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급 정부회장 선거에서 찾아보는 리더의 자질
너무나 대비되는 두 후보의 발언이었다. 과연 아이들은 누구한테 몇 표를 던질까. 반에 친한 친구가 많은 동민이가 친구들로부터 많은 표를 받게 될까? 그래도 진지하고 구체적인 공약을 준비해 온 준영이에게 투표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은 회장의 자질로 어떤 친구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할까? 담임이기 전에 지나가는 행인 1로서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차기 대선 후보 선출 이슈에 관심이 많은 어른이라면 학창 시절 정부회장 선거 시기를 한 번쯤 돌이켜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저는 여러분의 다리가 되겠습니다. 다리요. 영어로는 bridge. 선생님과 여러분 사이의 다리, 학우 여러분들 간의 소통의 다리. 어떻게 다리가 될 것이냐고요? 바로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준영이의 입후보 소감이었다. 매 시간 발표를 도맡아 하고 성실히 수업 듣는 우리 반 모범생.
어쩜 저리 훌륭할까.... 준비해온 공약들도 하나같이 열렬한 고민의 흔적이 느껴지는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것들 뿐이었다.
자 다음 후보.
다음 후보는 동민이었다. 종종 웃긴 농담도 많이 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도 많은 귀여운 녀석이지만 수업시간에는 내리 잠만 자는 녀석. 언제 어디서 무슨 말을 할지 모르는, 애교와 무례의 애매한 경계선을 넘나드는 녀석. 동민이는 교탁 앞으로 나오면서부터 책상다리에 우스꽝스럽게 걸려 넘어질 뻔하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나는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낸다.
‘제발 이상한 말만 하지 마라’
앞으로 나온 동민이가 교탁을 큰 소리로 탁! 치며 말한다.
‘흠흠.. 여러분, 솔직히 회장이 하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 저 놈이?’
‘저는~~~~~~! 사실 회장은 별 일 안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민이가 과장된 연극톤의 말투로 연설을 시작하자 몇몇 아이들은 벌써 빵 터지며 웃을 준비를 한다. 일부는 내 눈치를 살짝 본다.
‘여러분 저는 회장이 일단 귀여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제가 얼마나 귀엽습니까? 저는 제 귀여움으로 여러분들을 항상 즐겁게 하고 웃길 자신이 있습니다.’
동민은 어차피 지켜지지 않을 공약을 내걸기보다는 자신만의 매력으로 우리 반을 하나로 뭉치게 할 것임을 강조했다. 뻔뻔한 건지 당당한 건지 당황스러운 연설이었다.
마지막 피날레로는 별안간 자신의 이름 한 자를 칠판에 크게 쓰더니 리더가 될 자의 이름이라며 성명학을 들이대는 것이 아닌가. 연설을 마친 동민은 뿌듯한 표정으로 자리로 돌아갔다.
너무나 대비되는 두 후보의 발언이었다. 과연 아이들은 누구한테 몇 표를 던질까. 반에 친한 친구가 많은 동민이가 친구들로부터 많은 표를 받게 될까? 그래도 진지하고 구체적인 공약을 준비해 온 준영이에게 투표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은 회장의 자질로 어떤 친구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할까? 담임이기 전에 지나가는 행인 1로서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누가 볼 새라 투표용지를 두 번 세 번 눌러 접는 아이들을 보며 좋은 리더란 무엇인지 고민하던 나의 새내기 교사 시절을 회상해 보았다. 그 당시 ‘만만히 보이지 말아야지’라던 결심은 학기 초 떠드는 아이들에게 ‘너희 자꾸 떠들면...... 칠판에 이름 적는다..’라는 우스운 협박과 함께 물거품이 되었다. 카리스마 있는 선생이 되어보겠다고 학교에서 유명한 호랑이 선생님의 말투도 따라 하려고 해 보았지만 체질에 맞지 않았다.
