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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 Apr 26. 2021

생각, 만남, 말 그리고 시선에 관한 글

필름 인화 사진과 더불어

근 한 달에 가깝게 머리아픔에 시달리고 있다.

두통이라 부르기엔 '어디가 어떻게 아프다.'고 설명하기 어려운 애매한 머리아픔이다.


원인이 무엇인 지 되돌아보려 하니, 2주 전 주말 친구의 청첩장을 받으러 간 자리로 되돌아간다.

더욱 머리아픔이 잦아짐과 동시에 호흡에 더 많은 숨이 필요하게된 것은 그 때부터였다.


청첩장의 주인공은 대학생을 함께 보낸 친구로, 꽤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이이다. 자리를 함께한 또 다른 사람은 그런 대학생인 나에게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형이 있었다. 이런 저런 차에 꽤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 사이지만, 어제 만난 것처럼 어색하지 않게 자리를 함께했다.


01  생각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이 가져다 오는 여운은 무겁게 다가온다. 시간의 흐름을 체감할 수 있음은 물론, 그 사이에 변한 내 모습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대학생 시절은 주변에 형이 참 많았다. 아무래도 군대를 가지 않다보니, 어려서 대외활동을 할 기회도 많았고, 스스로도 형들을 좋아했다. 누군가를 형이라 부르며 좋은 점을 배우려했고, 그 어린 날의 나에겐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어, 무엇이든 물어봐도 대답을 해주는 기댈 수 있는 존재였다. 이야기를 듣고 함께 말하는 것이 좋았다.


정확히 어느 시점이라고는 말하진 못하지만, 형들도 자연스럽게 직장과 결혼이라는 관문을 거치며 쉽게 만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형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를 만나다보니, 마치 과거로 돌아간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잠깐 10년 전의 그 날로 말이다. 그러나, 그 다음 대화는 점점 현실로 나를 돌아오게 만들었다.


이제 형들과의 대화는 삶 자체에 관한 이야기였다. 회사, 연봉. 투자, 집, 부동산 등 현실적인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했다. 무엇 하나도 쉽게 끼기 어려웠다. 마치 다른 세상의 이야기와 같았다. 그리고 나에게도 하나의 질문이 던져졌다.


"넌 요즘 어디서 무슨 일하니?"

"그래, 대박나면 되지."


그리고 난 다시 오늘로 돌아왔다.


머리가 아팠다. 그 자리를 파한 며칠 뒤, 결혼식장을 다녀와도 여전히 숨만 깊어졌다. 

같은 시기를 보낸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더욱 머리가 아파왔다. 그 동안 외면하고 있었던 현실과 순식간에 마주하려니, 숨이 가빠왔다. 애써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며 버텨 온 시간들이 나를 비웃는 듯 했다. 


아무도 나에게 뭐라하지 않았다. 다만, 뭐하고 사는 지만 물었을 뿐이다.

그렇게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생긴 열등감이 만든 머리아픔에 시달리고 있다.


스스로를 되돌아봤을 때, 지난 과거에 최선을 다했느냐라고 묻는다면 최선을 다했다고 답할 자신은 있지만, 이 말은 곧 거꾸로 난 최선을 다했어도 그들과 어울릴 수 있는 수준이 되지 못한 것에 마음이 아프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선을 긋지 않았지만, 이제 그들의 대화에 내가 쉽게 낄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슬펐다.


'왜 나는 항상 설명이 필요한 사람일까?' 라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잠시 잊고 지냈지만, 늘 따라다니는 콤플렉스였다. 대학을 다닐 때에도 난 어떤 대학을 다니고 있는 지 설명해야했고, 전공 공부를 할 때에도 어떤 전공을 하는 것인지 그리고 회사생활을 시작할 때에도 난 어떤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해야하는 지 설명해야했다.


건강한 몸이 제일이라는 생각과 스스로를 돈 버는 것이 어디냐라고 덮어놓고, 난 이제 그렇게 일할 수 없다고 스스로 합리화했던 나를 바라보게했다. 어디까지가 변명인 지 스스로 알고 있다보니 더욱 머리가 아프고, 마음도 아팠다.



02  만남

그런 내 상태가 밖으로 티가 났다보다. 먼저 무슨 일이 있는 지 물어보는 사람도 있고, 나도 답답한 마음에 먼저 최근의 생각을 이야기한 경우도 있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유난히 올해, 모순적이게도 먼저 많은 모임을 찾아가는 상황이 많았다. 나에게 필요한 모임엔 왠만하면 가려했다.


