을 때였다. 해외를 처음 혼자 갔을 때. 공원에서 한참 시간을 보냈다. 책도 읽고, 커피도 마시고, 살살 공원 주변도 두리번거렸다.


일본 후쿠오카에 있는 오호리 공원. 작은 호수가 있지만, 특별한 독특함 없는 동내 공원. 거주자들이 보기엔 약간 번잡할 수도 있는 스타벅스가 있는 공간. 그저 운동하고, 자전거 타고, 반려동물을 산책시키는 곳.


그런 생활공간.     


오호리 공원에 머물 때면, 시간이 다르게 흐름을 느낀다. 그곳에서 보내는 몇 시간이 아깝지 않다.


여행에서 보고 먹고 경험할 뭔가를 포기한 기분도 들지 않는다.


한때의 기분인가 싶어 일본을 갈 때마다 들러 이 공원을 세 번이나 갔다.     


그런 공간은 제주에서도 만났다. 혼자 제주살이를 두 달 하던 때. 올레길을 걷다 저녁 어스름에 만난 작고 조용한 마을.


제주에 갈 때면 그 마을을 들러 동내 골목길을 아슬랑 걷는다.


이 공간들에 느긋하게 있으면, 시간이 무척 빠르게 흐른다. 시간의 포근함 속에 빠져든 느낌.


그저 그 자리에 머물기만 해도 여행의 만족을 다 가진 마음이 된다.     


그 뒤론 어느 여행지에서든 느긋하게 보낼 수 있게 됐다. 어디에서 나에게 맞는 그런 곳을 발견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느긋한 여행이 돈 많은 사람들의 허세가 아님을 알게 됐다. 예전엔 이해할 수 없던 마음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오늘도 그렇게 조금 어른이 된다.


사진출처 : 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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