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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Aug 15. 2024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

날이 날(광복절)이어서 그랬는지 종로로 가는 지하철 안은 유독 시끄럽고 복잡했다. 아랑곳하지 않고 종로 3가에서 내리면서까지도 현 대통령 욕을 공중에 날리며 퇴장하는 동시에 지하철 문은 닫히고 어수선함은 정리되는 듯 했다. 


아이들과 대중교통으로 외출을 하는 일은 엄마로서는 날이 서는 순간이기도 하다. 행선지를 갑자기 바꾸는 바람에 15정거장을 가야했기에 제일 어린 막내를 임산부석에 앉히고 긴장을 좀 늦춰본다. 


주요역을 지나고 나니 사람이 빠지고 자리가 비면서 한산해진다. 막내가 자리가 비는 걸 알고 임산부석 옆으로 옮기려는 걸 그냥 앉아 있으라고 했다. 임산부가 오거나 보이면 비켜주면 된다고 하고 말이다. 매일 지하철을 이용하는 이용객으로서 그 자리에 임산부가 앉아 있는 경우는 거의 드물었고 대부분 비어있거나 아이와 동반한 부모가 아이를 앉히거나 그냥 아무나 앉아 있기 마련이다.


그때 건너편 누군가 아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한다. 순간 임산부석에 대한 싸인인듯 해서 마침 옆자리가 비어있기도 해서 옮기라고 했다. 그렇게 일단락 되었으면 좋으련만 약간의 지적장애가 있어 보이는 여성분은 나에게 왜 아이를 임산부석에 앉히냐며 시비를 걸었다. 


너무도 당황스러웠지만 지하철 타자마자 소란스러움에 이미 내 정신이 단장을 준비한 듯 아무렇지 않게 사람이 많은데 자리가 비어 있어 앉는게 더 나을거 같아 아이를 앉혔다고 했다. 임산부가 있거나 오면 당연히 비켜줄거다 라는 말도 전한다. 비꼬듯이 오면 비켜줄라고 했다고라며 어의없어하는 표정을 내보인다. 


이미 아이에게 삿대질을 했고 그것도 모자라 구지 나에게 아이를 왜 임산부석에 앉히냐는 그 사람의 마음이 뒤늦게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그 사람이 과연 그랬을까? 


임산부석은 양쪽 끝에 하나씩 자리가 마련되어 있고 우리가 앉은 끝쪽으로는 중년의 여성이 앉아 있었다. 임산부석을 비우고 말고를 떠나서 아이라는 이유로 삿대질을 어김없이 한 행동과 그 삿대질에 대한 응답으로 자리를 비켰음에도 시비를 거는 그 사람은 어떤 정당성을 가지고 그랬을까 싶다. 혹은 자신이 맞다고 하는 정당성에 입각한 행동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말이다. 


사실 대응할 가치도 없지만 그 사람이 물으니 그에 대한 대답을 한 것이고 그 대답을 되뇌이며 굉장히 언짢은 표정을 나에게 날리며 자리를 떠난다. 과연 그 사람은 내 대답에 대한 의혹을 스스로 풀었을까?


개인적으로 임산부석은 배려석이지 권리가 아니라 여긴다. 배려가 부족한 탓에 의무감을 지우듯 그 자리를 만들어 놓은거겠지만 출산율은 최악이라는 상황에서 공석일때가 대부분인 임산부석에 대한 재고는 반드시 필요하다 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입니다 라는 문구가 굉장히 역설적이게 다가왔다. 뱃속에 있으나 뱃속에서 나왔으나 내일의 주인공은 매한가지니 말이다. 


호기심에 검색을 해보니 임산부석은 양보석 개념보다는 비워두는 자리에 가깝다는 인식이 강하고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남성 사진을 여과없이 게시하며 조롱하는 글도 제법 보인다. 


조롱 받아 마땅한 것이 아닌 배려에 대한 기본기부터 익혀야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배우지 못한 배려에 대한 것을 강제적으로 지키라는 것은 배려를 권리로만 여기기에 딱이지 않나 싶다. 


임산부석에 앉냐 마냐의 문제가 아닌 애초에 약자에 대한 배려를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모르면 가르쳐서 알게 하고 가르쳐도 모르는 건 장치가 필요하겠지만 우리는 가르치기 전에 장치부터 만들어 강제적으로 지키게끔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지켜지지 않을시 더 강제적인 장치를 만들거나 조롱하거나 말이다. 


피로사회가 맞다. 배워야 할 것이 많은데 배우지 못함으로 여기저기 아우성이다. 


아이에게는 괜찮다고 이야기해 줬다. 우리가 애초에 그 자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거나 없어서가 아닌 사람이 많을 때는 차라리 앉아 있는 것이 나을 수 있고 그리고 임산부가 있다면 바로 비켜줄거니 말이다. 비워두는 비효율성보다는 필요에 의해 언제든 양보해야 하는 자리라고 말이다. 


배려는 존중이 기본값이지 권리가 기본값이 아니다. 우리가 내세워야 할 것은 권리가 아닌 존중이다. 존중이 되어야 배려도 있고 권리도 생기는 것이다. 


강자니깐 약자를 반드시 배려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약자이기에 배려를 기본값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인간으로서의 존중이 최고의 기본값이다. 우린 그 기본값에 대한 인식조차 없기에 배려 운운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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