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대한 소망은 늘 품고 있었다. 책을 좋아하고 책을 읽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결국 도달하게 되는 종착역은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어쭙잖게 글을 쓸 땐 꽤나 글을 쓴다는 설 익은 자신감이 있었다. 브런치를 통해 글을 쓰기 시작하고 전자책 발간을 위해 글을 쓰는 과정 중에 내 머리는 점점 쥐어뜯겨 나가기 시작했다. 진짜 글을 쓴다는 건 매번 내 머리채를 잡고 흔들만큼 머리에 쥐 나는 고통이었던 거다. 특히나 퇴고를 할 때면 그 고통은 두배가 된다. 퇴고를 하면 할수록 처음 썼던 글과는 다른 글이 나오니 기존 썼던 문장을 지워야 하는데 막상 그 문장을 지워내는 과정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기껏 머리 짜내어 문자로 옮긴 글을 날려야 한다니 진짜 내 머리카락이 잘려 나가는 기분이었다. (40대 이후로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그렇게 귀할 수 없다. 점점 비어 가는 정수리를 아침마다 본다는 건 여자로서 자존감이 깎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깐.)
전자책을 쓸 때 특히나 그랬다. 고치고 또 고치고 읽고 또 읽고 10번 이상 반복하다 결국 더 이상은 못하겠다, 아니 안 하겠다, 여기까지만 하자는 마음으로 원고를 보냈다. 그나마 브런치에 쓰는 글은 그만큼의 애를 쓰지는 않는다. 한 번에 써 내려가고 마지막에 한번 소리내어 읽으면서 문장이 매끄러운 정도면 바로 발행하는 편이다. 브런치에 올리는 글은 써야지 작정하고 쓰기보다는 글감이 떠오를 때 바로 써 내려가는지라 글을 쓰는데 막힘은 없다. 다만 브런치 사이트에 들어가기까지 마음먹기가 한참 걸린다는 건 안 비밀이다. 글감이 떠오르고 글로 옮기고 싶은 마음이 동해도 막상 글을 쓰기 위해 브런치 사이트 들어가는 일이 쉽지 않다. 나만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하련다.
한동안 글쓰기에 대한 책을 읽었다. 막연하게 글을 쓰기보다는 글을 쓰는 기초를 다지고 싶어서였다. 글쓰기 관련 몇몇 책을 보며 내린 결론은 그냥 꾸준히 자주 많이 쓰는 것뿐이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를 기록으로 남겨본다.
글쓰기는 매번 지도 없이 떠나는 새로운 여행이다.
어쩌면 이렇게도 절묘한 표현을 했는지... 글감만 가지고 지도 없이 지도를 만들어 가는 미지의 탐험, 그것이 글쓰기가 아닌지 모르겠다. 그나마 글감이나 소재가 있으면 지도 위에 무엇을 그려야 할지 그 종착역이 어디인지는 아는 것이니 조금은 수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지도안에 필요한 혹은 갖춰야 할 것은 순전히 쓰면서 만들어내야 한다. 없던 길이 생기고 그 길을 잘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지도를 점검하며 더 쉽게 갈 수 있는 방법을 찾기도 하면서 미지의 그곳을 더 이상 미지의 것이 아니게 만드는 것, 그것이 글쓰기이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 자기만의 비밀스러운 신화를 만들며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보고 받아들여 준다면 그보다 더 고마운 일은 없지 않은가.