대신, 카리스마가 없으면 규칙을 늘 일관성 있게 적용하는 것만으로도 적당한 권위가 형성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때론 로봇 같은 규칙 적용은 아이들과 나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기도 했다. 학급 질서를 정비할 때는 규칙의 강제가 용이했지만 부득이한 지적질은 필연적으로 어른과 아이의 사이를 멀어지게 했다. 좋은 리더가 되는 것은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것보다 백배는 어려운 일임을 실감했다.
학급 정부회장을 잘 뽑는 일은 한 학기의 운명이 달린 중대 거사였지만, 나 조차도 잘 뽑는다의 기준에 대해 단언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나는 선거 전날 조회시간, 온라인 포럼을 준비했다. ‘좋은 리더에게 필요한 자질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그중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나씩만 적어보자.’ 이렇게 하면 아이들이 최소한 진지한 고민 끝에 후보를 뽑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중에 하나는 내가 찾는 정답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그때 우리 반의 우성이란 녀석이 댓글로 질문을 남겼다.
'좋다 나쁘다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그냥 자신의 신념과 맞지 않으면 나쁘고 맞으면 착한 것 아닌가요? 근데 그건 나의 입장인 것이고 전체적으로 (아마 사회적으로를 말하는 듯) 봤을 때는, 좋다 나쁘다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그래 맞아.. 각자의 입장, 사회의 입장, 선생님의 입장은 모두 다르지. 뭐라 댓글을 달아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던 와중에 누군가 빛의 속도로 대댓글을 달았다.
‘니 입장인데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는 거면 착한 게 아니지.’
신규교사 연수를 받으며 새내기 교사들과 함께 리더십 테스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수석 교사이기도 한 진행 강사님께서 혀를 끌끌 차셨던 기억이 난다. 이유인즉슨 요즘 젊은 선생님들을 테스트하면 열에 아홉이 수용적인 리더십 성향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유연한 대처와 너그러움도 물론 중요하지만 지금의 학교 현장에는 엄격한 규칙과 질서를 강제하는 카리스마 있는 강한 리더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수용적 리더십은 아이들 개인의 입장에선 최고일지 몰라도, 학급 전체의 안녕은 훼손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우성이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비겁하게 질문에 질문으로 넘기고 말았다.
‘그럼 우선 네가 생각하는 좋음부터 정의해볼래?’
찝찝한 기분을 다른 아이들의 답변을 천천히 스크롤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한 말에 대해서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어려운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판단력이 있어야 한다.’
‘소외당하는 친구가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
모두가 맞는 말이었지만 이 중 가장 중요한 하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문득 1학기 회장의 답변이 궁금해졌다. 그 아이는 모범생의 전형으로 공부도 잘하고 꼼꼼히 아이들도 잘 챙겨 선생님과 아이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았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1학기 회장의 말이라면 곧 잘 따르곤 했다. 이 아이가 생각하는 리더의 자질은 무엇일까.
‘좋은 리더의 자질을 다음과 같다. ‘모두가 자신의 말을 따를 것이라고 생각해선 안된다.’
어쩌면 정답을 찾은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어차피 뭘 해도 반발은 있을 것이다. 나는 나만의 리더십을 찾아야지. 모든 사람에게 좋은 리더일 수는 없으니까. 눈대중으로 가늠한 수용과 훈계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오가며 완급조절을 하는 수밖에.
결국 회장은 준영이가 되었다. 준영이는 아이들에게 몰표를 받았다. 놀라운 점은 동민이의 가장 친한 친구들조차 동민에게 투표를 하지 않은 것이었다. 동민의 연설에 손뼉 치며 웃기는 했지만 그 아이들의 생각에도 좋은 리더의 자질은 확실히 아니었다 보다. 개표할 때 막상 동민이 1표도 받지 못하자 투표 분위기가 썩 좋지는 않았다. 나도 어쩐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티 내지 않았다. 대신 속으로는 동민이 회장이 되었어도 동민 나름의 귀여운 리더십을 발휘했을 것이라곤 믿어 주기로 했다.