가깝게는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만남부터 멀게는 마케팅 세미나 만남 그리고 취미 활동을 위한 만남 그 밖에도 사이드 프로젝트를 통한 만남도 여럿 있었다. 회사도 어찌보면 사람을 만나는 곳이니 가장 잦은 만남이 있는 곳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만남의 방식이 많아질 때마다 나의 다양한 면을 발견한다. 그 때 그 때의 내 모습이 너무나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 어느 모임에서는 타인의 의견을 따라가는 모습으로 반대로 어떤 곳에서는 내가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기도 한다. 어느 곳에서는 장난끼 많은 사람으로 다른 곳에서는 농담없는 진지한 사람으로만 살고 있다. 가끔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헷갈린다.


'나는 어떤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스스로를 객관화하기도 어렵고 설령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해도 사람에 대한 평가는 타인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나에 대한 나의 평가보다 상대방의 평가가 더 중요하니 말이다.


부캐가 주목받는 시대도 지나가고 있는 데, 부캐를 뭘 그렇게 많이 만들어 놨는 지 스스로가 적응을 못하는 수준인 것 같다. 무슨 뚱단지 같은 소리인 지 싶겠지만, 잠들기 전 아까 난 왜 그런 행동과 말을 한 건지 스스로 한심스런 경우가 많다. 그렇게 남의 시선을 신경쓰고 그걸 넘어 시선을 맞춰나가고 싶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고치기가 쉽지 않다.



03  말 그리고 시선


어찌되었건 많은 말들을 짧은 시간에 들었다.

나쁜 말을 듣고 싶은 건 아니지만, 요즘의 나를 더욱 불안하게 하는 건 주변인의 칭찬이다. 그 말이 가볍더라도 혹은 진심으로 느껴지는 순간에도 마음 한 켠이 무거워진다. 


무거워지는 말 중 하나는 '많은 걸 배웠다.'는 표현이다. 더불어 '대단하시다.', '이미 충분히 능력자이시다.'와 같은 표현도 비슷하다. 누군가에게 특히 진심이 담긴 그런 표현을 받을 때 더욱 당황스럽다. 나는 알려준 것도 없는 데, 그렇다고 무언가를 성공해 본 적도 없는 내가 감히 누구에게 그렇게 불린다는 거 자체가 부끄러움을 산다. 고마움 마음과 더불어 압박감도 따라온다.


주변의 시선에 맞춰야한다는 압박감에 앞으로 더 무엇을 해야하나 고민과 걱정이 앞선다. 더 정확히는 내가 그들과 계속 어울리기 위해 무엇을 더 해야할까에 대한 부담감 그리고 나만 아는 나의 현실에 대해 들킬까봐 조마조마한 마음까지 든다.


한 친구가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모습과 나만 아는 모습(남들에게 보이지 싶지 않은)이 있는 데, 추구하는 모습(주로 직업과 연결,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심리)에 억지로 자기를 일치시키다보면 점점 더 부담이 되고 팽창되면 감정적인 신호가 나타난대요. 그럼 내 위치에 대한 부담감이 커지면서 심리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느낌이 신호로 와요."


"이 때 하면 안되는 게 2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면 안 돼! 하고 부정하기, 다른 하나는 추구하는 이미지에 맞추려고 노력하기, 안 그러면 풍선이 터져서 페르소나가 나를 압박한대요."


"압박감을 느낄 때는 바람을 뺄 필요가 있다고 해요."


곱씹을 수록 많은 생각이 든다.

어디서부터 고쳐야할까.


언제쯤 스스로 삶에 만족하며 살 수 있을까. 아니, 만족까지도 바라지도 않고 온연히 쉼을 즐길 수 있을까. 놀아도 온전히 놀 수 없고, 쉬어도 맘편히 쉴 수가 없다. 놀았다는 시간과 쉬었다는 시간이 손해로 느껴지는 이 기분이 너무도 싫다.


이제와서 지금 행복하고 만족한다라고 생각하기엔 생겨난 머리 아픔이 사라지지 않고, 다시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한 노력을 쏟기엔 몸과 마음이 지쳤다. 해야한다는 마음과 더 이상은 못할 것 같아라는 마음이 만드는 공허함이 채워지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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