글을 쓴다는 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글쓰기를 일기로 처음 접하게 된다. 일기라는 건 내 일상과 기분을 쓰게 되어 있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을 쓰는 행위를 일기를 통해 경험하게 되고 그 이후 글에 대한 갈망은 곧 자신을 풀어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 역시 대부분이 나의 서사와 관련되어 있다. 특히나 책 속에서 만나게 되는 나이면서도 나인 줄 모르고 있는 비밀을 발견하게 되면서는 더욱 그것을 글로 풀어내고 싶은 욕구가 생기게 되었다.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바로 글이 술술 나오는 건 아니다. 글을 쓰려고 마음먹는데 한참, 노트북을 열고(왜 때문이지 글은 꼭 노트북으로 써야지 제맛인 기분, 나만 그런가요?) 브런치 사이트를 들어가기까지는 마음먹기보다 더 오랜 걸린다. 막상 쓰기 시작하면 그전에 마음만 먹던 것이 무색하리 만치 한 번에 쭉 이어진다. 맞춤법 검사를 하고 난 후 다시 한번 마음을 먹어야 한다. 글을 고칠 것이냐 그냥 발행할 것이냐, 나 같은 경우는 한번 쭉 읽어 내려가고 무난하면 그냥 발행, 그리고 다시는 내 글을 안 본다. 쓴 글을 보면 자꾸만 덧붙이고 싶고 고치고 싶어 지기 때문에 이미 발행된 아이는 그냥 보내주고 다음 아이를 기다린다. 다음에 더 잘 쓰자 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게으름을 물리치고 글쓰기 작업에 들어가는 방법을 만들어 내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아직은 나에게 완성도 높은 글을 쓰기보다는 꾸준히 써 나는 것이 더 관건이다. 글 쓰는 일을 놓지 않는 것, 글 쓰는 일에 틈을 주지 않는 것, 그래서 책을 매일 일정하게 읽는 습관처럼 글도 매일 일정하게 써가는 연습, 그 힘을 기르는 중이다.
최근에 내가 닮고 싶은 작가의 문체를 찾아냈다. 바로 캐럴라인 냅이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것이 안타깝기만 한 작가이다. 대중적인 작가는 아니지만 그의 문장은 나를 설레게 하고 나를 떠올리게 하며 내가 쓰고 싶은 문장들을 고스란히 그녀는 책 속에서 녹여냈다. 물론 쉽지 않은 문체이지만 그녀의 사상과 그녀의 문체는 내가 추구하는 그것이었기에 몇 권 되지 않은 그녀의 책을 한줄한줄 아껴가며 읽어가고 있다.
한때 나에게 너무 철학적이라며 좀 더 쉽게 글을 써보라고 조언해주신 분이 계시다. 철학적인 삶을 살고 있는 줄은 알지만 내 글이 철학적으로 느껴지는지는 몰랐다. 그분은 좀 더 쉽고 재미있게 써 보라 하셨지만 나는 사실 쉽고 재밌는 사람이 아니다. 글은 곧 글 쓰는 사람 자신이다. 그것 이상도 이하도 글에서 표현하는 건 불가능하다. 표현이 가능하다면 그건 진실이 빠진 무엇일 거다. 내가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진실성이다. 그 진실성이 왜곡되거나 변질될 때 나는 가장 슬프다. 내 슬픔을 외면하면서 글을 쓰고 싶지는 않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표현되지 못하고 웅크리고 있는 내 안의 슬픔을 꺼내는 작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위로받지 못하고 수용되지 못하는 내 슬픔을 나는 글쓰기를 통해서 뱉어내는 것이다. 글은 곧 내 슬픔이기도 하다. 혹여나 자신 안에 꺼내지 못하고 담아두고만 있는 삶의 희로애락이 있다면 글을 써보자. 글은 고스란히 자신의 희로애락을 가감 없이 보여줄 것이다.
첫 번째 전자책을 지인을 통해 발행하고 그 전자책은 주변인들과 나누는 것으로 결론을 지었다. 나의 첫 서사가 담긴 이야기들이다. 그 이야기들은 브런치 북으로 다시 발간할 예정이다. 나의 이야기는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가 되는 힘을 가지고 있고 그렇게 우리로 연결되며 비로소 연대의 힘을 발휘한다. 글쓰기의 결국은 글쓰기로 함께 연대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아직도 여전히 글쓰기는 미지의 영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써 내려간다. 왜냐면 글을 쓰는 행위가 나로 살아가는 최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를 돌보는 최고의 돌봄이기도 하다. 오늘도 나만의 문체를 찾고 얻기 위해 이렇게 쓰고 또 쓴다.
마지막으로 나의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는 많은 독자분께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